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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19일 중국 댜오위타이에서 2단계 제4차 6자회담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성연재
@BRI@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13개월 만인 18일 베이징에서 다시 열리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다행스런 일이다. 6자회담 판이 깨진다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사실상 사라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열리는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실질적 진전이 꼭 나오길 기대하는 이유다. 해결의 물꼬를 틀 큰 성과를 거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최소한 회담이 계속 열릴 수 있는 결과라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 전망을 낙관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험난하게 보는 엄혹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려는 달콤한 말보다는 진정한 평화의 의지가 회담 진전의 관건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 샅바싸움, 갈수록 불안불안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의 뿌리깊은 상호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불신의 골이 오히려 더욱 패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 북한과 미국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조건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이 깊어졌음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북한이 제네바 합의 수준보다 더 내놔야 한다는 게 미국의 기대라고 한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라면서 "우리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도 다루어야 한다"고 상호 핵군축 협상을 주장한다. 북한과 미국의 상호 불신에서 비롯된 샅바 싸움이 갈수록 태산인 셈이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택용
미국은 북한이 18개월 또는 24개월 이내에 핵 폐기를 완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일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목표는 북한이 2년 내에 핵 프로그램을 완료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 9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18개월 이내에 핵을 폐기하라고 북한에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런 목표에 대해 시그프리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은 "그 기간 내에 다시 재개할 수 없도록 북한의 핵 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완전하게 모든 핵 시설을 해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잡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핵 폐기를 미루겠다는 입장이다. 두 나라가 이처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들고나오니 회담 전망이 밝을 턱이 없다.

'네가 하면 우리도 할게...' 팽팽한 신경전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는 것은 두 나라가 모두 한결같이 선결조건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상대방이 먼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양쪽이 결코 굽히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게 영변 5MW 원자로의 핵 활동 동결을 비롯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 모든 핵프로그램 성실 신고,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 등을 요구한 상태다. 미국은 북한이 이런 요구를 이행해야만 경제원조와 에너지 지원, 정치적 관계 개선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도 미국에게 선결조건으로 안보리의 대북 제재 해제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등을 요구해 왔다. 미국도 이에 응할 기색이 없다.

두 나라가 판만 깨지지 않게 6자회담을 '시간벌기 작전'식으로 악용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6자회담이 이번달 18일경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2005년 7월 26일김계관 북한측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대표가 1단계회담 개막식에서 밝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전수영

미국이 말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내세우지만, 중국 견제와 봉쇄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미사일방어체제 추진을 위해 북한 핵 문제를 계속 빌미로 삼아 이용하겠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도 미국의 위협을 내세워 체제 결속을 다지고 핵 개발을 지속하려는 속셈일지 모른다.

두 나라의 의도가 행여 그러한 것이라면 우리 민족의 생존을 볼모로 한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짓이다. 두 나라에게 진정한 해결 의사가 있다면, 상대방이 거절할 걸 뻔히 알면서도 상대방의 양보와 선결 행위를 요구하는 접근방법부터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회담 진전을 위한 접근방법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두 나라가 동시에 주고받는 '동시 행동 원칙'이 그것이다. 두 나라의 상호 불신이 깊을 대로 깊어진 판에 외상거래를 하자면 그 거래가 이루어지겠는가.

이와 함께 회담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다. 회담의 진전을 가로막는 '상황 악화'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6자회담과 같은 다자주의가 성공하려면 일반화된 행위 원칙, 참여국들의 평등성, 포괄적 호혜성 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렵게 재개된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선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지 않으려면 이미 지난 6자회담에서도 합의한 '상황 악화 금지의 원칙'부터 회담 참가국들이 일반화된 행위 원칙으로 삼아 이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행동의 원칙'으로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면 될 일이다.

미국은 '북한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고 하지만, 말만 화려할 뿐 공허하게 들린다. 한국전쟁 종전선언, 평화협상 등으로 북한을 유도하려고 하나, 북한의 양보와 행동을 먼저 요구하는 한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양보와 행동을 해야한다면, 생존의 카드 하나 밖에 없는 북한보다 제재와 당근 카드를 여러 장 쥐고 있는 미국 쪽에게 오히려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북한도 '핵 군축 협상'이라거나 '경수로 제공'처럼 다른 참가국들에게 터무니없게 들리는 요구로 회담을 어렵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그런 요구들이 북한이 바라는 회담 결과는커녕 미국의 강경론자들이 부르짖는 '회담 무용론'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꼴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논리다. 우리 민족의 온갖 불행한 일들이 강대국들의 담합에서 비롯됐다는 역사의 교훈 때문이다.

6자회담의 틀이 깨지지 않는 한, 다른 참가국들은 나름대로의 이익이 있다고 여겨 오히려 현상 유지를 선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핵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남북간 화해와 교류, 협력사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우리 민족만 골탕을 먹게 될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대전략 차원에서 존망의 당사자로서 주도적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념적 의도가 보이는 북한의 '민족 공조'를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의 '남북간 평화 공조'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평화 대전략'을 세우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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