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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마릴린이 결혼식 날 찍은 사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톰과 마릴린이 결혼식 날 찍은 사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 김하영
브로큰 힐 근처에서 양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11번째 우프 호스트 톰(가명·60세)과 마릴린(가명·50세)의 러브스토리도 독특하다. 특히 내가 그곳에서 우퍼로 머무를 때가 그들의 24주년 결혼기념일이어서 결혼식 사진도 구경할 수 있었다.

톰이 마릴린을 승마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첫번째 부인과 별거 중이었고 어린 딸 둘이 있었다고 한다. 톰의 전 부인은 지루한 시골생활에 적응을 못해 톰과 불화가 생겨 아예 집을 나간 모양이었다.

당시 마릴린도 전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힘들었는데 톰이 친구로서 조언을 많이 해주며 위로해준 것을 계기로 많이 가까워졌고, 이후 2년 동안 톰의 집에서 동거를 한 뒤 결혼식을 올렸단다.

그래서 나는 톰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마릴린이 톰에게 프로포즈를 했단다. 톰은 이미 전 부인과 결혼해 두 딸이 있는데다가 나이도 열 살이나 많아서 선뜻 결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아이들을 갖고 싶었던 마릴린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톰에게 지금이라도 프로포즈를 하라며 놀렸는데 아직도 부끄러운지 금세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한국에서 초혼인 딸이 애가 둘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다고 나서면 어떤 부모든지 크게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호주의 부모들은 어떨까. 브로큰 힐에 살고 있는 마릴린의 친정어머니에게 딸의 결혼을 찬성했냐고 물었다. 구세대라서 조금은 보수적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딸이 톰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단다. 톰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란다. "톰은 애가 둘이 있는 이혼남이었는데 괜찮았냐"고 묻자, "결혼은 두 사람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런 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마릴린은 말했다.

호주와 한국, 거리만큼이나 의식도 달라

다시 마릴린에게 물었다. 딸이 자신처럼 애가 여럿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다고 하면 반대할 거냐고. 마릴린은 "이미 자신도 그런 결혼을 해서 말릴 명분도 없을 뿐더러 결혼은 부모와 하는 게 아니고 본인들의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니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반문했다. 같은 경우라면 나는 어떻게 하겠냐고. 나는 한국사회 내에서는 그런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부모님도 크게 반대를 할 것이고, 한국은 호주와는 달라서 새엄마가 친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강하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지나친 의무감 때문에라도 그런 결혼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마릴린이 하는 말이, 과거 호주에도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결혼할 때만 해도 그런 주변의 시선이 있었고 특히 자신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톰의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데 힘이 들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톰의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더 수월해 졌단다.

호주와 한국은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의식에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고 한 쪽에서는 절대 불가한 상황이 다른 한 쪽에서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니.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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