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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실시된 서울시 공무원 임용 필기시험. 사상 최다인 15만1150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62 대 1에 달했다.
지난 10월 1일 실시된 서울시 공무원 임용 필기시험. 사상 최다인 15만1150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62 대 1에 달했다. ⓒ 연합뉴스
"요즘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고 삭제하는 게 일과처럼 돼 버렸어요. 혹시라도 당원으로 활동했던 기록이 남아있으면 안되니까요. 이번엔 꼭 합격하고 싶어요."

이진아(28·가명)씨는 대학시절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학교 당원모임도 만들고, 언론에 글도 기고하는 등 꽤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사 및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정당법(제6조)과 선거법(제60조 4호)에 의해 정당 가입은 물론,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는 등의 정치 활동이 일절 금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당원 활동을 하고 있는 수험생들은 미리 탈당 조치를 해두고 있다. 합격과 동시에 탈당해도 법적으로 합격에는 문제가 없다.

'흔적 지우기' 고심중인 민노당원들

하지만 당사자인 수험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소위 '민주노동당=정치활동=탈락'이라는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 4·15 총선 당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무원의 정치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했다가 17명이 사법 처리됐으며, 지난해 4월에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노동부에서 11년간 일해 온 공군자(38·7급 공무원)씨가 파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정치활동이 금지된 공무원과 교사들을 위해 '당원'의 자격 없이 후원금만 낼 수 있는 '당우'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노동부는 공씨의 당우 활동을 당원과 똑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공씨는 "억울하다"며 법원에 해임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8월 기각 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민주노동당은 당우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진아씨는 "물론 탈당을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최근 면접시험에서 공무원노조 활동에 대해 묻는 등 사상검증이 강화됐지 않느냐"며 "혹시라도 당원 경력이 문제가 돼 불합격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나 같은 수험생들은 다 자기 기록을 삭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자체 "합격 전 정당경력 알수 없어"-수험생들 "그래도 불안해"

@BRI@하지만 지자체 공무원 인사 담당자들은 "말도 안 된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서울시 인사기획팀원 손대익씨는 "합격되기 전까지 정당 경력을 알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다"며 "합격 후 전력 조회에 정당 가입 기록이 나오기는 하지만, 탈당했다면 합격에는 전혀 불이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험생의 불안을 씻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남의 한 수험생(27)은 "물론 당원 경력을 이유로 불합격시킬 수는 없겠지만, 일단 색안경을 끼면 다른 걸로 트집을 잡아 탈락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억울해도 증거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모든 기록을 지워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재영 민주노동당 조직실장은 "우리나라의 정치 후진성 때문에 공무원과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힐난했다.

오 실장은 "공무원이나 수험생 가운데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고, 헌법에서도 '사회적 신분 때문에 정치적 영역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며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한국도 공무원법을 개정하는 등 정치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미국과 독일, 프랑스의 교육공무원(교사)들은 정당에 가입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직급별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급 공무원은 정당 가입의 자유만 허용하고, 22%의 중급 공무원은 국회의원 입후보를 제외한 모든 정치활동을, 40% 이상의 하위직 공무원은 모든 정치활동이 허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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