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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 바람의 아이들
<옷이 나를 입은 어느날>은 10대 소녀들이 즐기는 쇼핑을 소재로 했다. 패션에 민감한 나이인데도 교복이라는 굴레에 자신을 덮어버린 아이들은 쇼핑을 하면서 불만을 해소한다. 그러나 쇼핑이나 유행하는 패션을 쫓는 것으로, 굴레를 벗고 자신을 찾을 수는 없다. 이 책에선 그런 청소년들의 심리를 꼬집고 있다. '옷이 사람을 입었다'는 비틀어 보기를 통해 뒤바뀌 세태의 흐름을 반성하게 한다. 그래서 문장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옷이 나를 입고 있었다.

살다 보면 무언가 조금 뒤바뀌거나 아주아주 약간 틀어지는 그런 날이 하루쯤 찾아온다. 그 뒤바뀜, 혹은 틀어짐을 세상을 한꺼번에 확 뒤엎을 만큼 획기적인 양이 아니라 그저 바퀴벌레의 눈물보다는 조금 많은, 무해한 양이다.

그래서인지 그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특히 그가 커다란 우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믿기 어려운 일들을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이거나,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혹은 어떤 충격으로 모든 감각이 무디어진 가여운 사람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면 가능성을 그야말로 희박해진다."


어느 날 나는 교복을 입은 체 잠이 든다. 해녀복을 입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다 눈을 번쩍 떴다. 살았다! 그날 이후 주인공은 ‘내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낯설고 뒤바뀐 주인공의 생각을 찬찬히 따져보면 주인공의 생각이 뒤바뀐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BRI@독서실 감시 카메라, 인터넷은 주인공을 감시하고 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인간의 행동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일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인간들의 자신들이 만든 기계나 문화에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인간이 자신들이 만든 문화에 스스로 갇혀 사는 모습을 옷이라는 소재로 다루고 있다. 주제의 진지함에 비해 글은 가볍고 경쾌하다.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주인공이 족쇄처럼 느끼는 옷은 교복이고 엄마가 강요하는 옷이다. 교복은 나의 신분을 대변하는 동시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짓는다. 교복을 입는 동시에 나는 90%이상 다른 아이들과 같아진다. 더욱이 교복을 입은 나에게 사회는 학생신분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교복은 나의 족쇄이고 교복은 그렇게 나를 입어버렸다. 엄마가 권하는 옷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의사가 존중되지 않고 엄마 보기에 좋은 옷을 입는 다는 것은 교복으로 나를 억압하는 것처럼, 엄마의 틀에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만화주인공처럼 화려한 변신은 할 수 없어도 내가 선택한 옷을 입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고를 수 있는 쇼핑이다. 각각 개성이 다른 10대 소녀 다섯이 모여 쇼핑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런데 오늘 쇼핑은 다른 날 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친구들이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판에 정신없는데, 옷들도 제 각기 한마디씩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옷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쇼핑몰엔 유행에 따라 비슷비슷한 옷들이 걸려 있다. 아무리 폼 나는 옷을 입고 싶어도 체형이 받쳐 주지 않으면, 옷은 사람을 거부한다. 억지로 입는다고 해고 옷들은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신하지 않는다. 옷은 만들어진 그대로이고 사람이 거기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옷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고 유행은 교복이나 엄마가 권하는 옷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신선함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었다’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관점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작품으로 만들었으니 쉽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런 창의성은 관점 전환, 비틀어 생각하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비틀어진 생각이 다 창의성과 연결될 수는 없다. 일반인들이 생각하여도 타당성을 인정받거나 일반들 속에 감추어진 생각들을 드러낼 때 독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보아도 작가의 비틀기은 충분히 가치 있고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사춘기를 겪었으면서도,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틀에서 학생들을 곱지 않게 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되고, 유행이라는 것에 벗어나지 못하고 유행이 나를 입고 그 속에 묻혀있지 않나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뒤바꿔 생각하는 신선한 자극 말고 좋았던 것은 인물의 성격을 원단에 비유해 표현한 부분이다. 원단의 특성과 인물의 성격을 딱 맞게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임태희 지음/ 바람의 아이들 펴냄 / 108 쪽

이 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리딘,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임태희 지음, 바람의아이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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