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귀-애월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
하귀-애월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 ⓒ 김남희

[그 여자 김남희] 6일간의 자전거여행, '라이더'는 하루하루 단단해졌다

한숨이 절로 났다. 모텔을 나서니 시간은 이미 11시 반. 가장 먼 길을 가야 하는 오늘, 가장 늦은 출발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다. 도로는 이미 젖어 있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오늘은 60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데 날씨가 이렇다니.

@BRI@자전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박까지 쏟아졌다. "앗, 따가워!" 비명을 지르며 자전거를 몰았다. 도로는 미끄럽고, 오르막은 계속 되고, 바람까지 거세다. 자전거 바퀴가 바람에 자꾸 밀려났다. '제주바람' 이름값을 하겠다는 건지 매몰차게 자전거를 밀어댄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내 몸이 얼마나 적응했는지 시험해 볼 기회라고.

여전히 자전거에 몸을 실을 때면 맥박이 빨라지지만 그 사이 내 다리는 단단해졌다. 이제 가벼운 오르막은 기어를 변속하지 않고도 오를 수 있게 됐다. 1차선 도로에서는 그 남자의 도움 없이 길을 건널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시험은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였다.

젊은 여성의 전화 한 통에, 이 남자가 흥얼거린다

궂은 날씨 따윈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남자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페달을 밟는다. 나는 안다. 이 남자의 기분이 왜 이리 좋은지.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 여성. 그녀의 전화가 이 남자의 자전거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있다. 오르막에서도 지치지 않는 힘을 주고 있다.

모슬포가 고향이라는 그녀는 평소 기사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고, 생선이라도 몇 마리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후 이 남자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아름답다고, 전화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굉장하다고.

짧은 토론을 거친 후 그녀에게 전화를 되걸었다. 그 생선을 맛있게 먹겠다고. 그리고 내기를 걸었다. 그녀가 평소 열심히 읽었다는 기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놓고.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억새의 물결.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억새의 물결. ⓒ 김남희
그가 그녀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손가락의 파르르한 떨림이 보였다.

"평소 누구의 기사를 즐겨 읽으셨나요? 저희, 저녁내기 했거든요."

길게만 느껴지는 기다림의 순간이 지나갔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이 남자가 갑자기 외쳤다.

"왔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보는 거야!"

전화기를 열었다. 답은 짧았다.

"노 코멘트입니다."

"선배, 지금 질투하는 거야?" "그렇게 믿으면 좋냐"

"이 여자, 게임 할 줄 아네."

이 남자, 좀 허탈해 하는 것 같았다.

"상규야. 아무래도 내 팬인 것 같아. 네가 상처 입을까봐 그렇게 말씀하신 거 아닐까?"
"치, 다 자기 팬인 줄 알아? 나도 전국에 팬 3800명 있다, 뭐."

항변하던 이 남자, 다시 문자를 보낸다.

"김남희씨가 제가 실망할까봐 노 코멘트라고 했다는 데 사실인가요?"

답을 기다리는 이 남자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난다.

"야, 너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어, 선배, 질투하는 거야? 이 질투의 불덩어리야. 내가 여자랑 전화 통화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질투를 하면 어떡해?"

어이가 없어 실실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믿으면 좋냐?"
"어!"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답은 이랬다.

"잘 아시네요, 남희님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내 자전거에 힘이 실렸다. 이 남자의 자전거가 느려졌다.

어여쁜 해안도로에 입맞춘 사연

제주의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중무장한 김남희.
제주의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중무장한 김남희. ⓒ 박상규
하귀에서 애월로 가는 해안도로는 지금껏 우리가 만난 해안도로 중에 가장 어여뻤다. 바다의 물빛이 유난히 고왔다. '가슴에 품고 싶은 / 작은 기생같은, / 그 이름'이라던 애월이었다.

그 사이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나왔다.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처럼 느껴졌다.

협재에 도착하니 시간은 4시 반이었다. 이 곳에서 자전거포가 있는 대정읍 모슬포까지는 아직 24㎞가 남았다. 야간 주행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하늘에는 달이 떠올랐고, 비는 멈췄고, 거리에 차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날. 더운밥과 고등어조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배가 고파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속도가 느려졌다. 오른쪽 도로변으로 고산 마트가 보였다. 마트에 들어가 도넛 몇 개를 사서 주린 배를 채웠다. 그 사이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첫날밤을 보낸 집의 주인 남자였다. 짐이라도 들어주러 갈까라는 전화였다. 곧이어 자전거포의 아저씨도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으쓱한 기분이 든 내가 이 남자에게 말했다.

"상규야, 나 너무 대단하지 않아? 끝내 해냈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천하의 김남희인데. 난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난 반반이었는데. 중간에 안 되면 도보로 전환하지 하는 생각도 했거든."
"근데 선배, 그 쪽은 위험하니까 안으로 들어와. 떨어진다니까."

6일,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바로 그 순간, 말은 씨가 되었다. 나는 추락했다. 도로 옆 깊이 2m의 도랑으로. 자전거는 가볍게 처박혔고, 나는 온 몸으로 도로와 입을 맞췄다. 한쪽 발이 도랑에 빠졌는지 젖어왔고,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이 쑤셨다.

이 남자의 도움을 받아 도로 위로 올라왔다. 몸의 고통과 창피함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났다. 다행히 자전거도, 나도 무사했다. 손가락을 삐고 양쪽 무릎에 찰과상을 입는 정도였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거라곤 바지와 장갑이 못쓸 정도로 찢어졌고, 아끼는 방수점퍼가 엉망이 됐다는 것.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만 탔다 하면 반나절 만에 옷과 살을 함께 찢던 내가 웬일로 무사고인가 싶었다. 결국 목적지 6킬로미터를 남기고 도랑 속으로 온 몸을 날리는 일이 생기고야 만 거다. 마무리치고는 제법 근사했다.

속도를 늦추고 도로의 안쪽으로 붙어 자전거를 몰았다. 모슬포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 어두운 밤이었다.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데 꼬박 6일이 걸렸다.


[그 남자 박상규] 마지막 6km, 김남희 추락하다

자전거 주행 마지막 날 오전. 모텔에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오늘 우리가 달려야 하는 거리는 지도상으로만 60km. 지금까지 여정 중 가장 먼 길이다. 방수 재킷과 털모자로 단단히 무장하고 자전거 페달을 돌려 빗속으로 나아간다.

우린 오늘 여행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자전거를 좀 탄다는 사람들이 이틀이면 완주한다는 거리를, 좀 느리게 간다 싶은 사람들이 4박 5일이면 샅샅이 뒤지고도 남는다는 제주의 땅을 우린 일주일 동안 달려왔다.

빨리 간다는 계획이 없었기에, 그리고 더디 가는 기쁨을 우리 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느림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걱정은 앞선다. 이 정도 속도로 달린다면, 그리고 이렇게 강한 바람이 우리의 자전거를 계속 휘청이게 한다면 분명 모슬포에 도착할 무렵엔 캄캄한 밤일 것이다.

잘 찍고 싶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정면은 이게 최고다.
잘 찍고 싶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정면은 이게 최고다. ⓒ 김남희
해안도로를 빠짐없이 돌다보니, 그리고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월의 해안도로에서 자꾸 바다를 돌아보다보니 정말 캄캄한 밤이 찾아왔다. 우리가 달려야 할 거리는 10km가 넘게 남았다.

밤길은 시속 4km의 보행자보다 그 몇배의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더 위험하다. 가로등 없는 밤길을 1시간 넘게 달렸을까. 김남희와 나는 대화를 나누며 모슬포로 달렸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종착점은 가까워졌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사고가 마지막 순간에 터지고 말았다.

그녀의 눈물... 안아주면 '오버'인가

"아악!"

갑작스런 비명과 함께 김남희가 사라졌다. 내 오른쪽에서 나란히 달리던 그녀. 순식간에 도로변 약 2m 깊이의 도랑으로 떨어졌다. 물론 자전거와 함께. 제주도 자전거 일주 마지막 지점 6km를 앞둔 곳이었다.

재빨리 자전거에서 내려 그녀에게 뛰어갔다. 도랑에서 김남희는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를 도로 위로 끌어 올렸다. 저녁 7시.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거리 아스팔트에 앉아 김남희는 울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무릎과 손에 남은 상처가 그녀를 아프게 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눈물이었다.

손에 끼고 있던 장갑도 제주도 바람을 막아주던 바지도 찢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오래도록 아끼던 하늘색 재킷도 더러워졌다. 우는 김남희를 안아주려 했지만 왠지 '오버' 같아서 참았다. 대신 옷에 묻은 먼지와 흙을 툭툭 털어 줬다. 한참을 울고 난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어떡해. 이 옷 내가 아끼는 건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순간, 겨우 걱정하는 게 옷이라니. 그녀의 양쪽 무릎은 까졌고, 오른손 약지와 중지는 삐어서 부어올랐다. 김남희가 눈물을 그쳤을 즈음, 나는 자전거를 도랑에서 끌어 올렸다.

"야, 자전거 괜찮냐?"
"잠깐만요, 제가 테스트 해보고요."

김남희는 자전거를 걱정했다. 김남희스러웠다. 자전거는 김남희만큼 다치지 않았고, 구르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에 힘을 주고 바퀴를 굴렸다. 바람은 강했고 밤하늘의 달은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도로는 여전히 캄캄했다.

"야, 박상규, 넌 내가 걱정도 안 되냐?"
"에이, 천하의 김남희가 마지막 6km 남기고 포기하겠어?"
"내가 죽었으면 넌 아마 평생 폐인으로 살아갈 거야. '나 때문에 사고가 났어, 내가 살릴 수 있었는데' 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말이야. 맞지?"

말 그대로 김남희에 대한 믿음이 컸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남희의 말대로 대형 사고가 났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김남희의 추락'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던 건 순전히 도랑이 시멘트가 아닌 흙이었기 때문이다.

도랑이 흙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김남희는 몸 이곳 저곳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는 마지막 6km를 남기고 중단됐을 것이고, 그녀의 말대로 난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당근 '김빠'였다

추락사고의 상처를 보여주며 웃고 있는 김남희.
추락사고의 상처를 보여주며 웃고 있는 김남희. ⓒ 박상규
어쨌든 김남희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그녀는 "멋있게 개선장군처럼 끝마치려고 했는데, 이게 뭐냐, 막판에 완전히 스타일 구겨졌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추락의 공포를 잊고, 다친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까진 무릎으로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참 멋있게 보였다.

그 순간 김남희가 "너 김빠 맞지?"라고 물었다면 평소 부인하던 태도를 바꿔 그냥 "당근이지!"라고 답했을 것이다.

12월 2일 저녁, 일주일만에 다시 돌아온 제주도 모슬포의 밤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천천히 더디게 달린 우리는 어느덧 첫 출발지였던 간판도 없는 자전거 대여점에 도착했다. 마중을 나온 사람은 없었고, 첫날처럼 고장난 자전거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종착점에 도착해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김남희를 안았다. 그녀도 나를 안았다. 우린 그동안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짠 바다내음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여행기 한 편이 더 남았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