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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창신동 봉제인들이 손수 만든 옷을 입고 무대를 걷고 있다(왼쪽). 이날 패션쇼 무대에 오른 강금실 여성인권대사와 남정숙 수다공방 교육생.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창신동 봉제인들이 손수 만든 옷을 입고 무대를 걷고 있다(왼쪽). 이날 패션쇼 무대에 오른 강금실 여성인권대사와 남정숙 수다공방 교육생. ⓒ 오마이뉴스 남소연
12월이 시작되는 첫날 늦은 일곱 시에 서울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는 봉제 공장 아줌마들이 자신이 손수 만든 옷을 입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인사들과 색다른 패션쇼를 열었다.

조명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당당하고 경쾌하게 시작한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봉제공장 아줌마들은 기성 모델 못지않은 당당함을 자랑했다. '저들이 정말 미싱에만 매달려 하루 16시간, 혹은 그 이상 박음질을 해대던 봉제공장 아줌마들이란 말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여러 날 정성 들여 꿰맸을 자신의 작품을 직접 입고,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은 유명인사들과 함께 무대 위를 누비는 그들의 발걸음은 당당하고 경쾌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품격이 배어 원숙미가 묻어나는 의상들은 한결같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강금실, 권해효, 이수호, 심상정 등 이름만 듣고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유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하게 워킹을 마친 봉제공장 아줌마들. 자랑스런 이들의 어깨를 끌어안은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는 감격의 눈물을 삼키려다 끝내는 눈물방울을 찍어 내고야 만다.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윤경로 한성대 총장과 천원순 수다공방 교육생이 나란히 무대를 걷고 있다.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윤경로 한성대 총장과 천원순 수다공방 교육생이 나란히 무대를 걷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무대에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나란히 오른 최정 수다공방 교육생은 봉제경력 2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봉제인이다.
이날 무대에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나란히 오른 최정 수다공방 교육생은 봉제경력 2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봉제인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온몸으로 노동자의 비참함을 알리다 죽어간 오빠 전태일 열사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침침한 불빛 아래 온몸을 구부린 채 하루 16시간 이상 힘든 노동에 시달리던 스무 살 무렵, 자신의 봉제공장 시다 시절을 떠올렸을까?

아니, 아마 지금도 여전히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 땅의 수많은 시다와 미싱사들의 고단함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리라. 하루빨리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고 가슴의 비통함이 그치는 그날이 오면, 이 땅의 모든 여성 노동자들은 찬란한 날개를 달고 참자유의 비상을 하게 될까.

16살부터 22살 때까지 봉제공장의 노동자로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함께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가던 전순옥씨는 1989년 35살의 나이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전씨는 12년만인 2000년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논문으로 노동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창신동 봉제 공장 아줌마들 곁으로 되돌아왔다.

안락함을 버리고, 전씨가 그들 곁으로 돌아온 이유는 소박하지만 너무나 절실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우스갯소리가 무색하게 경력 20년, 30년차 봉제사 아줌마들의 고단한 삶은 열악했던 70~8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경제 발달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강춘희 화가와 전복희 수다공방 교육생이 나란히 무대를 걷고 있다.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강춘희 화가와 전복희 수다공방 교육생이 나란히 무대를 걷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오른쪽)가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를 마친 뒤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오른쪽)가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를 마친 뒤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성 노동운동의 뿌리가 미약한 현실에서 사양 산업인 봉제사들의 처지에 그 누구도 귀기울여 주지 않았고, 아줌마들은 일터를 잃지 않으려 저임금과 중노동을 불사하고 여전히 몸과 마음이 부서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전씨는 힘들여 얻은 박사 학위로 보장된, 안정된 교수 자리를 버렸고, 그와 같은 이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창신동 봉제 공장 아줌마들 곁으로 돌아왔다.

전씨는 자신을 두르고 있는 '유학파 박사'라는 후광, 전씨가 그동안 축적해 온 역량을 모아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는 봉제공장 아줌마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기꺼이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값싼 노동인력이 넘쳐나는 중국과 베트남으로 옮겨간 수많은 봉제 업체들. 이로 인해 청춘을 바쳐 수출에 기여 했던 수많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일터와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있었고, 전씨는 어찌하든 그 아줌마들에게 날개를 되찾아 주어 찬란히 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들과 연대를 통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를 완성해, 그들과 함께 울었던 눈물의 시절을 마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대안으로 '노사공동훈련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 재교육을 실시했고, 올 한해 1기에서 3기까지 총 40명이 참여하여 재교육을 마쳤다.

그 첫 비상 실험인 패션쇼는 성공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날개옷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으며, 그 날개옷을 자신들도 입고 날아 보겠노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창신동 아줌마들, 그들이 찬란히 비상할 수 있도록 더 힘을 실어 주는 일은 그들에게 빚진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옷걸이가 안 좋아서 죄스럽다"
[인터뷰] '모델'로 나선 이수호, 강금실, 심상정, 권해효

▲ 1일 저녁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에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만숙 수다공방 교육생이 나란히 무대를 걷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 런웨이에 오른 기분이 어떤지?
"제가 전태일과 동갑이다. 이런 행사 자체가 의미도 있지만, 청계천 미싱을 밟는 우리 아줌마들, 그런 분들과 같이 걷는다는 것이 저에겐 의미 있는 일이다. 아직도 정말 풀뿌리처럼 살아서 빌딩이 들어서고, 모든 게 변화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당당하고,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옷은 구입해서 가끔 입기도 하고… 뭐.(웃음)"

- 비정규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마음이 편할 것 같지만은 않은데?
"개인적으로 착잡한 것이 많다. 비정규직 법안이 그런 방식으로 국회를 통과하고, 우리 민주노총 식구들은 총파업으로 맞서고, 정말 길거리에서 싸우는 이런 상황인데, 이 약속은 내가 오래전에 한 것이라 밑바닥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줌마들을 위해서, 이 행사에 힘들었지만 기꺼이 나왔다."

강금실 여성인권 대사

- 옷이 잘 어울리는데, 참가 모델로 홍보를 한다면?
"(웃음) 옷이, (입어보니까) 바느질이 몸에 배기지가 않고, 무지무지 편안하고 예쁘다."

-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내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갔을 때도 동대문 시장에 갔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많이 뭉클하더라.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을 맞았다는 것을 뜻깊게 생각하고, 정말 발전하고 성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하면 된다'라는 희망을 심어 준 것 같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 미싱사가 아닌 모델로 창신동에 서게 되었는데?
"25년 전에 내가 아가씨 미싱사였는데, (당시 공장에 들어갈 때) A급 미싱사로 속였다가 반나절 만에 C급으로 떨어졌을 때 생각하면 아직도 짠하다. 우리 미싱사 아줌마들,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해서 모터 달린 날개를 달아서 정말 당당하고 씩씩한 아줌마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권해효 배우

-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델로 선정된 소감은?
"잘 만든 옷인데…, 옷걸이가 안 좋아서 죄스러운 마음이다(웃음). 내 생각으로는 앞에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도 있는데, 보니까 주최 측에서 아직 정상적인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웃음)"

- 간단한 소회를 밝힌다면?
"오늘은 배우로 왔다기보다 여성단체연합의 홍보대사로 왔다고 생각한다. 30~40년 넘게 창신동 일대에서 동대문을 지켜오신 분들이 여는 패션쇼, 이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막 뒤에 있던 분들이 막 이제 앞으로 나섰고, 이것을 계기로 새로운 소비행태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것도 제안하는 것 같다. 그동안이라면 (우리 소비자들이 옷 구매에 있어) 이름과 브랜드에 팔렸다면, 이제는 질과 정성, 이런 것을 보고 구매하는 것은 우리 소비자의 몫이 아닐까." / 문경미

덧붙이는 글 | ☞'수다공방'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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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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