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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의 포스터
군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의 포스터 ⓒ 에이앤디 픽쳐스
이 영화에서 친구였던 유태정(하정우 분)과 이승영(서장원 분)은 군대에서 고참과 졸병으로 만난다. 고참인 태정은 암묵적인 폭력과 권력을 이용해 내무반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졸병인 승영은 그런 친구를 못마땅해한다.

승영은 '고참이 되면 절대 태정이처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태정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권위적인 고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결국, 현실과 타협해 버린 것이다.

영화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체와 피주체는 명확지 않다. 폭력을 당했던 자가 다시 폭력을 쓰고 그것이 악순환된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나에게도 내 인생에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흐른 뒤 마치 공식처럼 이들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어 버렸다. 그 슬픈 악순환을 나도 영화의 승영이처럼 철저히 경험했던 것이다. 그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은 바로 학창시절, 날 가르쳤던 교사들이다.

나에게 스승은 없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모교를 찾아, 보고싶은 선생님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모교를 찾은 적이 없다. 보고 싶은 교사도 없을 뿐더러, 이들은 나에게 학창시절 우울한 추억만 주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서 여고생 체벌 동영상이 공개돼 큰 이슈가 되었다. 난 이 동영상을 보면서 이전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그날은 졸업앨범을 찍는 날이었다. 처음 찍는 앨범 사진인지라 여느 때보다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날따라 담임 교사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음악 시간이었다. 다 함께 노래를 부르던 중 옆의 친구가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했고, 그것을 본 담임교사는 왜 다같이 노래 부르는데 너희만 부르지 않느냐며, 손바닥을 때렸다.

손바닥을 맞고 자리에 앉으며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고, 난 괜찮다며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러자 교사는 갑자기 성난 황소처럼 날 교단 앞으로 질질 끌고 나오더니, "내가 우스워?" 하면서 심한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팔, 배, 허벅지를 엄청나게 때렸다. 난 그저 묵묵히 맞기만 했다. 그리고 난 말끔히 옷을 차려입은 채로, 6교시까지 복도에 하루종일 꿇어앉아 있었다. 팔다리는 퉁퉁 부었고, 난 눈물이 범벅이 된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졸업앨범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졸업앨범을 보면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 교사는 나에게 교사라는 존재로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저 그는 나에게 폭력 행위자였을 뿐이다.

너무 맞아서 한 달 동안 다리를 절고 다닌 적도

고교 시절의 모습. 하루라도 선생님께 맞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였다.
고교 시절의 모습. 하루라도 선생님께 맞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였다. ⓒ 김귀현
중학교 때였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던 중, 갑자기 두 명의 친구들이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이어 국어 교사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소변을 보던 나와 그 두 명의 친구들 불러 세우더니, 말도 없이 따귀를 3개씩 때렸다.

난 영문도 모른 채 따귀를 맞았다. 그 따귀는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따귀였다. 드라마에서 남녀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만 주고받는 것이 따귀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가 맞으니 정말 아팠다. 아픈 것보다 맞을 때 느꼈던, 치욕적인 수치심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을 정도다.

나중에 그 친구들에게 물으니, 실내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복도를 돌아다니다 국어 교사를 보고 화장실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교사가 때리기 전에 왜 때리려 하는지 말이라도 해줬으면 어땠을까. 게다가 난 실내화를 신고 있어 문제의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었다. 수치심에 억울함까지 더해져 내 마음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명문이라고 불리는 곳에 갔다. 그리고 그 학교에 입학한 지 하루 만에 허벅지 살이 터지도록 맞으며, 명문의 비결이 '몽둥이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폭력이 비일비재하기로 유명했다. 지역 주민들이 학생들 맞는 소리에 때문에 민원을 제기할 정도였다. 학교 축제 때는 'OO고의 특산품'이라며 몽둥이 전시회까지 벌이기도 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종아리를 100대나 맞은 적이 있다. 50대가 넘어가니 차라리 감각이 없어져 아프지도 않았다. 덕분에 난 한 달 동안이나 퉁퉁 부은 다리를 어렵게 움직이며 절뚝절뚝 절고 다녔다. 물론 이런 아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 반에 꼭 두세 명씩은 다리를 절고 다녔다.

모의고사 가채점 잘못한 것이 맞을 이유인가?

특히 2학년 때 만난 담임교사는 모든 교사들을 불신하게 할 만큼 교사답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애주가였던 이 교사는 한 달에 두세 번꼴로 과음을 하고 출근했는데, 그럼 이날은 여지없이 휴강이었다.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에서 우린 휴강을 경험했던 것이다.

휴강의 기술(?)도 잊히지 않는다. 가끔 교감 선생님이 순시를 돌기 때문에, 꼭 돌아가면서 한 명씩 망을 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1분단과 2분단 사이에 신문지를 깔고 교실 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해 추석 전날 그 교사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이벤트를 하나 제공해 주었다. 추석을 앞두고 본 모의고사에서 가채점 결과 우리 반이 1등을 차지했다. 주당인 담임교사는 기분이 좋아 다른 담임들에게 술을 거하게 대접했다고 했다.

그러나 추석 전날 나온 실제 우리 반의 성적은 전체 3등이었다. 담임교사는 흥분해서 교실로 들어왔다. 그는 3개의 몽둥이를 들고 왔다. 왜 3개인지 모두 의아해했다. 그리고 1번부터 1명씩 불러서 기본 10대, 가채점 결과를 실제점수와 다르게 쓴 사람은 1점에 1대씩 때렸다.

때리는 이유는 "자신이 쪽팔려서"라고 했다.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제대로 쓴 친구도 10대씩 맞았다. 난 5점을 낮게 써서 15대를 맞았는데 40대를 넘게 맞은 친구도 있었다. 20번을 넘지 못하고 몽둥이는 박살이 났다. 45명을 다 때리기까지 3개의 몽둥이가 모두 사용됐다. 왜 몽둥이가 3개인지 이해가 됐다.

여느 때보다 더 지옥 같았던 추석 귀향길.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난 궁둥이를 붙이고 차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짓물렀고 고름이 생겼다. 나는 자기 기분 따라 우릴 그렇게도 때려댔던 그 교사를 절대 잊을 수 없다.

군대, 결국 나도 그들과 똑같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 김귀현
시간이 흐른 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가 좋아졌다.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작은 구타와 가혹행위가 용인됐다. 졸병 시절 난 <용서받지 못한 자>의 승영이와 같았다. 조직의 순리대로 당하면서도 난 '내가 바꿀 거야, 내가 바꾸면 돼' 하며 언젠가는 꼭 바꾸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고참이 되니 서서히 나는 달라지기 시작되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편해 보이지?' '일병 놈들, 밑에 애들 관리 안 하는구나' '상병 됐으면 군 생활 끝인가?' 하는 치졸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괜히 불편한 심기로 고참 생활을 했다. 그래도 '교사들처럼 되지는 말자!'라는 신념으로 절대 후임들을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신념은 쉽게 무너졌다. 어느 날 갓 들어온 신병을 불렀다. 불러도 대답 없는 그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난 자연스레 손이 올라갔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치고받고 싸운 것 말고, 처음으로 사람을 일방적으로 때려보는 것인데도 무척이나 내 행위가 자연스러웠다. 폭력에 길든다는 게 이런 것일까?

이후에도 나에게서 폭력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나를 때렸던 교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폭력은 하면 할수록 만성이 되었고 그 어떤 죄책감조차 없었다. 난 결국 그렇게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았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체벌을 심하게 하는 교사들에게 꼭 한번 묻고 싶다. 때리기 전에 대화로 해결해볼 생각은 없었느냐고. 보통 사랑하니까 때린다고 한다. 사랑하지도 않으면 무관심하다고 한다. 때리느니 차라리 무관심하라. 어떠한 경우든 폭력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물론 일선에서 훌륭하게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학창시절 존경할 만한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보다는 폭력을 행한 선생님들의 모습뿐이다. 12년의 학창시절 동안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에 대한 좋은 기억은 몇몇 폭력 교사들에 의해 지워졌다.

폭력은 순간이고, 육체적 아픔은 잠시일지라도, 정신적인 상처와 그 잔상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응어리 되어 남는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 응어리는 타인에게 분출이 된다. 이렇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학창시절의 교사 폭력에 대한 우울한 기억. 지금 교단은 과거와는 또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동영상 사건을 통해 여전히 교육 현장의 한 구석에 '사랑의 매'라는 탈을 쓴 가혹한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체벌의 한계를 넘어선 폭력을 행하는 교사들이여, 당신이 때린 매에 가슴까지 멍이 든 제자들이 훗날 어딘가에서 당신처럼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될지 모릅니다. 이젠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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