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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나 여행을 하면서 필자가 가장 많이 봐온 것은 바로 군부대이다. 철조망이 쳐져있는 높다란 벽과 함께 입구를 지키는 초병들, 그리고 '촬영금지' 안내문은 이제 익숙해질 정도로 답사 동안 진저리나게 봐왔다. 더욱이 경기도는 북한과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필자는 가는 곳마다 군부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도 예외일 수는 없어서, 일부 군부대는 문화재까지 아우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아직도 상당수 문화재가 관람객들의 자유로운 관람과 사진 촬영 대상이 되지 못하고 군부대 안에 외로이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문수산성도 이에 속한다. 관람이나 사진촬영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사정은 비교적 좋다고 할 수 있지만, 군부대 시설 때문에 곳곳이 통제되어 있다. 그나마 최근에 문수산 정상 등 군부대 안에 있었던 많은 문화재에 대한 관람 규제가 풀렸거나 곧 풀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한 일이다.

▲ 문수산성 남문. 강화대교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도 볼 수 있다.
ⓒ 한대일
한국 사람들은 국사 교과서를 통해 문수산성의 이름을 지겹도록 접해왔다. 1866년 병인양요에서 정족산성 전투와 함께 한국 근대사를 찬란히(?) 장식한 '문수산성 전투'라는 용어를 외우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문수산성을 직접 가봤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화도 수학여행 장소로 필히 들르는 정족산성에 비하면 초라한 대접이라 하겠다.

▲ 남문과 이어지는 성벽.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 한대일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문수산성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의외로 편리하다.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강화도로 넘어가는 버스 모두 문수산성도 간다. 강화대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있는 정류장인 성동검문소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문수산성 성문이 보인다. 더 깊숙이 들어가서 문수산 삼림욕장으로 들어서면 성벽을 탄 채 문수산 정상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 문수산성에서 내려다 본 강화해협.
ⓒ 한대일
위에서도 말했듯이 문수산성이 있는 곳은 북한과 가깝다. 그래서 그곳엔 지금도 군부대(그것도 해병대이다)가 상주하고 있다. 성벽길 곳곳은 철책으로 가로막혔고, 벙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수산 정상은 최근까지 일반인들의 등반이 금지되었다가 근래 규제가 겨우 풀렸다. 그리고 문수사를 통해 내려오는 길 바로 옆에는 막사와 훈련장이 있다. 이처럼 곳곳에 상주한 군부대와 관련 시설들은 관람객이나 등산객에게 무거운 분위기를 심어 준다.

▲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문수산성 성벽.
ⓒ 한대일
이렇듯 문수산성은 예나 지금이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을 방어하는 곳이었고, 현재는 한강을 경계로 저 너머의 북한군을 경계하는 곳이다. 이를 좋게 해석하자면 산성이 아직도 국방상 요지로 중히 쓰이고 있다는 뜻이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관람객이 자유로운 답사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산성 자체로 보면 수백 년 세월 동안 겪은 고생을 아직도 하고 있는 셈이다.

▲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문수산성 성벽.
ⓒ 한대일
숙종 때 축조된 문수산성은 강화도와 서울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나중에 강화도를 통해 서울로 진격하려 했던 외세에게 문수산성은 가시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상륙한 600여명의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을 공격했는데, 산성 수비를 담당하던 한성근과 그 휘하 조선군은 분전했지만 무기의 열세로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성과 그 안에 있던 민가가 철저하게 파괴됐지만, 조선군도 프랑스군에 만만치 않은 손실을 입혀 서울로의 진격을 멈추게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 벙커 입구. 문수산성 곳곳에는 아직도 군 관련 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 한대일
20세기가 도래하면서 무기가 변화하면서 산성의 쓰임새는 차차 줄어들기 시작해 점점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성의 관점에서 보면 국방이라는 이때까지의 격무에서 벗어난 채 조용한 안식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세에 와서 많은 산성들이 복원되었고 사적으로 보호받음과 동시에 일부는 관광지가 되어서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문수산성은 아직까지도 군사상 요지로 서울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분단된 후 한국 정부는 김포공항을 보호하기 위해 고심했다. 공항은 공중에서 물자나 군사들을 보충할 수 있는 공급처였기에 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김포공항의 이런 중요성을 차치하더라도, 강화도나 김포를 통해 서울 서쪽으로 진격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곳곳에 군부대가 배치되었다. 이렇게 되니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문수산성의 중요성은 다시 대두되었다. 더욱이 이제는 문수산 일대가 최전방이 되었으므로 문수산성은 국방의 임무를 피할 길이 없어보였다.

▲ 문수산 정상과 문수사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는 홍예. 병인양요 때 문루가 파괴된 채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한대일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문수산성에는 현재도 군부대가 상주한 채 서울을 지키고 있다. 물론 평화 무드가 조성됨에 따라 문수산에 대한 규제가 지금은 많이 풀려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문수산성이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많은 문화재들은 원래 수행했던 임무를 끝낸 채 지금은 휴식 상태에 놓여있다. 역대 왕들의 생활공간이던 궁궐은 이제 시민들의 문화공간이 됐고, 왕릉은 주변 회사원들의 쉼터가 되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비극 때문에 아직도 많은 문화재들은 군부대 안에 갇힌 채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문수산성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과업을 지금까지도 수행하고 있으니 그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문수산 정상 표지석.
ⓒ 한대일
문수산성이 본연의 임무를 내려놓고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통일 밖에 없을 것이다. 통일로 남북 간 분열을 끝내야 한강을 경계로 한 대치상황은 풀릴 것이고, 자연히 문수산성에 있던 군부대는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문수산성에서 전쟁이 끝나면 휴전 중인 한국전쟁도 끝난다는 얘기는 결코 허풍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그렇다고 마치 옛날식처럼 성벽 위에 병사들이 총을 든 채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문수산성이 위치한 문수산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고, 이를 군사적 요충지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사는 싸이월드 페이퍼 '입실론의 지구촌 지르밟기'를 통해서도 볼 수 있으며, 차후 '입실론의 C.A & so on Travel 가이드페이퍼'를 통해 문수산성 답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아직 발행은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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