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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예쁘게 올라온 감자싹, 신비한 땅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 이우성
한해 농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이 빠진 상을 흔들어 콩 선별을 해서 수매 날짜에 내고 한해동안 고생한 밭을 정리하면 밭도 쉬고 농부도 쉰다.

농부에게 겨울은 그간 고단한 노작에 대가로 따라오는 긴 휴식이다. 빈들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쉬듯 농부도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음공부도 하고 내년 농사 설계도 한다. 아마 농사로는 가정 경제가 못 버텨내니 겨울 동안 막일을 하러 도회지로 나가는 분들도 있다.

한해를 돌아보니 새벽부터 밤늦도록 이어진 농사에 무슨 전쟁 치른 일처럼 선연하다.

▲ 채소류 모종 이식작업을 하고 있는데 마을 분들이 들어가 도와주신다. 웃음꽃이 핀다.
ⓒ 이우성
한해 농사 열심히 했으니 그뿐

@BRI@"농사는 잘 되었나?" 아는 분들의 물음에 답은 "열심히 했으니 그뿐"이다.

올해는 자급 농사를 위해 농사면적을 늘이고 원없이 농사를 지었다.

밭 2000평, 논 1000평. 시골로 내려와 농사지으며 올해만큼 규모를 늘린 적이 없다. 귀농자 소리보다 농부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참 열심히 농사지었다. 밭이 도로에 붙어있는 땅이라 내 밭의 형편은 나보다 다른 분들이 더 잘 알았다. 몇 만평씩 농사짓는 분들은 "애걔" 하시겠지만 이 크기의 농사도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럼 자급은 되었을까? 몇 만 평씩 농사지은 분들도 자급은 되었을까?

논농사는 대만족이다. 평생 처음 내 손으로 만든 벼 알곡을 앞에 두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임대료 주고 이것저것 빼면 겨우 일 년 먹을 우리 양식 쌓아두었으니 그것 보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쌀로 15가마 정도 했는데 그 우렁이쌀을 아는 분들과 나눠먹고 남은 것은 팔아 200만원 수입을 올렸다.

고추밭에선 한푼도 못 건졌지만...

밭 2000평, 채소류를 일 년에 두 번 지었으니 땅의 효율을 엄청 높인 셈이다. 채소 농사 엄청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리 집 최고의 경제작물인 600평 고추는 지난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줄기차게 내린 비에 모두 삭정이가 되었다. 한 푼도 건질 수 없었다. 그 밭에 배추를 심어 도시로, 급식으로, 절임배추로 내보내 겨우 150만원 수입을 건졌다.

감자 심고 이어 적양배추 심은 300평은 그런대로 200만원 수입. 양배추 심고 약콩 심은 400평은 양배추가 잘돼 350만원. 브로콜리 심고 양배추 이어 심은 곳 400평은 나중에 심은 양배추가 잘 살아 붙지 못해 300만원. 감자 심고 서래태 심은 좀 떨어진 밭 300평은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 140만원.

▲ 2000평 밭 전체 모습. 일년 지나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밤낮으로 일해도 자급은 되지 못한다.
ⓒ 이우성
총수입은 대략 1300만원이 좀 넘었다. 귀농 5년 만에 최고의 소득이다.

임대료 밭 100만원, 논 80만원. 농자재값, 씨앗값 제하면 내 수중에 남는 돈은 700여만원 남짓. 물론 인건비는 전혀 계산하지 않았다. 고추 죽어나가 수입이 없는 것이 제일 큰 손실이었다.

팔지 못해 밭을 갈아엎거나 아예 채소류는 팔 수 없거나, 저장고가 없어 농사지을 엄두도 못내는 농민이 많은데 이곳 친환경농업하는 영농조합 법인이 든든한 백이 되어 주어 한결 농사짓기 편했다. 농사만 지어 놓으면 파는 것을 걱정하진 않았으니까.

후배 귀농자가 "형님처럼 거저 농사짓는 곳도 없다니까" 할 정도로 논밭의 위차나 흙살도 좋았다.

손이 많이 가는 채소 농사, 밤낮으로 뛰어도 내일 일은 산더미였다. 오늘 이 일을 해야지 밭에 가면 계획의 5분의 1도 못하고 날은 저물었다. 그래도 그래도 무언가 쓰인 사람처럼 밭을 기고 또 기었다. 하루아침에 고추가 다 죽어가던 날,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 고추농사는 손이 많아 간다. 뽀얗게 올라온 고추싹에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 열릴 것을 생각했다.
ⓒ 이우성
▲ 근처 귀농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품앗이로 고추를 심었다. 며칠 일을 뚝딱 해치웠다.
ⓒ 이우성
▲ 하루 아침에 고추가 삭정이가 되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차마 바로 볼 수도 없었다.
ⓒ 이우성
씨 부어 몇날 며칠 모종 키워 본밭에 심고 말뚝 박고 줄 매고 영양제 준 시간은 물거품이 되었다. 내 농사 실력이 없어 작물이 죽어나갈 땐 죄스러웠다.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이제 그날들을 돌아보며 그래도 지구의 어느 한 귀퉁이 땅을 조금이라도 살렸다는 자부심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가 내 손으로 만든 건강한 먹을거리가 어느 가족의 식탁에 올라 건강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내년 다시 밭으로 나갈 의욕으로 살아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 손으로 만든 곡식과 채소를 먹여 건강한 생각과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해준 것에 무한한 기쁨이 있다.

"우리 농산물 맛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연을 생각하는 농사, 조금 배곯아도 어떠랴

▲ 고추밭에 심은 무, 배추는 상상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수확의 기쁨, 말로 설명할 수 없다.
ⓒ 이우성
그래서 자급은 되었는가. 먹고 살 수 있는가. 차량유지비와 두 아이 급식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식 별로 하지 않고 일년 내내 지출을 줄였다. 그래도 이 정도 수입이면 빚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농민단체 신문 만드는 일을 하면서 그 빚을 줄였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땅과 사람, 그리고 자연을 생각하는 농사, 그런 생각들이 삶의 등대로 환히 살아났는데 조금 배곯아도 어떠랴. 조금 못 누려도 어떠랴.

이제 이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5년 지나 농사판의 한 귀퉁이에서 농사 시작을 했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랴. 농사 오래 지으신 분들이, 영농규모 많은 분들이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그릇을 가진 내가 이 정도나마 한해 농사를 결산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지난 4년간은 결산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이 길이 무지개, 뭉게구름 잡는 길이더라도 시작했으면 내년은 더 풍성한 마음으로, 더 땅에서 받는 자부심이 나를 세워 내 삶의 그릇, 작지만 단단하고 부드럽고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

여름 뙤약볕에 원 없이 땀흘려 소중한 내 삶의 길을 채웠으니, 내 먹을 양식은 곳간에 가득 채웠으니 앞날에 무서운 것이 또 무엇이 있으랴.

"열심히 농사지었으니 그뿐, 내년엔 땅과 더욱 친해져야지."

▲ 내일 태양이 떠오르면 다시 밭으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내년에는 자급이 가능할까. 생각만은 어떨까. 틀림없이 나는 밭으로 나갈 것이다. 올해 농사 지으며 얻은 생각이 고귀하므로.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농사짓는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 합니다. 작게나마 내손으로 내 먹을거리를 만드는 그 기쁨의 대열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호미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내년 봄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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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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