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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물머리의 해넘이와 황포돛배
두물머리의 해넘이와 황포돛배 ⓒ 김민수
지난 2월, 봄마중을 한다고 두물머리에 들렀다. 더딘 봄, 두물머리로 걸어가는 길 한 켠에는 연꽃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꽃이 필 무렵에 꼭 와서 그들을 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 이 곳에 들르지 못할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눈소식이 들려오는 계절에야 이 곳에 다시 선 것이다.

스러져가는 연잎이 물 속에 잠겨있다.
스러져가는 연잎이 물 속에 잠겨있다. ⓒ 김민수
연꽃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줄기들은 이파리와 연밥이 무거웠는지 한결같이 고개를 물 속에 처박고 있다. 스러져가는 연꽃,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년 여름에 피어나는 연꽃에는 지금 스러져가는 저 연잎의 흔적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두물머리의 저녁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두물머리의 저녁 ⓒ 김민수

@BRI@두물머리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빛이란 참 묘하다. 하루를 여는 시간과 마감하는 시간, 그 시간 빛의 변화는 아주 빠르다. 빠르기에 열정적이다. 해돋이와 해넘이는 그래서 닮았다.

두 물이 합쳐지는 곳, 그래서 '두물머리'다.

그 곳에 떠 있는 황포돛배의 그림자와 돛배도 하나가 되었고, 그 곳을 찾은 연인들도 하나가 되었다.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잠시 차 안에서 몸을 녹이는데 김광석의 '변해가네'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는 왜 그렇게 가야 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노래의 느낌이 달라졌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그의 노래는 '삶에 대한 끈끈한 애정'으로 다가왔는데 그 이후에는 '삶의 회의 혹은 인생무상'의 느낌이다.

한때는 꼿꼿하게 꽃이며 이파리를 내었던 줄기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한때는 꼿꼿하게 꽃이며 이파리를 내었던 줄기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 김민수
물가에 심기운 나무, 투영된 자신들을 서로 바라본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 투영된 자신들을 서로 바라본다. ⓒ 김민수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 내가 가고픈 그 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 보단 너와 머물고만 싶네 /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 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 가네 / 우 너무 빨리 변해 가네'


말라비틀어졌어도 물방울을 맺은 모습은 연잎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말라비틀어졌어도 물방울을 맺은 모습은 연잎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우리는 남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얼마나 힘들어가며 살아가는가? 그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자신이 변하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그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그러나 그 변함이란, 변질이 아니다. 변질 아닌 변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물방울을 맺고 있는 스러져가는 연잎은 여전히 자기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

두물이 합쳐지는 곳, 황포돛배의 그림자도 그와 하나가 된다.
두물이 합쳐지는 곳, 황포돛배의 그림자도 그와 하나가 된다. ⓒ 김민수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은 사람뿐 아니라 꽃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꽃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스스럼없이 놓아버릴 줄 앎으로써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지켜간다. 그래서 자연이다.

어쩌다 토끼풀이 저 곳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어쩌다 토끼풀이 저 곳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 김민수
언제 우리는 마음이 통할까? 세잎클로버와 연잎, 그 둘은 동병상련, 서로를 바라보며 껴안고 살아가는 세월이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물 혹은 흙과 하나되는 그 시간까지 함께 하다 하나가 될 것이다. 두물머리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다. 강물도, 연인도, 들꽃도 하나가 된다.

멀어질수록 희미한 산들, 멀어질수록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추억들...
멀어질수록 희미한 산들, 멀어질수록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추억들... ⓒ 김민수
멀리 있으면 더 아련하고 그리운 법인가 보다. 내 가까이 있는 것들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늘 먼 곳에 있는 것만 동경하며 살아간다. 저 아련하게 보이는 그 곳을 지나 왔는데 이제는 다시 그 곳이 그립다. 그 곳에 가면 또 이 곳이 그립겠지.

그들이 잔잔한 물 위에 쓴 편지는 무슨 내용일까? 해독할 수가 없다.
그들이 잔잔한 물 위에 쓴 편지는 무슨 내용일까? 해독할 수가 없다. ⓒ 김민수
그들이 물에 남긴 편지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처럼 보였다. 그들의 마음이 다 읽혀지면 신비감이 사라질까?

인부들이 스케이트장으로 만들기 위해 물 위로 나온 연들을 쳐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편지가 다 지워져도 그들은 여전히 또 피어나고 다시 읽혀지지 않는 편지를 물 위에 쓸 것이다. 그 많은 내용 중에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문장쯤은 들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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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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