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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
붉은 동백꽃 ⓒ 김대갑
김유정이 1936년 조광지에 발표한 <동백꽃>이라는 소설은 토속적 미학과 해학미, 그리고 향토미가 물씬 풍기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소작인의 아들인 '나'를 괴롭히는 지주의 딸 점순이가 실은 '나'를 오랫동안 사모해 왔음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다.

점순이는 동백꽃이 분분히 날리는 곳에서 '나'를 끌어안고 무서리 지듯 쓰러진다. 어찌 보면 나이어린 청소년들의 치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소설 속의 두 연인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더없이 그윽하기만 하다. 동백꽃 향기에 취한 채.

동백섬의 등대
동백섬의 등대 ⓒ 김대갑
해운대 동백섬에 붉은 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섬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동백섬은 수세기 전만 해도 어엿한 섬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운대의 해안선 한 켠에서 천년의 세월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동백섬. 동백꽃이 유난히 많아서 이름마저 꽃을 닮은 섬. 여수의 오동도와 더불어 해안가의 절경을 자랑하는 이 섬에 드디어 붉디붉은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동백섬 일주도로
동백섬 일주도로 ⓒ 김대갑
해안가 산책로
해안가 산책로 ⓒ 김대갑
동백꽃은 신비로운 꽃이다. 꽃은 봄에 핀다는 기본 상식을 간단하게 뒤집는 역설의 꽃이다. 겨울에 피기 시작하여 봄에 지기 시작하는 꽃.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째 무더기로 떨어지는 꽃. 동백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의 향내가 절로 피어오르는 꽃이 바로 동백꽃이다. 그래서 동백꽃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과 소설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생산되고 있다.

해운대 석각
해운대 석각 ⓒ 김대갑
한적한 산책로
한적한 산책로 ⓒ 김대갑
동백섬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해운 최치원 선생이 산천경계를 유람하다가 해운대의 풍경에 넋을 잃은 나머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 곳이 바로 동백섬이다. 또한 무명가수 조용필을 국민 가수로 만들어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섬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산에서 아펙 정상회의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누리마루 하우스라는 곳이 일약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의 동백섬은 누리마루와 광안대교의 궁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누리마루와 광안대교
누리마루와 광안대교 ⓒ 김대갑
최치원 동상
최치원 동상 ⓒ 김대갑
그러나 아쉬운 점도 참 많은 곳이 동백섬이기도 하다. 아펙이 열리기 전만 해도 동백섬의 해안가 절벽 밑에는 해산물을 팔던 노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펙이라는 미명하에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그때, 해운대와 바다를 바라보며 먹던 소주와 회 한 접시가 사라지고 낭만이 허공 속으로 날아 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밋밋하다. 동백섬에서 해운대를 바라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청춘 시절의 낭만이 못내 아쉽다. 그때 쫓겨난 노점 할머니들의 손맛이 못내 그립다.

노래비
노래비 ⓒ 김대갑
동백섬의 정상에 가면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있다. 선생의 형형한 두 눈은 오륙도와 대마도를 향해 있다.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가 지척에 보이고, 우리의 영토였던 대마도가 한 뼘처럼 다가오는 곳이 바로 동백섬이다. 동백섬은 이 땅의 역사와 애환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동백섬은 사랑스러운 곳이자 의미심장한 곳이기도 하다.

시심을 일으키는 동백꽃
시심을 일으키는 동백꽃 ⓒ 김대갑
그 옛날, 간비오산의 봉수대에서 흰 달이 선연하게 떠오를 때 동백섬의 동백꽃들은 달빛에 물든 붉은 색깔을 요염하게 자랑하였을 것이다. 동백꽃이 핀다. 더불어 겨울이 깊어가고 봄이 머잖아 다가옴을 느낀다. 돌아서는 발걸음, 사뿐히 동백꽃을 즈려밟고 가고 싶은 시심이 깊어간다.

덧붙이는 글 | 씨앤비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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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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