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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남녘에 있는 문의문화재단지 내 고가의 툇마루. 아래 불을 때는 아궁이 때문에 높게 달린 툇마루. 창을 열고 기침 뱉는 소리 내보내시는 할아버지가 연상된다.
ⓒ 박태신
요즘은 여행지에서 잘 보존되고 있는 한옥들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강릉 선교장의 대대로 이어진 대궐 같은 한옥도 있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민가를 한 곳에 모아서 작은 마을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습니다. 가깝게는 서울의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멀리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나 청주의 문의문화재단지 같은 곳이 그렇습니다. 남춘천 못 가 있는 신동면의 김유정문학촌 안에도 번듯한 한옥이 지어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 들어가면 어렴풋이 어렸을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콘크리트 냄새에 절은 눈과 마음을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줍니다. 어릴 때의 풍경과 연을 잠시 이으면서 동심을 회복하고 잠시 낮아진 연령이 되어 마당과 부엌과 광을 노다닙니다. 여기를 들추면 한 추억이 저기를 들추면 또다른 추억이 나래를 펴고 일어섭니다. 이상하게도 여행지 바로 그곳은 내가 살아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자신의 마음 속 고향을, 시골의 풍광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행지의 정서와 내 정서가 만나 포개지는 순간입니다.

이런 곳에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것이 대청마루나 쪽마루, 툇마루입니다. 안이면서 동시에 밖의 공간인 이 마루에는 가족들의 무수한 발걸음이 있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이 벌어지며, 외부의 잔광과 찬 기운이 내부의 인공빛과 온기가 만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마룻바닥은 집안의 모든 이야깃거리를 고스란히 엿들어서 귀가 밝아졌을 것이고, 속살에는 무수한 버선발의 땀내가 배였을 것이며, 자기 위에 놓인 집안 살림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 눈여겨보니 눈이 커져 있을 것입니다.

▲ '작은 방 길몽'. 나무에 단청기법으로 그렸다. 잠시 낮잠을 맛나게 즐기고 있는 소년. 어쩌면 이 소년은 화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그 위로 새 한 마리도 소년을 따라 졸린 눈으로 눈꺼풀을 깜박인다.
ⓒ 김덕용
이런 마루의 결 따라 그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결 속에 온 집안의 이야기를 저장해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그 이야기를 주인으로 하여금 말하게 충동질하는 마루는 어쩌면 그림을 그리기에 더욱이 우리의 어릴 적 추억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캔버스일 것입니다.

동양화가 김덕용님이 바로 그 화가입니다. 지금 정독도서관 아래 자리잡은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집--들러보다'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갤러리가 있는 곳 주변은 한옥이 많은 곳입니다. 가회동과는 지척에 있지요. 김덕용님의 그림은 그런 한옥 어딘가에서 한 웅큼씩 풍경을 떼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이 화가의 그림을 인상깊게 보았는데 다시금 만나게 되었습니다.

▲ '창-지음(知音)'. 소년이 부르는 피리 소리가 리듬이 맞을까마는 그 소리 창 너머 마당을 바삐 돌아다니시는 어머니 귀에 하루종일 환청으로 자리잡을 터.
ⓒ 김덕용
그렇다고 마루만이 캔버스는 아닙니다. 반닫이 가구나 문짝, 판자 등 결이 살아 있는 나무는 다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아니 나무의 결 자체가 그림 속 배경이 됩니다. 마치 언덕을 깎지 않고 경사진 곳에 따라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결을 마음껏 살리면서 겸손하게 단청을 얹습니다.

김덕용님의 그림 기법은 동양화가답게 단청을 사용합니다. '단청(丹靑)'이란 말은 원래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일"이지만 넓은 뜻으로는 색을 칠하는 행위 자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김덕용 님은 '붉을 단'은 대지를, '푸를 청'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포괄적 의미로 이 단청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색을 칠하는 대상이 나무나 건축물일 경우에 이 어휘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 '결-누이의 뜰'. 누이의 방과 누이의 아름드리만한 뒷터는 멈직한 곳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비밀이 숨쉬고 있는 안온한 공간이기에.
ⓒ 김덕용
화가의 그림 속에는 원색이 없습니다. 화가는 '삭혀진 색'을 선호합니다. 사람들이 버선발로 돌아다니고 수없이 매만져 반들반들해졌을 마룻바닥이나 가구에 원색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삭혀진 색'은 그대로 나무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사람의 얼굴은 연한 나무색, 배경은 진한 나무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색이 나무의 색을 받아 여린 색입니다.

▲ '결--자운영'. 나무에 자개 혼합기법으로 만든 작품. 살포시 비단결 고운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마음을 매만지는 누이. 무슨 가슴 떨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 김덕용
여린 색으로 단청을 입혀도 화가는 세월을 덧입히는 장치를 합니다. 바로 비바람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화가는 많은 나무들을 대략 3개월 정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청을 입히고서도 색을 삭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전시회 그림에는 단아한 풍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결'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결-가을 햇살', '결-오색문', '결--자운영' 등등 결이 다양한 방향과 모습으로 살아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결은 화가가 찾아가고 있는 한국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 한국미는 외국인들에게도 잘 다가갑니다.

▲ '결 -들러보다'. 나무에 금박 혼합기법으로 만든 작품. '들러보다'라는 단어에는 붙박이로 머무는 공간이 아닌 어딘가를 잠시 거쳐간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말이다. 호기심 삼아 말이다.
ⓒ 김덕용
2년 전 전시회에 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기법도 있었습니다. 나무에 자개를 입히는 기법입니다. 자개는 여인의 예쁜 한복이 되어 빛납니다. 방바닥의 장판지를 캔버스로 삼기도 했습니다. 진짜 방바닥 위에 오색이불과 보(褓)와 쟁반에 담긴 복숭아가 올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화가는 그림의 소재를 얻기 위해서 테마여행을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직접 살고 있는 고가들을 많이 방문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적지에는 추억은 담겨 있을지 몰라도 사람 사는 내음은 더 이상 없을테니까요.

▲ '어머니-청실홍실'.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는 엄한 어머니일지라도 청실홍실 여린 색의 이불 같은 연약함은 숨길 수 없을 터.
ⓒ 김덕용
그림 속 분위기의 방에서 한 번 잠을 청하고 싶은 분은 안동 하회마을 내의 민박집을 가시면 됩니다. 한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손때 묻은 이불, 오래된 가구, 장판지 바닥, 고물 텔레비전이 있는 방 안에서 시골 밥상으로 저녁 한 끼 접하면서요. 노쇠한 보일러 윙윙거리는 소리가 정감을 깨긴 합니다만.

화가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할 참이라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런 화가들에게도 본이 되어주는 멋진 화가였으면 합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마음 속 어딘가 숨겨져 있는 어릴 적 추억상자를 잠시 열어보고 싶으신 분은 이 화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비록 이 화가의 그림 속 세상의 추억이 없으신 분들도 기껍게 화가의 한국미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덕용 개인전 : 이화익 갤러리(730-7818), 11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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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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