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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고 있다. 김은숙 작가-신우철 피디 콤비의 '연인 시리즈'는 점점 더 재미없어지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 이후 <프라하의 연인>에 이어서 현재 방영 중인 <연인>까지 삼부작은, 갈수록 시청률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파리의 연인>은 여성 시청자들의 환상을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얄미울 정도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캔디 스토리’가 성공하려면 멋진 남성 캐릭터가 필수적임을 제작진은 정확히 간파했다.

<파리의 연인>의 매력은 살아있는 남성 캐릭터들의 포진에 있었다. 박신양은 이 신데렐라 스토리에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백마 탄 왕자’의 위엄까지 갖추었고, 오랜만에 출연한 김성원의 재벌 회장 연기는 참으로 실감나게 중후했다. 이동건은 만화 <캔디캔디>의 안소니, 테리우스, 스테아, 아치를 모두 섞어놓은 듯한 매력적인 남자친구를 선보였다.

@BRI@그러나 <프라하의 연인>에서 연인 시리즈는 의외의 부진을 맛보았다. 여성 시청자들은 '대통령의 딸' 씩이나 되어서까지도 평범하고 별 매력 없는 그리고 돈 없는 남자와 맺어져야 하는 TV드라마 식의 순애보를 거부했다.

대통령의 딸이면 대통령 딸답게 화려하게 혹은 고고하게 살아야 하고, 사랑도 최고로 멋진 남자와 해야 한다. 시청자의 기대는 오히려 예상을 훌쩍 넘는 초호화판 연애 쪽에 있었다. 따라서 <프라하의 연인>이 김민준이 아닌 김주혁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부터 멜로는 지리멸렬해졌다.

TV 멜로 속 희한한 ‘형평성’의 공식

평범한 여자가 재벌2세와 맺어지는 ‘황당한’ 러브스토리에는 환호해도, 대통령 딸이 평범한 경찰관과 맺어지는 '시시한' 얘기는 딸들의 환상을 짓밟는다. 능력 없고 안 예뻐도 재벌2세 매력남의 연인이 되는 판에, 집안 좋고 능력 있는 '럭셔리 걸'이면 더 잘나고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게 이치에 맞거늘 TV 멜로의 짝짓기에는 이상한 ‘형평성’의 공식이 있다. 잘난 여자는 어딘가 부족한 남자를 만나 ‘채워’ 주게 돼 있다.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심지어 딴 여자 때문에 가슴이 뻥 뚫린 '헌 남자' 밖에 못 만날 바에야, 대통령 딸이든 외교관이든 초라하고 시시할 뿐이다. 그 사랑에는 아무런 판타지가 없다.

시청자들이 플롯 상 당연히 맺어질 전도연-김주혁 커플에 매력을 못 느끼고, 오히려 김민준의 퇴장을 아쉬워했던 것도 정해진 짝짓기에 대한 불만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적인 매혹에 빠져들어야 한다면, 단정하기 그지없는 김주혁보다는 차라리 김민준 쪽이 더 개연성 있다. 그런데도 이 매혹적인 남자는 재벌가의 장남이고 외교관이라는 화려한 조건 때문에 ‘연인' 자격을 잃었다. TV 순애보는 남녀의 지위를 합쳐 평균을 내버리는 방식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잘난 여자가 잘난 남자와 맺어질 수 없는 게 공식이다.

왜 ‘헌 남자’와의 운명적 사랑을 강요하는가?

<연인>은 여기서 더 나갔다. 재벌도 아닌 그저 재력가의 아들 세연(정찬 분)이 등장하나 그는 필패할 캐릭터다. <연인>은 그저 여의사와 깡패의 러브스토리을 복잡하게 꼬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익히 알려진 원작 희곡의 스토리를 미니시리즈로 늘리려니 둘의 만남은 '장애물 달리기'의 연속이다. 한 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린다. 그래도 둘은 말이 되든 안 되든 결국 연인이 될 것이다.

<연인>은 결코 이만희의 희곡 <돌아서서 떠나라>의 각색이라 볼 수 없다. 그저 여의사와 ‘깡패’의 러브스토리라는 설정만 따왔을 뿐이다.

다만 미니시리즈 분량을 채우려니 초반에는 어떻게든 주인공 둘이 연인이 안 될 것 같은 시치미 떼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끌어들인 게 유진(김규리 분)이다. 강재(이서진 분)와 연애 8년차에 그의 아이까지 가진 여자를 미주(김정은 분)의 옆집에 살게 한 이유다. 깡패 두목에 '손에 피 묻혀' 가면서 큰돈도 못 버는 강재를 사랑하는 것만도 내키지 않을 텐데, ‘쌍꺼풀’ 성형 1위'의 수술의 달인이 심지어 사실혼 관계의 ‘헌 남자’를 ‘운명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게 미주에게 닥칠 ‘운명적 사랑’의 미래다.

혼인신고만 안했지 100% 유부남인 강재를 사랑한다는 설정은 도무지 아름답지가 않다. '땡기지' 않는 남자와 엮일 목적으로 가야 했던 중국 하이난 여행조차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멜로드라마가 왜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목석’들을 애용하는지, 그 기저에 깔린 여성 심리를 <연인>은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일편단심의 연인은 사라진 것이다.

강재와 미주의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불륜'처럼 보인다. 여자는 그렇게 침대 속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다른 여자의 애인에게 관심이 없다. 이런 뜨악한 관계를 '연인'으로 만들려니 극은 점점 더 꼬이고 꼬인다.

강재와 미주를 위해 유진의 아이는 급기야 11회에서 자연유산 됐다. 아이로 인해 청혼까지 받은 상태였기에 실은 누구나 예상했던 뻔한 결과였다.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장애물이었고, 이제 사라졌기에 본격적으로 ‘운명적 사랑’을 그리겠다는 투다. <연인>의 안이한 플롯은 되려 러브스토리에서 판타지를 걷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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