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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시민기자들.
한일 양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시민기자들. ⓒ 서종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슷하다."

<오마이뉴스>와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들이 양국의 교육 현안을 토론하며 내린 결론이다. 사교육 열풍, 교육계 빈익빈부익부 현상, 명문대와 인기 학과만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학급 붕괴, 체벌, '왕따(이지메)' 등에서 한국과 일본은 '닮은꼴'이었다.

@BRI@교육에 관심 있는 한·일 시민기자 8명이 '교사 교류팀'을 구성해 한 자리에 모였다. 토론은 '2006 한국·일본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오마이뉴스 재팬> 사무실에서 2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교사팀은 '함께 하는 법 배우기'를 교육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토론에는 윤근혁(초등교사), 서종규(중등교사), 오문수(중등교사), 안윤학(사회 진출 준비)씨 등 한국 시민기자 4명과 타나카 히로아키(농림고 교사), 하나시마 신지(학원 강사), 세코 카주호(대학원 교수)씨 등 일본 시민기자 3명이 참석했다.

히라타 유지 <도쿄신문> 기자도 취재 차 자리를 함께했다. 진행은 이병선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부국장, 통역은 오하타 마사키씨가 맡았다.

한·일은 '쌍둥이', 사교육 열풍에 유명무실한 공교육

학원강사인 하나시마 신지 시민기자.
학원강사인 하나시마 신지 시민기자. ⓒ 서종규
토론의 앞자리는 뜨거운 사교육 열풍이 차지했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공교육에 대한 탄식어린 목소리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한일 시민기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시했다. 윤근혁 기자가 먼저 한국의 상황을 털어놨다.

"부모는 자기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무조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게 인생의 성공이라 본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교육의 붐이 일어났다."

이에 하나시마 유지 시민기자도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도 "부모에 등 떠밀려 오는 학생들이 많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심지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오는 게 동물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며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사교육 열풍에 공교육이 무너져 가는 현상도 비슷했다. 한·일 시민기자들은 "사교육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고, 정작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자거나 선생을 무시하는 세태"가 양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나시마씨는 "교육이 학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학교는 기분 전환용, 필요 없지 않느냐는 반응도 나온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이 부모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격 형성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문수 기자도 "중학생조차 새벽 1~2시에 귀가할 정도로 사교육에 쫓겨 산다"면서 "인간성, 덕성을 기를 시간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

일 시민기자 "한국, 일본 따라해서는 안된다"

농림고등학교의 교사인 타나카 히로아키 시민기자.
농림고등학교의 교사인 타나카 히로아키 시민기자. ⓒ 서종규
양국 시민기자들은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의 양극화가 부의 대물림에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의 '실업계'에 해당하는 농림고(도쿄도 소재)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타나카 히로아키 시민기자는 "일본에서도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주로 연봉을 많이 받는 부모의 자제들이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한다"면서 "실업계엔 구조조정을 당해 돈을 못버는 부모의 자제들이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학습 의욕을 상실한 아이들이 많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 또는 학과 간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도 공통된 의견이 오갔다. 타나카씨는 "한국의 대학이 서열화됐다"는 한국 시민기자들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도쿄대를 정점으로 한 10년 전 일본 대학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실력 있는 학생들은 미국, 중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지방 국립대의 대학원 교수인 세코 카주호씨.
지방 국립대의 대학원 교수인 세코 카주호씨. ⓒ 서종규
지방 국립대의 대학원 교수인 세코 카주호씨는 "명문 대학에만 사람이 몰려 지방대는 학생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지방에 사는 학생들 사이에서조차도 지방 국립대보다 도쿄의 사립대가 더 인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대학 사회도 "수도권 내 명문 사립대 중심"이라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세코씨는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방안'에 대해 "일본에서도 논의가 한창"이라고 확인한 뒤, "어떻게 가르칠까를 연구해야지, 어떻게 경영할까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과 일본이 닮아서는 안될 부분"이라고 충고했다.

철학, 문학 등 비인기학과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는 것마저도 한·일 모두의 문제다. 세코씨는 "소위 '돈 못 버는' 인문학, 교육학 등이 없어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교실 붕괴, 체벌, 왕따... 일본은 '대안학교' 증설로 해결 모색

"일본인이 친절하고 예의바르다는 건 옛 이야기다. 요즘 학생들은 인간적인 매너가 없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는 법, 인사하는 법 등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기본교육을 소홀히 하니 때론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폭력 문제는 교사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지경이라 경찰의 힘을 빌린다."

"일본에서 교실 붕괴, 왕따, 체벌 등은 오래된 문제다. 체벌과 관련해선, 칠판지우개로 맞아본 적도 있다. 체벌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현직 교사들은 체벌의 수위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하지만 교육 문제에서만큼은 너무나 '가까운' 나라인 듯했다. 한·일 시민기자들은 모두 "양국의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책은 없을까. 토론이 끝나갈 무렵, NPO(비영리민간단체, 한국에선 비정부단체인 NGO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세코씨가 '대안학교' 설립을 양측에 제안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엔 현재 1만 여 개의 '부등교'(등교하지 않는 학교)가 있다. 모두 NPO법인으로 등록된 학교들이다. 얼마 전 방문한 대안학교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법'부터 가르친다고 했다. 대인공포증에 걸린 학생 등 생활 부적응자들이 모인 학교라고 한다.

'함께 하는 법'이 비단 '대안학교'에서만 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는 한·일이 공유하고 있는 모든 교육 문제를 푸는 실마리뿐만 아니라 또 양국 간에 쌓인 오래된 앙금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애국심 교육법, 일본을 두 개로 나누나
일본 교육기본법 놓고 설전 벌인 토론회장

▲ 교육기본법과 함께 일본 교육계를 흔들고 있는 자살 예고 편지. 이지메 등으로 억울진 일본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박철현

"기미가요(일본 국가) 제창과 히노마루(국기 게양 때 기립)를 억지로 하라고 하니 학생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선생을 하게 되면 기미가요 제창 당연한 것 아닌가. 직업인이라면 사적인 감정을 누르고 법을 지켜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 3시 일본 도쿄의 <오마이뉴스 재팬> 사무실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의 교사 교류에서 만난 일본인 시민기자들의 토론 때문.

이날 만난 일본인 시민기자들은 이른바 '국기에 대한 충성' 논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이른바 '애국심 교육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일본 교육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평화헌법이 시행된 해인 1947년 공포되고 한 번도 손질된 바 없는 교육기본법이 새로 바뀌자 일본 교육계는 술렁이고 있다. 모두 18개조로 구성된 이 법의 개정안은 국가와 전통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미가요는 보수우익의 음모 vs 공무원은 규정 따라야

이날 법 개정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뗀 사람은 타나카 히로아키 교사(동경 실업고)였다. 그는 일본교원노동조합 회원이기도 했다.

"천황을 숭배하는 일본 국가나 국기에 대해 어떻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기본법 개정은 일본의 보수우익이 힘을 써서 이룬 것입니다. 일본이 자꾸 이런 방향으로 가면 학생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얼굴이 붉어진 타나카 교사는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아 처분된 교사가 주변에도 있는데 동경도에서만 200여 명이나 된다"면서 "자꾸 강제로 하려고 하면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타나카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본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하나시마 신지씨가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나카 교사 의견에 반대의견을 갖고 있다"면서 다음처럼 힘주어 말했다.

"근데 선생을 하게 되면 기미가요 제창, 이것은 규정이기 때문에 꼭 해야 합니다. 그걸 알고 취직을 했는데 따르지 않는 것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도 선생 따라 갑니다. 공무원이라면 사적인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두 개의 일본 만드는 교육기본법 논쟁

순간 토론회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나시마 강사의 발언에 대해 다시 세코 카주오 교수(일본 대학원)가 반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누가 기미가요 제창을 하라고 하는 건지가 중요해요. 우리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국가권력이 강요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때 하나시마 강사가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그 말엔 반대한다"며 제지했다. 예절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일본인이 한국의 손님들 앞에서 상대방의 말을 끊은 것이다.

이를 지켜본 히라타 유지 <도쿄신문> 기자는 "일본에서는 교육기본법에 대해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오늘 모습도 그것의 하나"라면서 "교육계는 물론 언론계도 두 개조로 나뉘어서 사설로 맞대응을 하는 있는 상태"라고 일본의 실태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예를 들 수 있다. 학생들에게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경기도 부천의 한 교사가 지난 8월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지난 6월 <조선일보>가 '전교조 편향된 교육에 학부모 반발'이란 보도를 한 뒤 생긴 일이다.

이같은 한국 상황에 대해 이날 일본인 시민기자들 대부분 "이해를 하기 어렵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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