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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수능시험을 보기 전날, 고사장으로 지정된 학교에서는 고사장을 만드느라 바쁜 일과를 보냅니다. 올해 우리 교실은 고사본부가 설치가 되어 책상에 수험표를 붙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고사본부 만드는 일도 크고 작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수험생이 아닌 재학생들은 각 학급별로 고사장이나 고사본부 등 학급별로 지정된 수험장을 만든 뒤에 일찍 집에 보내줍니다. 수능시험을 보는 내일은 등교하지 않아도 되니 녀석들의 마음은 한창 들떠 있습니다. 마음이 바쁜 담임과는 달리 녀석들은 급할 게 없습니다. 그런 녀석들을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오가면서 겨우 고사본부를 만들었습니다.

고사본부를 다 만들고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재수생 녀석들이 꾸벅꾸벅 인사를 합니다. 수험표를 받으러 온 것입니다. 수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기는 재수생이나 고3 녀석들이나 다를 바 없지만, 재수생 녀석들의 표정이 더 무거워 보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재수한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수험표를 받으러 온 재수생 제자

ⓒ 이기원
"안녕하세요.'
"어, 수험표 받으러 왔구나."
"네."
"공부 열심히 했어?"
"……."
"고생했다. 시험 잘 봐."
"고맙습니다."


본관 건물에서 급식소로 가는 길목에서 재수생 두 녀석을 만났습니다. 인사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녀석들은 급식소 쪽으로 나갔습니다. 후문을 통해 집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재수생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녀석들의 발걸음이 꽤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녀석들도 학교 다닐 때 점심이나 저녁 시간이 되면 조금이라도 먼저 밥을 먹기 위해 이곳을 달려가던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재수생이 되어 수험표를 받고 무거운 걸음으로 그 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수능 대박'을 바라는 글이 곳곳에 있습니다. 후배들의 글도 있고, 동문회나 교사들의 격려 글도 눈에 띕니다. 다른 사람 몰래 숨어서 쓴 글도 있습니다. 콘크리트가 채 굳기도 전에 수능 대박을 바라면서 써놓은 글도 있습니다.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양말을 신고 다니는 녀석도 있습니다.

ⓒ 이기원
재수를 하는 녀석들의 마음에도 수능 대박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겠지요. 재수라는 힘든 길을 선택한 만큼 처음 수능을 보는 고 3 녀석들보다 오히려 더 간절하게 대박이라도 터져 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능이 복권처럼 요행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동안 노력한 만큼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얻은 결실이 가장 값진 것이겠지요. 멀어져가는 재수생 녀석들을 향해 마음으로 응원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최선을 다해 좋은 결실 거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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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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