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발목이 아픈지 갑비가 계속 핥고 있습니다.
발목이 아픈지 갑비가 계속 핥고 있습니다. ⓒ 이승숙
개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풀어놓고 키우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집 개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살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못마땅해했다.

우리 집은 이웃집과 뚝 떨어진 외딴 집이지만 그래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가끔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 우리 개들이 짖으면 동네 사람들은 싫어했고, 심지어는 때려서 다리가 부러진 개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개를 묶어두고 키우기 시작했다.

개가 풀려 있을 때는 우리만 나가면 개들이 쫓아 와서 반겼다. 그래서 개들은 주인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쪽에 묶어두고 키우니까 밥을 주러 갈 때나 쳐다보지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 개들은 기운 없이 나날을 보냈다.

그만그만하게 사는 일상이 바로 평화입니다

우리가 찾은 대안은 낮에는 개들을 묶어두고 저녁이 되면 풀어주는 거였다. 밤에 만이라도 자유롭게 뛰어다니라고 그리했다. 그래서 우리 집 개들은 그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갑비가 크게 다칠뻔한 일을 보면서 평화는 순간에 깨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시간이 사실은 소중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심 걱정 없이 사는 게 바로 행복이고 평화로운 삶이었다.

이웃으로 가까이 지내는 분 중에 박광숙 선생님이 계신다. 작년 이맘때 박 선생님이 수능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한 우리 딸을 위해서 선물을 주셨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인권콘서트에 다녀오라며 공연표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 모녀는 나란히 손잡고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날은 날이 매우 추웠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거리는 온갖 장식물들로 아름다웠지만 날이 워낙 춥다 보니 그런 걸 눈여겨볼 틈이 없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종종거리며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래도 콘서트가 열리는 한양대 체육관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라색 수건의 민가협 어머니들입니다.
보라색 수건의 민가협 어머니들입니다. ⓒ 이승숙
그날 우리는 화면으로만 보던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보라색 수건을 머리에 쓴 민가협 어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민가협 어머니들을 보니 가슴이 찡해왔다.

전에 박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박 선생님은 화분에 식물을 키우는 걸 싫어했다.

"박 선생님, 왜 화분에 식물 키우는 게 싫으세요?"
"응, 마당에 심어주면 뿌리 잘 내리고 마음껏 살 텐데 좁은 화분 안에 키우면 뿌리도 마음대로 못 내리고 답답하잖아."

박 선생님의 남편은 고 김남주 시인이다. 김남주 시인은 서슬 퍼렇던 그 엄혹한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제3공화국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10년 가까이 한 사람이다. 박 선생님 자신도 교사의 신분으로 남민전 활동을 하다 해직을 당했고, 오랜 세월 동안(20년 동안) 학생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박 선생님이 따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속짐작을 했다. '아, 박 선생님은 식물을 화분에 키우는 거도 구속으로 생각하는구나. 자유를 빼앗기고 감옥에서 산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러는구나.'

그래서 나도 화분에 식물 키우기를 즐겨 하지 않게 되었다.

보라색 수건을 쓴 민가협 어머니들

2005년 12월 12일은 세계 인권선언을 발표한 지 5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보랏빛 수건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날로부터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소수자들의 권익 찾기에도 열심인 민가협 어머니들입니다.
소수자들의 권익 찾기에도 열심인 민가협 어머니들입니다. ⓒ 이승숙
우리 역사 속에는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았지만 민가협 어머니들처럼 시대를 바꿔가며 사회를 고쳐간 분들은 흔치 않다. 역사 속의 현모들은 자식을 잘 가르치고 키워서 사회에 공헌했다. 그 어머니들에게는 자식의 영달에 따른 부귀와 영광이라는 상훈이 주어졌다. 하지만 민가협 어머니들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나날들만 이어졌다.

감옥 밖에서 자식들과 남편을 대신해서 민주화를 위해 싸운 민가협 어머니들에게는 아직도 남은 일이 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들은 보라색 수건을 다시 고쳐 매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소수자들이 많다. 그날 인권콘서트에도 그런 소수자들의 행진이 있었다.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동성애자들과 몸의 장애로 인해 사회에서 배척받는 장애인들하며, 그 외의 많은 소수자들이 자신들을 알리는 깃발을 앞세우고 조용히 행진했다.

그들 속에 보라색 수건의 민가협 어머니들이 있었다. 어머니들은 그들과 함께 했다. 머리털을 쥐어뜯기고 '빨갱이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이 사회를 개선해온 민가협 어머니들이 이제 소수자들의 권익과 인권 옹호를 위해서 다시 머릿수건을 고쳐 매고 있었다.

다시 12월이 되고 날이 추워지자 그날의 감동들이 떠올랐다. 보랏빛 수건을 머리에 쓴 민가협 어머니들의 투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되새겨 보았다. 그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