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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꿈’에 부푼 할머니들. 임옥자, 조인숙, 남복순, 김용애, 백옥순, 이화연 할머니(윗줄부터 시계방향)
‘산타의 꿈’에 부푼 할머니들. 임옥자, 조인숙, 남복순, 김용애, 백옥순, 이화연 할머니(윗줄부터 시계방향) ⓒ 여성신문 정대웅기자
[김미량 기자]“산타클로스? 옛날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먹고살기도 바빴지…. 좀 여유가 생기고 난 후론 자식들은 다 밖에서 저희들끼리 보내더라고.”

산타 옷에 모자까지 갖춰 입고 풍선으로 꽃과 강아지를 만드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남복순(72) 할머니.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낸 추억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지만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지난 3년 동안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산타할머니’로 변신해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웃음’을 전달하면서 그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안산실버인력뱅크의 ‘산타 아카데미’ 현장.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화장을 곱게 한 할머니들이 속속 모여들어 전날 배운 ‘풍선아트’를 연습하느라 부산했다.

@BRI@안산실버인력뱅크는 2003년부터 ‘산타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3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산타아카데미에 입학하는데 대부분 70세 이상으로 60대는 ‘젊은이’에 속한다. 이중 할아버지는 2명에 불과해 그야말로 ‘산타 할머니 아카데미’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산타학교’는 전국의 노인복지회관, 고령자취업센터, 실버인력뱅크 등을 중심으로 개설되는데, 이 같은 ‘여풍’ 현상은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이에 대해 현장 사회복지사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산타클로스’인데, 여성 노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한다.

산타 복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임옥자(65) 할머니가 “산타 복을 입으면 뭔가 하나라도 더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상하지?”라며 웃자 조인숙(73) 할머니도 “매주 만나는 아이들인데도 산타 복만 입으면 우리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몸짓 하나에도 아이들 얼굴에 그렇게 예쁜 웃음꽃이 필 수가 없다”며 맞장구를 쳤다.

지역에서 산타 할머니들의 인기는 상당히 높다. 벌써부터 산타 할머니들의 방문을 요청하는 곳이 쇄도하고 있어 올해는 지역 아동센터와 보육원 등으로 방문처를 한정할 계획이다. 풍선아트뿐만 아니라 색종이 접기 같은 기술부터 ‘말벗 되어주기’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아온 이들 안산 ‘산타할머니단’의 장점은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는 것. 벌써 몇 년째 주1∼3회 봉사활동을 함께 다닌 덕이다.

“봉사활동도 호흡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용애(74) 할머니는 얼마 전 아들네를 따라 부천으로 이사 갔지만, 여전히 안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부천에도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만, 서로 눈빛만 봐도 힘이 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은 봉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안산실버인력뱅크 안주현 팀장은 “노인들의 봉사활동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여나가는 동시에 노인 개인에게는 사회참여 ‘커뮤니티’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활동이 대부분 ‘도우미’ 업무이다 보니 할머니들의 자원봉사를 경험한 기관, 단체 등에서는 ‘여성노인 인력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음 할머니들이 아파트 단지나 상가 앞에서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던 지역 주민들도 요즘엔 음료수를 건네며 반가운 미소를 건네는 일이 많아졌다. 요양시설의 노인들도 ‘봉사자’가 아닌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어떤 자원봉사자들의 방문보다 할머니들을 반긴다.

이화연(71)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감사함’을 넘치게 느끼게 된다”며 “남을 돕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돕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노인들이 ‘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산타 할머니들의 ‘크리스마스’ 카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나’보다 ‘우리’가 되자고요”

산타 복을 입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더라도 산타 할머니들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늘 봉사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보육원, 요양원 그리고 거리에서 1년 내내 ‘산타 봉사활동’을 펼친 6인의 산타 할머니들이 카드에 ‘크리스마스 소원’을 적어 보냈다.

우리 모두 ‘부모’가 되었으면...

"제 자식 귀한 마음이야 당연지사고, 남의 자식의 어려운 사정에 한 번만 눈길을 보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대로 된 시설에 입소하지 못한 장애아이들을 어찌 부모 혼자 감당하누. 하루 두 끼니만 챙겨도 머리 쓰다듬어 줄 부모가 있다면 차라리 행복할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게. 이번 크리스마스부터는 우리 어른들이 모두 ‘부모’의 마음으로 주변 아이들을 바라봐 주길 바라요."

<백옥순·김용애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힘내자고요~’

"봉사활동이랍시고 또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을 돌보고 다니다 보니 이들의 처지가 바로 내일 나의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하게 되더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활동하고 씩씩하게 살아야 해. 전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지하철과 버스에서 젊은이들이 자리양보 안 한다고 화내고,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며 위축되지 말자고요.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고, 친구와 만날 수 있고, 어려운 사람을 보며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합시다."

<남복순·조인숙 할머니>

‘젊은 친구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합시다’

"한 달에 한 번씩 길거리 청소를 나가. 아침 일찍 나가보면 세상에나… 온통 술병과 담배꽁초, 쓰레기로 넘쳐나. 그런데 한참 줍다 보면 그 장소에 다시 쓰레기를 버리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 무서워서 뭐라고 말은 못하지만 참 안타깝지. 내 집은 아니지만 우리가 함께 사용하는 장소잖아.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지만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화연·임옥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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