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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
ⓒ 박민삼
"와! 마법의성이다."

몇 년 전 모월간지에 실린 여행기사에서 월출산의 수려한 경관을 보고 감탄한 어느 여행기자의 초등학생아들이 내뱉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천왕사지로 올라가는 초입부터 도갑사로 이어지는 하산까지 6~7시간 내내 거대 바위암봉들이 산 전체를 거대한성처럼 울뚝불뚝 감싸고 있으니 어린아이에겐 동화 속에서나 봄직한 마법의성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오랜준비 끝에 그 마법의성에 오르기 위한 산행을 드디어 떠나게 됐으니 나도 그 어린아이처럼 동화속의 신비한 성을 떠올리며 흥분을 가라앉지 못했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경계에 위치한 월출산은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호남의 명산으로 평야지대가 많은 평평한 지형에 갑자기 불뚝 쏟아난 모양새에다 산전체가 독특한 바위암봉으로 둘러쌓여있어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나 용아장성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려한 전경에다 작년에 새로 단장한 높이120m에 길이가 62m인 구름다리로 유명한곳이다.

새벽3시. 전날 늦게까지 꼼꼼히 챙긴 배낭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서둘러 모이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동료들이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서너명을 더 태운 뒤 버스는 4시40분에 석관동을 출발했다.

▲ 구름다리를 지나 매봉,사자봉으로 오르는 암벽철계단
ⓒ 박민삼
서울에서 동서울요금소를 빠져나와 경부,호남고속국도를 4시간여를 조금 넘게 달려 광주광역시에 도착했다. 광산IC를 빠져나와 나주,영산포로 이어지는 국도를 40여분 달리니 영암읍이 보이며 가까이에 거대하고 신비스럽게 쏟아있는 월출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전체가 수목이 거의 없는 흰바위암봉으로 둘러 쌓여 있어 신비로움과 독특함이 배가되어 모든 이들에게 시선을 끌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 이곳이 18년 전 고등학생시절 친구들과 야영하며 올랐던 월출산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색다른 모습에 놀랐다. 사실 그 어릴 적 산행이란게 산에 대한 어떤 개념도 없이 마냥 친구들과 어울림이 좋아 산 따위엔 관심이 없는 단순 여행차원의 산행이었기에 내기억 속의 월출산은 단지 이름 석자뿐인 산이었다.

고향이 전남나주인 필자로서는 실로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인 셈이며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향수의 애잔함이 더해지는 그런 곳이다.

▲ 수려한 바위암봉들
ⓒ 박민삼
멀리 눈앞에 잡힐 것 같은 구름다리를 보면서 일행은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천왕사지 절터를 지나자 초입부터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시선의 즐거움은 곧바로 육체의 힘겨움으로 보상해야 하는 수려한 암릉길을 초겨울의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올라간 지 1시간쯤 지나자 갑자기 인원이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아본즉 바로 눈 위로 구름다리가 보이면서 다리로 올라서기 위해 대기하는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서였다.

내친김에 배낭을 풀고 10여분의 휴식을 취한 뒤 서둘러 긴 행렬에 끼어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구름다리로 올라서는 더딘 발걸음에 적응했다.

올라서는 철계단 폭이 좁아 내려서는 일행과 겹칠 경우 양쪽모두 마냥 기다려야하는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을 감내해야했다. 다행히 어느 산악회 집행부인 듯한 두 분의 교통정리로 한결 수월하게 구름다리로 올라설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우리 일행은 행운이었다. 공원관리사무소의 세심한 관리가 아쉬운 부분이었다. 직원이라도 한두 명 나와 통제를 해줬으면 좋을 것을….

▲ 높이120m, 길이62m인 구름다리의 산객들
ⓒ 박민삼

▲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바람폭포로 가는길
ⓒ 박민삼
구름다리에 올라서자 견고하고 단단하게 이어진 다리는 두 명이 충분히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넓게 설치되 있었고 예전에 흔들거리던 아찔함은 없어 스릴은 덜했지만 120m높이에서도 안정적인 주위 전경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다리 맞은편으로 펼쳐진 화려하고 독특한 바위암봉들은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고개를 들어 정상쪽을 바라보자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알 수 없는 불규칙한 바위들의 조화가 이곳이 바로 동화속 마법의성으로 들어선 입구인 듯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 뾰족하고 기묘한 바위암봉
ⓒ 박민삼
예전엔 구름다리를 건너서 전망대에서 다시 되돌아와야 했지만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건너편 직벽 암벽에 철계단을 설치되고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암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스릴을 느끼면서 수직계단을 타며 뒤로 보이는 아찔한 구름다리와 넓은 호남평야지대를 감상하며 매봉에 다다랐다.

음식에도 코스요리가 있어 나오는 음식에 따라 색다른 맛을 풍부하게 즐기듯이 산에서도 오르는 힘겨움에 따라 산은 적당한 보상을 코스별로 해주는 것같다. 매봉에 오르자 구름다리에서 그렇게 웅장하던 바위봉우리가 이젠 우리와 동등하게 마주하며 내 자신이 구름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월출산의 매력이다. 맑은 날씨 덕에 시야는 멀리 무등산까지 희미하게 들어올 정도다.

▲ 천왕봉으로 가는 능선길
ⓒ 박민삼
매봉를 지나 사자봉을 옆에 끼고 한참을 내려섰다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는 힘겨움이 계속됐다. 거기다가 휴일산행인파로 더딘 정체는 일행을 더욱더 지치게 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눈앞에 큼직한 바위사이로 한사람 지나 다닐 수 있는 바위통로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통천문이란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은 말 그대로 이곳만 지나면 곧바로 정상인 천황봉에 도착하게 된다.

다왔다는 안도감에 내친김에 정상까지 쉼없이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인 천황봉(809m). 정상은 300여명이 쉴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되어 있었는데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 찍는데도 순서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사람에 치어 주변 조망은 포기하고 서둘러 도갑사로 향하는 하산길로 내려섰다.

▲ 정상을 내려와 바람재,구정봉으로 향하는 능선길
ⓒ 박민삼
하산길은 정상까지 올라 오는데만 2시간 30분이 소요됐는데 도갑사까지 4시간이라는 긴 걸음이 요구되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구름다리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하산로는 바람이 유난히 심하게 불어 바람재라 불리는 안부삼거리를 지나 월출산 3대 국보의 하나인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해탈문을 넘어 아홉개 웅덩이 있다는 구정봉을 스쳐 지나고 향정봉의 가파른 오름길과 내림길을 반복하자 이제와는 전혀 색다른 월출산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억새밭(미왕재)에 도착한다.

▲ 초겨울의 억새밭(미왕재)
ⓒ 박민삼
"과연 이곳이 월출산 맞아?"

5시간여 동안 수려한 바위암봉의 감격에 적응할 때로 적응해버린 우리에게 이곳 억새밭의 소박하고 아담한 모습에 한 일행이 내뱉은 말이다. 걸어왔던 길을 뒤로돌아 보니 그 웅장하고 화려한 바위암봉들은 온데간데 없고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에 갈피를 못잡는 억새의 몸부림만 비춰지고 있었다.

거친 풍랑을 만나 힘겨운 사투를 벌인 끝에 찾아온 잔잔한 바다위의 편안함이랄까. 억새밭에서 산행의 마지막 여운을 즐긴 뒤 일행은 1시간을 더 걸어 천년고찰 도갑사에 도착함으로서 7시간의 긴 월출산 종주를 마무리했다.

▲ 끝없이 펼쳐진 하산 능선길
ⓒ 박민삼
이번 산행에 동행하여 무척 고생하신 예전 그룹 '영사운드' 멤버셨던 이성열(53세,수유동)님이 불러주셨던 불후의 명곡인 <등불>, <달무리>. 팬으로서 직접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행복함도 있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월출산에 달이 뜬다."
영암아리랑의 가사처럼 서쪽에서 가장먼저 달이 뜬다해서 붙여진 이름 월출산. 그 신비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마음에 품고 내년에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서울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덧붙이는 글 | 11월 19일 다녀온 산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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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그 길을 찾고...기록으로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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