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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핸드 테루>
<갓 핸드 테루> ⓒ 학산문화사
특정한 분야와 기술을 다루는 지식형 만화에서 손은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다. 기술은 손으로 드러난다. 음식을 만들 때도, 스포츠를 하면서 공을 던지거나 맞출 때도(물론 축구는 손을 쓸 수 없다), 그리고 무언가를 쓰거나 고칠 때도 손은 반드시 필요하다.

만화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위해,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혹은 이야기 전개의 필요성 때문에 많은 천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천재들의 화려한 재능은 당연히 손을 통해 빛난다.

의학만화에서는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을 통해 '무면허 의사'의 냉정하고 거침없는 손과 메스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를 창조한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도 그렸지만, 의사와 문필가 등 많은 직업을 거쳤다. 이를 생각하면, 그에게 손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갓 핸드 테루>에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 '테루'의 손을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신의 손"으로 묘사한다. 복잡한 의학 지식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만화이기도 하다. '테루'만의 특별한 재능은 항공기 참사 현장에서 죽어가던 천재 외과의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장 마사지를 하다가 손자국을 가슴에 남긴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에서 비롯된다.

평소에는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허둥지둥 행동하는 '테루'지만, 정말 위급한 환자를 만나면 그 손자국이 빛나면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손은 천재적인 재능의 표출 외에도, 재능의 이어짐과 간절한 염원을 위해서도 이용되고 있다.

빵을 소재로 한 요리만화 <따끈따근 베이커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카즈마'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일본 대표의 빵 '재빵(재팬 빵)'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은 주인공이다. 그런 그의 꿈을 뒷받침하는 것은 빵을 향한 열정과 함께, 빵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체온을 지닌 '태양의 손'이라는 특별한 재능이다.

빛나는 노력의 상징, '손'

<식객>
<식객> ⓒ 김영사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수많은 우리 요리들이 발굴되고 재조명되는 동시에 인생 이야기도 더불어 전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요리만화다. 그 많은 요리 장인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면서,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손일 것이다.

정성과 안목이 듬뿍 담긴 재료와 독특한 조리법,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손맛.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요리는 이 모든 것이 겸비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가장 눈에 띄는 수단은 당연히 손이다.

일본의 요리만화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쇼타가 일하는 초밥집의 사장은 단 두 수만에 군침 도는 초밥을 만들어낸다. 그 역시 처음에는 엉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가까이 지켜온 외길과 열정이 그를 그런 달인으로 만들었다.

초밥요리사 대회에 출전한 쇼타와 그의 라이벌들을 보자. 그들은 "노력하는 동안에는 아직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강조하면서, 밤을 새는 노력과 주변의 사소한 아름다움을 초밥에 응용할 줄 아는 눈을 갖췄다. 어쩌면 초밥은 '노력의 상징'으로서 손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요리일지도 모른다.

물론 스포츠만화에서도 '손'은 중요한 소재로 이용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축구는 아니겠지만, 운동에서도 손은 중요하다. 심지어 <피구왕 통키>에서는 '통키'가 강력한 슛을 날리기 위한 손의 힘을 기르기 위해 수영장에서 아픈 손을 이용해 물살을 날리는 강훈련에 돌입한다. 그것도 어머니가 시킨 강훈련이다.

운명을 이야기하는 '손'

<손금>
<손금> ⓒ 삼양출판사
<몬스터>에서는 뇌 외과의 '덴마'의 엇갈린 선택과 천재적인 재능이 합쳐서 '요한'을 살려내 잠재된 악의 본능을 깨운다. 덴마는 결국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요한'을 추적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요한은 그 이상을 보여준다. '손'을 쓰지 않고 마음을 움직여 악을 저지르는 거대 악으로 성장한 것.

<데스노트>에서는 지상으로 떨어진 사신의 노트와, 그것을 집어 마음껏 이용하는 '라이토'의 손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그로 인해 L이 세상에 나타났으며, '니아'와 '멜로'도 '키라(라이토)'를 잡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한 권의 노트와 그것을 움직이는 손은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생각할 계기를 주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판이 너무 커졌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물론 '운명'을 이야기하자면, 도박이나 주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일면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당연히 허영만의 <타짜>이며, 전세훈의 <손금>일 것이다. 도박을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는 많지만, <타짜>만큼이나 손과 패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세계를 이야기하는 인생 서사시는 없었다. 손이 잘리기도 하며, 그 손 하나로 복수와 운명이 뒤엉킬 수도 있는 것이 도박이다. 손의 아이러니, 그 찰나의 순간을 가장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세훈의 <손금>은 특별한 운명에 따라 상대방의 손을 접하면 그 손금이 그대로 전해져, 상대방의 예정된 미래를 바꿔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손과 손이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에 주목하며, 운명의 아이러니를 그런 작품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잠깐인 그 찰나의 순간에도 손은 움직이고 있으며, 운명도 움직이고 있다. 그 손의 힘이 혹시 당신의 운명도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성공을 꿈꾸는 자, '손'에 달려 있다

만화 속의 저 주인공들은 '손'으로 성공을 일구거나,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물론 도박같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갔거나, 우연히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이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도 기다리고 있다. '손'은 그래서 무섭다. 찰나의 그 움직임이 그의 미래까지 바꿔놓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의사인 '테루'의 '갓 핸드'나 '카즈마'의 '태양의 손'이 빛나는 것도, 작품에서 그려지는 순수한 열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비현실적인 주인공들이지만, 그럼에도 재미를 주는 이유는 있다. 그 밑바탕에선 해당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꿈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일상 속의 생활인을 그린다는 이유도 분명히 작용할 것이다. 그들 역시 그 특별한 재능을 제외하면, 우리와 다를 게 아무것도 없는 주인공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손의 아름다움은 결국 재능을 일구고 꿈을 일구기 위한 열정에 따라 빛이 나는 것일 듯하다. 이 아름다운 일부분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의미로 활용할 것이냐에 따라 삶도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지. 만화 속의 '손'은 문득 그런 교훈을 말해주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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