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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틀니를 살짝 내보이며 웃으시는 사랑스런 우리 시어머니
새 틀니를 살짝 내보이며 웃으시는 사랑스런 우리 시어머니 ⓒ 박명순
"엄마야!"

아들아이가 세수를 하러 들어갔다가, 세면대 위에 놓인 어머니의 틀니를 발견한 것이다. 워낙 깔끔하신 분이라, 그동안 당신의 틀니를 식구들 눈에 띄지 않게 잘 간수를 해오셨는데, 웬일로 깜빡하셨나 보다.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도 처음으로 틀니를 구경하게 된 아이가 기겁을 했다.

"엄마, 틀니가 뭐 저래. 징그러."

어머니는 일찌감치 이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오십이 조금 넘어서부터 틀니를 하셔야만 했다. 당신 말씀으로는 군입질 거리가 없는 어린 시절에 생쌀을 씹는 것을 좋아해서, 부모가 아무리 말려도 이불 속에서 한 줌씩 매일 씹어 드셨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이를 낳고부터 이가 하나 둘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툭툭 빠져나가더란다.

틀니에도 수명이 있어서 아무리 잘 사용해도 10년 정도면 닳거나 헐거워져서 새로 맞추어야 한다. 인공으로 된 것이니 생체 변화에 따라 잇몸이 붓거나 정상일 때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가 있다. 그래서 틀니를 맞출 때는 신체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맞추는 것이 그나마 잘 맞는 틀니 맞추는 법이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드신 분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니 틀니가 제 잇몸처럼 딱 맞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늘 고통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한 대에 이삼백씩 하는 고가의 임플란트를 해 드릴 형편도 못 되거니와 또한 고령의 나이엔 악골기반이 부실해 함부로 시술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틀니로 견디려니 오랜 세월 틀니로 다져진 제법 튼실한 잇몸일지라도 얼마나 고달프실까. 일찌감치 임플란트를 해서 자리 잡힌 친구분을 부러워하실 땐, 자식으로서 여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게 아니다. 이번에 새로 맞춘 틀니도 그나마 자리를 잡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어느 날인가, 함께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인상을 찡그리며 당신의 틀니를 불편해 하셨다.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는다는 게 그만 무심코 내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린 적이 있다.

나의 친할머니 역시 이가 일찌감치 소실되어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틀니를 해 드리려고 하니 극구 사양하셨다. 세상에 틀니만큼 불편한 게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했던가. 할머니는 서양 동화책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입 모양이 쭈글쭈글했지만 잇몸이 이빨처럼 튼튼해져 못 드시는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 외관상 볼품은 없었으나 틀니로 인한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께 그 말이 가시가 되었던지 못내 서운해 하셨다. 생각해보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말로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라는 뜻으로만 들렸을 법도 하다. 시의 적절치 않았음을 반성하고 바로 사과를 드렸다.

오늘 아침 후식으로 내놓은 사과를 돌아가신 내 친할머니처럼 반을 쪼게 숟갈로 긁어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매년 받는 건강 검진에선 특별한 문제는 없다면서도 의사는 노인성 질환인 만성 위염 처방을 내리며 한 봉지나 되는 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어머니의 그 조급한 성격을 바꾸었으면 하는 내 바람은 약에만 의지하려는 어머니를 마냥 못마땅한 눈으로 보게 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성격이란 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인가. 나 또한 내 고집스런 성격을 고치기 어려운 데 말이다.

소화가 안 되는 이유를 그저 노환쯤으로 몰아대며 어머니의 조급한 성격만을 탓한 것이 죄송스럽다. 어머니가 덜 신경 쓰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이 내 몫인 것을.

문득, 며칠 전 시부상을 치른 선배로부터 들은 소리가 생각났다.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려. 돌아가시고 나니까 내가 못한 것만 생각나고 정말 후회스럽더라."

암만, 맞는 말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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