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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데타 전, 피지의 수바 퀸엘리자베스 군부대 연병장에서 퍼레이드하고있는 피지군.
ⓒ AP=연합뉴스
▲ 남태평양 서부의 피지섬. 우리나라에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 연합뉴스
호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데이 오브 스마일(Day of Smile)>이라는 단체가 선정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피지 국민이다. 이름하여 '피지언 스마일(Fijian smile)'.

남한의 5분의 1만한 크기의 영토에 85만 4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섬나라 피지(2개의 큰 섬과 110개의 작은 섬).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피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그런데 앞으로 당분간은 그 아름다운 '피지언 스마일'을 보기 어렵게 됐다. 피지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 1987년 이후 4번째 발생한 쿠데타다.

특이한 점은 이 쿠데타가 11월 중순부터 공개적으로 예고된 쿠데타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쿠데타 진행과정이 마치 한편의 코미디처럼 드라마틱 해 호주 등 인근 국가들조차 이를 '희화화'해 '걱정 반, 재미 반(?)'으로 보고 있다.

아름다운 신혼여행지 피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신혼여행에서는 보지 못할 피지의 역사

피지는 1인당 국민소득이 328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지만 남태평양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부유한 나라다. 국민소득의 상당부분을 환상적인 해변과 아름다운 미소를 밑천으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차지하는데, 연간 약 40만 명의 관광객이 피지를 찾는다.

@BRI@그러나 피지는 늘 쿠데타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피지원주민 51%와 인도계 44%의 인구비율을 갖고 있는 피지는 양대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과 헤게모니 쟁탈전을 겪어왔다.

피지에 이런 인구 비율이 형성된 것은 피지가 1874년 영국식민지로 병합된 뒤 사탕수수밭 농장 노동자로 인도인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노동자라기보다 노예 같은 처지로 피지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70년, 피지는 독립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영국인이 물러간 후에도 수적으로 열세였던 인도계는 숨죽이며 지내야만 했다. 법적으로 토지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피지원주민에 비해서 교육열이 높았던 인도계 피지인들은 아열대성 섬나라의 아름다운 백사장을 활용해 관광업을 일으켰다. 그 과정을 통해 인도계가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원주민과의 갈등구조가 형성됐다.

'땅을 차지한 피지원주민'과 '돈을 가진 인도계'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1987년 5월에 발생한 피지 역사상 첫 번째 쿠데타는 바로 이런 배경, 인도계의 비약적인 성장을 막아내기 위한 피지원주민들의 고육지책에서 비롯됐다.

쿠데타로 점철된 20년 세월

당시 본국에서 의회민주주의를 경험한 인도계의 의회진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인도계가 헌법을 바꾸어 합법적인 토지소유권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불안감을 느낀 피지원주민 출신 시티베니 람부카 대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

같은 해 9월에 발생한 두 번째 쿠데타도 피지원주민과 인도계가 반반 참여하는 내각구성에 반발한 친위쿠데타였다. 결국, 총리에 취임하여 10년 동안 장기집권 한 람부카는 내정간섭을 이유로 인도가 소속된 영연방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피지원주민과 인도계 피지인들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천신만고 끝에 1999년 첫 집권에 성공한 인도계 정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조지 스페이트라는 피지원주민 출신의 기업인이 무장 게릴라 7명과 함께 의사당에 난입하여 인도계인 초드리 총리를 비롯한 30여 명의 의원을 인질로 잡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

ⓒ 오마이뉴스 고정미
이에 동조한 피지원주민들은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던 상점의 80%를 불태우고 약탈했다. 쿠데타는 결국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채 끝났으나 이로 인해 관광객 급감과 국가경제 봉쇄조치(sanction)를 겪어야 했다.

그 당시 쿠데타 진압을 주도했던 지휘관이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베이니마라마 사령관이다. 그러나 그는 쿠데타를 진압한 영웅이라는 평과 함께 인도계 군인이라는 이유로 피지원주민들로부터의 '제거' 위협도 받아왔다. 베이니마라마는 콰라세 총리를 두 번이나 총리에 오르게 한 공신이었지만 인도계 사령관과 원주민 총리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다.

베이니마라마 사령관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의 중심에 콰라세 총리가 있다고 믿었다. 콰라세 총리가 2000년 쿠데타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한 사면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정치상황이 이번 4차 쿠데타를 불러오게 됐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 4차 쿠데타

피지군 총사령관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준장은 4일 오후부터 2천여 명의 군인을 이끌고 수도 수바로 진입하는 도로를 전면 봉쇄하고 라지에니아 콰라세 총리 관저를 포위한 뒤, 12월 5일 "국가와 정부 장악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도계가 다시 정권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엄중한 상황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상황 때문에 인근 국가들로부터 코미디로 희화화됐다.

먼저 바이니마라마 준장의 태도다. 바이니마라마 준장은 11월 중순부터 쿠데타설을 흘리며 "11월30일까지 현 정부는 부정부패를 인정하고 물러나라"고 사퇴시한을 공개했다. 배짱 좋게 쿠데타를 사전예고한 것. 그러나 바이니마라마 준장은 사퇴시한으로 못박았던 11월30일이 되자, 피지 군인 대 경찰 팀의 럭비경기 관람을 이유로 총리 사퇴시한을 하루 연기해 주었다. 다음날인 1일에는 "3일 쿠데타를 시도하겠다"고 발표해놓고, 또 하루를 연기해 줘 4일에야 쿠데타를 감행했다.

또 사퇴시한 연기의 이유가 됐던 럭비경기가 쿠데타 현장에서 맞서야하는 군인 팀과 경찰 팀의 경기였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럭비 경기에선 경찰 팀이 17-15로 이겼지만, 쿠데타 현장에선 군인들에게 무장해제를 당해야 했다. 쿠데타를 앞두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는 쿠데타 조짐을 사전에 인지했던 콰라세 총리의 태도다. 바이니마라마 준장이 쿠데타 설을 공공연히 흘렸음에도 콰라세 총리는 이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군을 장악하지 못한 콰이세 총리는 병력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방관하다가 결국 쿠데타 당일 총리관저에 연금됐고, 하루만인 6일 새벽 자신의 고향인 라우섬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콰라세 총리는 연금 당시 호주국영 ABC-TV와 영국 BBC-TV와 자유롭게 인터뷰를 했으며, 존 하워드 호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태평양협약에 근거해서 호주와 뉴질랜드 군인이 쿠데타군을 진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쿠데타 현장에서 외국방송사들을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됐다.

비극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가 피지 국민에게 미친 영향은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인도계는 환영하고 있는 반면, 피지원주민계는 검은 옷을 착용하고 항의를 표하고 있는 등 인종 간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

▲ 피지 쿠데타 뉴스를 다룬 <시드니모닝헤럴드>.
고향인 라우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며 총리직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한 콰라세 총리는 국제사회를 향해 피지의 헌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쿠데타에 성공한 베이니마라마 사령관도 국제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어떻게 수습할지가 향후의 관건이다.

국제사회는 일단 콰라세 총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영국은 피지에 군사 원조 등을 즉각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우리는 국제사회와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추가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며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권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돈 매키넌 영연방 사무총장도 "9개 영연방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8일 런던에서 만나 피지에 대한 회원국 자격 중단조치가 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UN 사무총장도 대변인도 "피지의 쿠데타 세력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피지의 쿠데타 정국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니마라마 사령관은 "민주주의를 신봉하지만 당분간 피지식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6일 군의관 출신의 조나 세닐라가칼리를 과도정부의 총리로 지명하는 등 본격적 정권이양 작업에 착수했다.

피지의 두 인종 간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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