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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고3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짜 고3은 아니고 고3 또래인 대입 수험생이다. 녀석은 고2때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워 버렸다. 학교가 맘에 안들고 배울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세상에 학교가 맘에 안 들다니….

@BRI@대한민국 수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가고 싶어 안달을 하고, 그것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원성이 자자한 그 중심지, 강남하고도 대치동에 있는, 좋은 대학 많이 들어가기로 이름 난 학교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일년여를 혼자 공부랍시고 한다고 끙끙대더니 지난 달에 수능을 보았다. 수능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아들의 몰골을 보고 시험을 망쳤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녀석 말로는 어떤 과목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비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공부를 제대로 안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래도 애비라고 "그래 그래 괜찮아. 안 되면 내년에 재수 한번 하지 뭐"하고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마음 속에서는 작지 않은 실망과 함께 주먹같은 화가 불같이 치밀어 올랐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낮 12시나 되어서 부시시 일어나서는 밥도 먹지 않고 친구 만난다고 휑하니 나가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오고, 다시 낮 12시에 일어나서는 휑하니 나가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에는 만화에다 (나는 고3쯤 되는 애가 아직도 만화를 보는 이유를 정말 이해 못하겠다. 내가 너무 구식인가.) 비디오에다 DVD를 잔뜩 빌려 버둥거리며 희희덕거리는 꼴이란 여간한 속내가 아니면 보아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 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지쳐서 그렀겠지'하며 이해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틀었으나 일주일이 가고 2주일이 가고 3주일이 가도 내내 그 모양이라 슬슬 부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더욱이나 내가 잘 아는 집의 아이는 이번 수능에 전부 4개밖에 안 틀려 논술만 그런 대로 보면 원하는 대학에 가게 될 것 같다고, 그래서 밤 12시까지 논술 학원 다닌다고 은근히 자랑스런 전화를 걸어오는데, 아들녀석은 4개의 4제곱만큼이나 틀려놓고도 천하태평으로 놀고 있으니 참 한심하고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애들은 지금 논술 공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을텐데 어째 우리 아들은 저 모양일꼬?'라는 말이 절로 입 속에서 튀어 나오는 걸 참느라고 입을 꾹 다물고 지내야 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고 보니 약과였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본 나는 다른 사람이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옷이나 얼굴은 낯이 익은데 머리는, 머리는 아프리카 무슨 종족이나 간혹 티브이에서 요란한(?) 애들이 한두 번 보이는 세숫대야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그런 모양새를 하고 온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일퍼머(foil pem)란 것을 한 거란다. 세상에도….

사실 전날 아내가 내게 은근슬쩍 의견을 물어왔다. 아들 녀석이 퍼머를 하고 싶다는데 어쨌으면 좋으냐고. 물론 단칼에 '노'였다, 내 대답은. 아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신뢰하는, 아이를 여럿 훌륭하게 키운, 아들 친구 엄마의 '어드바이스'를 곁들이며 '하자는 대로 두어보자'고 나를 꼬드겼다. 나이 들어가면서 마누라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던가? 더욱이나 자식 이기는 애비는 물어 볼 것도 없고.

해서 아들의 머리 변형을 약간은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저 함지박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몰골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내 머리가 호일퍼머한 것처럼 곤두섰지만 돌아서서 찬물 한 사발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왠지 아직은 화를 내서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녀석은 '제 맘 속의 화를 저런 걸로 달래는 것일 거야'하고 스스로를 위무했다. 아들 녀석도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제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DVD도 비디오도 보지 않고 꿈적 않고 그대로 박혀 있었다.

우리 시대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머리를 빡빡 미는 것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시합에 졌다든지,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혹은 애인하고 결별했을 때에도 머리를 빡빡 밀어 그 각오 내지는 심경을 나타냈다. 실토하자면 나 또한 입시에 실패하고 머리는 물론 눈썹까지 빡빡 민 경험이 있었다. 머리를 빡빡 밀고 나서 이발소 문을 나서는 그 심경이란.

그런데 요즘은 빡빡 미는 대신 부풀리고 키우고 배배꼬는 머리로 자신의 심경을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시험이나 성적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생김새에만 신경을 쏟아 붙는 그런 세상이 왔다는 것일까?

아들의 머리(髮)는 까치둥지처럼 부풀리며 커졌으나 원래 그 머리(腦)는 단정하고 좋았다. 영재들의 모임이라는 멘사(mensa)의 회원으로도 가입했고 공인된 기관의 영재 커리큘럼 교육도 받았다. 그러나 학교 성적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매번 뒤에서 세는 게 빨랐다. 그때마다 애비인 나는 아들을 족쳤다. "애비가 머리는 그만큼 좋게 만들어 줬으니 네 스스로 노력을 해서 공부를 잘해야지." (약간 웃기는 애기다.)

그러나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아들은 시험 중에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경험을 맛보아야 했고 시험이 끝나고는 머리를 누렇게 물들이고 커다랗게 부풀리는 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머리(腦)에 든 것은 없으니까 머리(髮)라도 한껏 부풀려 보자는 것일까? 환갑을 지난 나이에도, 46살 차이나는 아들 키우기는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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