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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동국포럼 강연 참석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창(昌)의 복귀.

이회창 전 총재는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언론이 그의 행보를 놓고 정계복귀를 할 것이냐 아니냐며 설왕설래하고 있는 순간, 이 전 총재는 이미 정계복귀 선언을 하고 있었다.

어제(20일) 경남 창원에서 있은 이 전 총재의 강연은 정계복귀 선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좌파정권 종식을 위해 할 일을 할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밝혔고, "2007년에는 좌파정권을 말끔히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말만 안 나왔지, 내년 대선에 깊이 관여하겠다는 의중은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말을 던졌다. "나는 대권, 그런 것보다도 국민의 자유와 자유의 정신을 무시하는 좌파정권이 다시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더 중하고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총재가 정계복귀를 할 것이냐를 따지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는 이미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정계복귀 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이 전 총재는 외곽에서부터 정치를 재개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정치에 대한, 특히 대권에 대한 그의 미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세론을 믿다가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두 차례의 선거결과가 어찌 회한으로 남지않을 수 있겠는가. 창원 강연에서도, 2002년 대선 당시 앞서가던 자신이 패배한 것은 여당의 '깜짝쇼' 때문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한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전 총재는 내년 대선을 향해 계속 앞으로 가려할 것이다. 외곽정치를 하다가 상황이 허락만 한다면 한나라당에 복귀해서 '병풍' 역할을 하려할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상황이 허락한다면 또 다시 대선에 나서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정권 종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결정하게 되어있다. 대선정국의 상황이, 그리고 한나라당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이 전 총재가 하겠다는 '역할'의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권 4수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던 마당에, 이 전 총재라고 해서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권 3수를 못하란 법은 없을 것이다. 그의 정계복귀를 한나라당이 받아들이든 아니든, 그리고 그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든 아니든, 그것은 한나라당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다.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10월 19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동국포럼'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강연에서 '좌파정권의 대북정책이 파탄에 이르렀다' '한미동맹 약화시 핵무기 개발을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드는 두 가지 걱정이 있다.

첫째는 '차떼기'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다. 이 전 총재는 누가 뭐래도 '차떼기'의 최고 책임자이다. 그에 대한 법적 책임여하를 떠나 모든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입장이다. 상상을 초월한 정경유착과 부패행위로 우리 정치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지게 만든 행위에 대한 책임은,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사면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굳이 이 전 총재가 아니어도 '좌파정권'의 종식을 위해 나설 사람은 많다. 이 전 총재가 안나서도, 지금 이대로 가면 정권은 넘어온다고 한나라당은 굳게 믿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구태여 차떼기의 최고 책임자가 정계에 복귀하려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는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자격시비만 불러일으키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두 번째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전 총재의 모습이다. 그는 한때 보수 정치세력 내부에서는 그래도 합리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과거 시절 이회창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한나라당이 좌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이 전 총재가 보여준 모습에서는 기본적인 합리성이나 균형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최근 발언들에서는 '좌파정권'과 '친북좌파세력'에 대한 증오가 가득 배어있었다.

북핵문제 해법, 남북관계, PSI 문제 등에 대한 그의 입장들을 들어보면 한나라당보다 더 오른쪽에 가있는 보수단체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치인 시절 그가 강조했던 '통합'에 대한 사고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적대와 대결의식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대선에서는 색깔론과 이념대결의 구태가 사라져야 할 판인데, 이 전 총재는 새삼스럽게 이념대결의 깃발을 들고 정계로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 하나 긍정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는 우리 정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국민이 더 걱정하지 않도록, 한나라당 차원에서 잘 정리가 되기를 주문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나라당이 안고 가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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