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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에서 바라본 Bayon 사원
남문에서 바라본 Bayon 사원 ⓒ 제정길

비록 살점은 떨어지고 얼굴은 주름 가득하나, 에메랄드 빛 하늘을 배경으로 온화하게 그리고 위용 당당하게 좌정하여 중생을 내려보며 짓는 미소는 아미타불의 現身인 듯, 아니 그곳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이 사원을 건립한 자야바르만(Jayavarman)7세 그 자신의 얼굴이라고 전하여지고 있다니,

Avalokiteshvara
Avalokiteshvara ⓒ 제정길

왕은 곧 신이라고 위엄을 부렸던가? 그러나 제병(諸兵)을 사열하던 코끼리 부조가 새겨진 단상에는 제왕(帝王)도 신(神)도 자리에 없고 흰 나무 두 그루만 하늘을 떠받고 있을 뿐이니….

코끼리 테라스 라고 불리는 왕의 사열대
코끼리 테라스 라고 불리는 왕의 사열대 ⓒ 제정길

허망해지려는 마음을 붙잡으며 발길을 돌려 무성한 밀림에 에워싸인 타프롬 사원(Ta Prohm temple)을 찾아본다.

Ta Prohm temple 을 휘감은 Banyan tree
Ta Prohm temple 을 휘감은 Banyan tree ⓒ 제정길

사원은 인간이 만들고 나무는 신이 만들어서인가? 날아다니는 새의 배설물에 의하여 사원 건물 위에 낙하된 콩알보다 작은 한 점 씨앗은 열대의 풍부한 우수(雨水에 의해 싹을 틔우고, 수백 년의 세월동안 기다리며 웅크리며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려 이제는 사원 보다 더 높이 사원 보다 더 깊이 대지에 발을 딛고 선 채 사원을 움켜잡고 있다.

물끼를 찾아 아래로 옆으로 마구 뻗어내리는 반얀나무의 거대한 뿌리
물끼를 찾아 아래로 옆으로 마구 뻗어내리는 반얀나무의 거대한 뿌리 ⓒ 제정길

시간의 썰 밀물은 강철같은 돌 건물을 두부처럼 여리게 만들고 연약하던 작은 묘목을 골리앗의 괴력으로 성장하게 만들어버려, 해가 갈수록 나무에 의해 사원은 짓눌리고 뒤틀리고 와해되고 파괴되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사원은 나무에 들려있고 사원은 나무에 의지하고 있으니, 나무를 베어내면 사원은 바로 쓰러질 것이고 그대로 두면 나무에 의해 하루하루 와해되어 갈 것이니, 어리석은 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조치란 나무의 성장을 억제하는 약을 주입하는 정도라니….

거대한 공룡같은 반얀나무에 움켜잡혀 서서히 파괴되어가고 있는 사원
거대한 공룡같은 반얀나무에 움켜잡혀 서서히 파괴되어가고 있는 사원 ⓒ 제정길

슬프구나 인간이여. 언제부터인가 욕망의 작은 씨앗 몇 몇 당신의 정수리에 싹을 틔워, 세월의 오고감에 따라 거대한 수림으로 성장하게되고, 이제 와선 우리 몸을 휘감고 안아 꼼짝할 수 없게 움켜잡고 있을지니, 어찌 할 것인가 단박에 베어 스스로를 사(死)하지 못한다면 하루하루 일그러져 가는 제 자신을 쳐다보며 있을 수밖에 없는 일…. 허물어져 가는 사원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몸으로서 보여주고 있는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알지 못한 채 사진 찍기에만 열중하니….

폐허가 돼버린 사원, 반얀나무만 우람차고...
폐허가 돼버린 사원, 반얀나무만 우람차고... ⓒ 제정길

어느 듯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때 맞춰 프놈 바켕(Phonom Bakheng) 사원이 있는 작은 언덕으로 올라섰는데, <툼 레이드>인가 하는 영화에 찍혀서인가 이곳에서 일몰을 보기 위하여 약간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는 지경이다. 해, 현란하게 떨어지다 마지막에 짙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니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인파들 허망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기다린다고 다 오는 것은 아니라는 짧은 경구하나 되새기며 퇴각하게 되는구나.

폐허만 남은 프놈바켕 사원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폐허만 남은 프놈바켕 사원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 제정길

덧붙이는 글 | 장삼이사(張三李四) 누구나 다녀오는 앙코르 와트를 그것도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와서 무얼 안다고 주절주절 글을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톤레샵 호수에서 양은 대야를 타고 구걸을 하던 외팔이 소년의 잔상이 며칠이 지나도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아 결국 이 글을 쓰고 말았다. 

그의 처참한 환경, 그러나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았던 밝은 미소. 그는 나보다도 우리 모두 보다도 훨씬 더 자기의 생을 사랑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므로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것을 나는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삶은 개체의 수만큼 다양하고 개체의 수만큼 또 외로워 결국 여행이란 이 외로움을 확인해보는 과정의 하나일터….

앙코르 와트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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