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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이 시가지 전경.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운 도시의 풍경이다
우웨이 시가지 전경.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운 도시의 풍경이다 ⓒ 오창학
드디어 사막으로!

우웨이(武威). 한무제 때 곽거병의 대군이 이 일대를 점령했다. 이 때 설치한 한서사군 우웨이(武威)·장예(張掖)·주취안(酒泉)·둔황(敦煌) 중 동쪽 첫 번째 도시가 여기 우웨이다. 당나라 때 '서늘한 도시' 양주(凉州)라 불렸던 이곳은 고선지 장군의 아버지 고사계가 장교로 복무한 하서군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BRI@늦은 아침의 햇살이 이토록 따가운데 고구려의 패망으로 먼 이국에 끌려와 여기 먼 사막 서쪽에 배치되어야 했던 그들의 삶이 눈물겹다. 이미 네모반듯한 현대 도시로 변한 우웨이에서 당시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그저 그들이 숨쉬고 머물렀던 곳이라는 느낌만으로도 감회는 남과 같지 않다.

이후 당의 세력 확장에 따라 고사계는 더 서쪽 지역으로 이동해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에 이르고 아들 고선지 또한 무관으로서 서역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 일행도 그곳에 닿게 될 것이다.

오전 10시까지 늘어지게 자서인지 몸 상태가 어제보다는 한결 낫다. 내가 잠든 사이 다른 일행은 박물관을 다녀오고 산책을 하며 알찬 아침을 보낸다. 일행의 집결을 기다리며 차량을 점검한다.

출발 전 차량점검. 매일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다.
출발 전 차량점검. 매일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다. ⓒ 오창학
요 며칠의 무리 때문에 더러워진 에어크리너도 털어냈다. 엔진오일의 양도 줄어 있어 800cc가량을 보충했다. 한국에서 광오일이 아닌 합성오일(앰스오일)로 채웠던 탓에 중도 교환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만 소모되는 양에 대처할 보충오일 정도만 준비해 온 것인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느 시점에서 중국의 광유로 교체해야할 지 모르겠다.

냉각수와 브레이크 오일, 엔진 누유 여부, 각종 벨트들, 타이어 공기압, 전조등, 하체 차동축과 서스펜션, 계기반의 상태를 살펴본다. 매일 아침 반복하는 일임에도 오늘은 각별히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드디어 사막으로 향하는 날인 것이다. '황량함' '죽음' '절대고독' 뭐, 이런 그럴싸한 단어들이 풍기는 겉멋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온전한 실크로드의 유적이란 오직 삭막한 사막 뿐인 탓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일단 우웨이에서 장예 거쳐 주취안에 이르는 하서주랑 길을 버리고 네이멍구(內蒙古) 고비사막인 '바단지린(巴丹吉林)' 지대로 들어가려 한다. 이후 네이멍구 자치주의 아라싼여우치(阿拉善右旗)를 거쳐 내일 하서주랑으로 다시 들어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지아위관(嘉峪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차량과 적재물 점검이 끝나고 차를 몰아 숙소 인근의 가게로 갔다. 오늘 찬거리와 생수를 구입한다. 두 차 모두 20L 물통이 실려 있지만 행여나 싶어 30여 개의 생수를 또 구입했다. 사막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믿을 건 물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햇반과 라면, 통조림 등)이 고스라니 실려 있으니 물만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차량이 두 대여서 위성전화기는 준비하지 않았다. 상황이 좋다면 한 대가 다른 한 대를 견인하면 될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한 대가 빠져나와 구조를 요청하면 될 것이므로.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두 대 모두 고장이 나거나 탈출할 수 없는 지형에 갇힌다면?

물을 지고 장정 둘이 구조요청을 향해 떠나고 나머지는 조난지점을 이탈하지 않는다. 만약 인근 오아시스나 도로까지 겨우 100Km 거리라면 사막에서의 1일 물 소요량이 2L, 빠지는 모래 사막이 아니라면 1일 20Km까지의 행군이 가능하고… 그러면 구조요청일까지 총 5일 소요, 물은 10L가 필요하다는 얘기. 물 10L와 5일치 식량을 지고 사막을 걷는다… 흠. 에라, 그냥 길에서 100km 이상은 절대 벗어나지 말자.

우웨이에서 다시 만난 김일제

신라왕족의 조상이라는 김일제의 석상
신라왕족의 조상이라는 김일제의 석상 ⓒ 오창학
우웨이를 떠나기 전 인민공원에 섰다. 김일제 석상이 있어 깜짝 놀랐다. 한무제가 격파한 흉노의 아들이 김일제. 금인제천의식 때문에 무제가 김씨 성을 주어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그. 신라 문무왕비의 내용을 믿는다면 그들은 흉노족 왕자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다. 뤄양의 백마사에서, 그리고 시안의 무릉 근처 김일제의 묘에서 가졌던 의문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이 곳 우웨이는 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의 활동무대였다. 휴도왕이 이웃 흉노왕인 곤사왕(昆邪王)의 꾐에 빠져 죽자 김일제 형제와 그의 어머니는 곽거병에게 포로가 되는데 일제의 아버지가 항복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말 기르는 일을 맡았다. 이 때 그의 나이 14세였는데 무제가 잔칫날 말을 검열할 제 말을 끌고 어전 앞을 지나던 수십 인이 왕의 후궁들을 흘끔거렸으나 뚝심있고 선 굵은 김일제만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지.

용모가 엄숙하고 훤칠한 데다(키가 8척 2촌) 일제가 끌고 있는 말 또한 살찌고 훌륭한 지라 무제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출신을 물었단다. 이에 일제가 자신의 내력을 밝히니 무제가 기특하게 여기고 군마를 관리하는 마감(馬鑑) 벼슬에 임명했다. 이후 무제를 암살하는 자객을 한 눈에 알아보고 저지함으로써 무제의 총애를 얻고, 훗날 '투후'벼슬에까지 봉해진다.

이후 그들의 후손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신라왕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인데 오늘날엔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이어서 이국에서 만난 석상 하나가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우웨이의 김일제 상은 한반도에서 온 나그네의 생각을 읽는지 못 읽는지 말지기를 하던 때 모습 그대로 인민 공원을 지키고 있는데 그 뒤로 청동분마상(靑銅奔馬像)이 우뚝하다.

마답비연상. 지금의 실크로드 전역에 관광지 상징으로 조상되어 있는데 이곳 우웨이가 본산지이다
마답비연상. 지금의 실크로드 전역에 관광지 상징으로 조상되어 있는데 이곳 우웨이가 본산지이다 ⓒ 오창학
우웨이를 대표하는 상징이 청동분마상이다. 비록 란저우의 간쑤성 박물관에 있는 실물을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본고장에 우뚝 선 모형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말의 빠름을 강조하기 위해 제비를 밟고 있는 모습이어서 '마답비연상(馬踏飛燕像)'이라 하는데 1969년 중국과 소련의 관계 악화로 방공호를 파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것이다.

하늘에 가득 그의 목청이 울릴 듯, 입은 포효하고 발동작은 거세다. 왼쪽으로 살짝 뒤틀린 목은 역동적이다. 조형적 아름다움이야 그렇다 쳐도 제비를 밟고 뛰는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말의 빠름을 강조한 고대인의 재치가 상큼하다. 공원 높은 대(臺) 위에 뛰는 말이 하늘을 날고 있다. 그야말로 고대인들이 간절히 원했던 천마가 저기 있다.

진창(金昌)에서 수박을 파는 농부.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그의 이마에 삶의 골이 깊다
진창(金昌)에서 수박을 파는 농부.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그의 이마에 삶의 골이 깊다 ⓒ 오창학
14시 드디어 우웨이를 벗어났다. 쫙 빠진 고속도로를 달려 융창(永昌)을 지나쳐 진창(金昌) 가는 길로 오른 때가 15시30분. 전형적인 시골 소도시인 진창에서 바단지린 사막 진입로를 못 찾고 헤매다 수박을 샀다. 1근에 얼마로 해서 9근짜리(중국 농산물의 1근은 500g. 여기는 수평저울에 무게를 잰다) 8근짜리 두 개를 4.5위안에 샀다.

낡고 때 묻었지만 목까지 단추를 가지런히 잠근 농부.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수확한 산물을 이 값에 넘기는 그에게서 삶의 무게가 덕지덕지 묻어났다. 무언가를 싸게 사서 마음이 아픈 건 또 무슨 감정이냐. 16시45분 물어물어 진창을 떠났다.

고비사막 진입 전의 오아시스 지대
고비사막 진입 전의 오아시스 지대 ⓒ 오창학
한참을 달리다 보니 슬슬 사막 냄새가 풍긴다. 백양나무 가로수 사이로 뻗은 길이 비로소 사막으로 통하는 관문인양 뻗어있다.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간다. 이곳에선 차가 길의 주인이 아니다. 날은 찌고 따가운데 그늘 밑은 제법 쉴만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일들을 봤다. 무슨 일을 봤냐고 묻지 마라. 무슨 일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남자들은 알아서 차 주위에 포진하고,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제 사막 속으로!
이제 사막 속으로! ⓒ 오창학
아직은 차가 도로 위에 있다. 시안 이후 우웨이까지 따지고 보면 사막 아닌 길이 있었겠냐만 푸석한 모래층이 깔렸다고 다 사막일 수 있으랴. 수분의 마르듯, 그렇게 상념도 증발할 것 같은 공간, 그곳이 사막이다.

사막의 배 낙타

아라싼여우치까지는 지도상 도로가 표기되어 있다. 이대로 달리면 된다. 눈은 지평선에 머물고 운전대를 잡은 손은 고정되어 있다. 차는 100Km 속도를 유지하는데 좌우의 풍광은 멈춰선 채 그대로다.

아.......사방이 불타는데, 지평선 근처엔 아지랑이처럼 열기가 피는데 꾸물거리는 장애물이 얼핏 보인다. 낙타다. 수십 마리의 낙타가 풀(엄밀히 말하면 가시나무)을 뜯다가 도로를 넘어 다른 쪽으로 몰려 간다. 이 녀석들이 놀란 것인지 반가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한 표정이다.

사막에서 조우한 낙타. 쇠로 지은 우리들의 낙타가 진짜 낙타와 마주했다
사막에서 조우한 낙타. 쇠로 지은 우리들의 낙타가 진짜 낙타와 마주했다 ⓒ 오창학
도대체 무슨 생명이 있을까 싶은 곳에 이 녀석들이 있다. 다리는 굵고 발바닥 표면이 각질화 되어 있다. 또한 넓어 모래에 잘 빠지지 않으며 모래의 뜨거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이중 눈꺼풀에 개폐가 가능한 콧구멍. 게다가 귓구멍 주위의 털도 길다. 튼튼한 혀와 이는 사막의 가시풀인 타마클리스를 먹을 수 있다. 인간의 피부엔 닿기만 해도 생채기가 나는 저 풀을, 아니 가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단번에 100리터의 물을 먹고는 물 없이 3일에서 일주일을 견딘다. 인내를 뽑아내면 20일까지도 생존한다. 단봉낙타는 타기에 좋고 쌍봉낙타는 짐을 실어 나르기에 적당한데 200kg의 짐을 지고 매일 30km씩 일주일을 행군할 수 있다. 바로 이곳 고비사막이 쌍봉낙타의 고향이다.

우리의 철낙타 백구와 파라곤. 바퀴는 굵고 표면은 각질화 되어 있다. 또한 홈은 깊어 모래에 잘 빠지지 않으며 뜨거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75리터의 연료를 마시고 보급 없이 600km를 달릴 수 있다. 400kg의 짐과 5인의 사람을 태우고 끝없이 행군할 수 있다. 출생지는 다르지만 이들은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

차를 가로막은 낙타가 느리게 되새김질 하며 눈을 꿈뻑거린다. 백구도 거친 숨을 고르며 응시한다. 서로를 알아본 탓일까? 권태를 되새김질하는 저 낙타만이 이곳의 생명체다. 물론 방목한 낙타들의 수를 헤아리러 얼마 만에 한 번씩은 사람이 나타날 게다. 이곳은 시간이 멈추어진 세계. 오늘이 어제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곳이니 뜻밖의 조우가 반가웠을 터.

다시 달리는데 무전기(CB) 교신이 되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운 데도 먹통인 것이 무언가 문제가 있는가보다. 차창으로 팔을 빼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신호를 보낸다. 주행 중일 때 무전기를 점검하라는 신호.
"채널이 돌아갔었네요"
금세 대답이 온다.

고마운 녀석이다. 무슨 일인지 교신거리가 채 200m도 되지 않고 있지만 차량 2대가 한 몸으로 묶일 수 있도록 만든다.

사막에서 사라진 2호차

한참을 달리는데 왼편으로 길 같잖은 길이 사막 깊은 곳으로 뻗어있다. 주변은 온통 모래뿐, 지형지물이 없으니 지도와 대조하지 못하겠다. 네비게이션 상의 위성 좌표로 분간을 해 보려다 까뭇 잠든 철봉씨를 깨우기 난처해되는 데까지 가보자 맘먹고 달렸다.

오아시스에서 길을 묻는 사이 2호차가 사라졌다
오아시스에서 길을 묻는 사이 2호차가 사라졌다 ⓒ 오창학
18시14분. 이게 아닌데 싶은 곳까지 달려오니 너덧 가구 사는 것 같은 오아시스가 보인다. 차를 세워 나무 그늘의 사내에게 아라싼여우치 가는 길을 물으니 방금 전에 지나쳐 왔단다. 아까 지나쳐 온 갈림길의 좌표가 위도 39도 9분 5초, 경도 112도 34분 0초. 화얼원을 20Km 지나쳤다. 다시 차를 돌려야 한다. 무전으로 2호차를 부르니 침묵. 또 채널이 돌아갔나 생각하는데 2호차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묻는 사이 2호차가 우릴 앞질러 간 것이다.

서둘러 2호차가 사라진 길로 쫓아갔다. 처음엔 그냥 속도내서 따라가면 만나려니 했다. 그러나 한참을 달려도 외줄기 뿐인 이 길에서 앞지른 2호차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론 한 팀의 차가 보이지 않으면 속도를 줄이고 주행하든가 정차해서 기다릴 텐데 가도가도 만날 수가 없다니.

외줄기뿐인 이 사막의 길에서 2호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외줄기뿐인 이 사막의 길에서 2호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냐. ⓒ 오창학
혹 이곳에 4차원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 그 곳으로 증발된 것은 아닐까? 날 놀리려 보이지 않는 구릉 뒤에 숨었나? 별 해괴망측한 상상을 다 한다. 아무리 무전을 해도 답신이 없다. 하긴 주행 중엔 도달거리 200m도 되지 않는 차량용 생활무전기(CB)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차를 잡아낼 리 만무하다.

혹 어딘가에 전복된 것은 아닐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아무 일도 생긴 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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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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