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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과거로 가는 마음의 문
추억은 과거로 가는 마음의 문 ⓒ 이성재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나를 전학시키셨다. 전학일 3일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많이 있었던 중학교를 떠나기 싫어하는 내 성격을 아신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에다가 친구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아버지 나름대로 노파심이 있으셨던 것 같다. 전학 사실도 선생님에게서 들어야 했다.

전학을 가야 하다는 사실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녁 늦게 집으로 들어갔다. 외아들을 둔 집안은 당연히 초긴장상태였다.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관호야! 선생님에게 전학 가는 것 들었다면서."
"……."
"허허허. 그래서 심통 부리는 거냐?"

아버지가 왜 나를 전학 보내시려고 생각하셨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른다. 추측하기는 외아들로 자라서 친구 좋아하는 내가 의타심이 커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스로의 의지를 키워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내린 조치라 생각한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고 할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새로운 학교는 낯설었다. 나는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전학 첫날부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붙임성 있게 다가가는 나에게 새 학교의 친구들은 잘해 주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담임인 체육 선생님이 나를 비롯한 몇몇 학생을 복도로 부르셨다. 그러더니 물걸레 자루로 만든 몽둥이로 엎드린 자세에서 열대를 때렸다. 장딴지에는 시퍼런 몽둥이 자국이 선명하고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때리던 선생님이 "학적부가 사람을 속이는군"이라는 말을 했다. 순간 어린 나이에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성적도 좋았고, 부반장이었고, 학적부의 행동 발달 상황도 좋은 얘기만 있었다.

그런데 그 기록을 뒤집는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를 살펴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싸움 한번 안해 보고, 학교 빠지는 날 없이 공부 열심히 하면서 친구들과 잘 지냈는데'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모르는 몽둥이세례를 받고 일어섰더니 선생님이 내일 당장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큰 소리를 쳤다.

아버지가 선생님한테 돈봉투를?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버지 표정이 굳어지시는 것을 느꼈다.

"관호 네가 무슨 잘못을 한 모양이구나!"
"아버지, 전 이유를 몰라요."
"그래도 선생님이 그렇게 하실 때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아버지의 반응이 서운했다. 평소에 그렇게 아들을 사랑하고 아끼신다던 아버지가 선생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그날도 나는 풀이 죽어 방안에만 있었다.

다음날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다. 선생님을 만난 후 나를 보러오셨다.

"관호야! 공부 열심히 해라. 아버지가 있잖니."
"무슨 말 하세요? 선생님이."
"아니 별로. 선생님과 식사하자고 했더니 안하신다고 해서 그냥 간다."
"그럼, 왜 아버지 오시라고 했대요?"

아버지는 대답이 없으셨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고 겨울방학을 맞았다. 방학이 오기까지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긴장감이었다. 선생님의 기세등등함과 학생들에 대한 차별은 대단했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그러더니 두툼한 흰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선생님 집에 다녀 오거라. 인사하고 와라."
"이게 뭔데요. 돈 아닌가요?"

나는 돈 봉투를 들고 걸어서 선생님 집 근처까지 갔다. 우리 아버지답지 않은 일 같았다. 선물은 하셨어도 돈 봉투를 선생님에게 주신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전했다고 하고 다른 데 버려 버릴까?''가난한 사람 줄까?''교회에 헌금 할까?'

나는 이유 없이 맞은 몽둥이세례만 생각나는데 아무리 아버지가 시키신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몇 분간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만한 일을 하실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스승에게 전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선생님 집에 들어가보니 한옥 마루에 난로가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고 바로 나왔다. 학교에서 본 선생님과 집에서 본 선생님의 모습은 달랐다.

아버지에게 돈을 전한 사실과 집 구조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웃으시며 내 등을 만져주셨다. 난 궁금했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무척 궁금해졌다. 이유를 물었다. 잠시 대답이 없으시더니 입을 여셨다.

"그 돈은 선생님과 너에게 같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네! 나는 빈손인데요?"
"선생님이 너에게 잘해주시겠지. 몽둥이로 안 때리고. 허허허."

그 순간 아버지와 선생님의 거래관계에 대해 알아버렸다. 전학 온 내가 일종의 신고식이 없었다고 선생님은 여기신 모양이다. 아버지 성격에 웬만하면 돈 봉투를 전할 분이 아닌데 나를 위해 자존심을 꺾으신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방학 지나고, 봄방학 지나면 3학년 올라가잖아요? 그러면 끝인데 왜 주셨어요?"
"선생님 집에서 할아버지 한 분 못뵈었니?"
"아니요? 선생님 집에서요?"
"장 선생님 아버지가 아버지 스승이시란다."
"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은근하게 돈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담임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셔서 장학사 친구를 통해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시는 과정에서 옛 스승에 대해 아셨다고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소설 같은 일을 겪은 아버지는 병상 중에 있는 스승과 그 아들인 나의 담임선생님 그리고 나를 위해 이상하지만 마음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셨던 것이다.

몇년 전 개봉되었던 영화 <선생 김봉두> 같은 상황이 담임선생님의 상황이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이상한 환경을 빌미로 스승의 치료비 일부를 지불하셨다. 그리고 나를 통해 작은 마음을 전하신 것은 일석다조(一石多鳥)의 효과를 위한 신중한 선택이었다. 아버지의 돈 봉투는 촌지였지만 그래도 따뜻한 촌지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아버지의 삶의 철학을 다시 떠올린다. 그것은 입장 바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음성이다. 내가 다소 희생한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작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간행하셨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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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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