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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당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만난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현재의 정계개편 논의가 국민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1월 11일, 열린우리당이 창당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기념식은 10일 서울 영등포 당사 실내에서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당 간판이 내려지냐, 마냐의 상황. 지도부가 얼굴을 들기 힘든 행사다. 초대 당의장을 맡은 정동영 전 의장은 참석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예정된 지방 일정이 있다고 한다.

창당 기념일을 앞둔 9일 정 전 의장을 만났다. 당초 정 전 의장 측에선 인터뷰 주제를 북핵 문제 등 대북 정책으로 한정했다. 정치 현안에 대해선 말할 처지가 아니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인터뷰 말미에 몇 마디 물었다. 정 전 의장은 "원론적 답변이 되더라도 이해해달라"며 질문에 답했다.

"한나라당은 신개발독재 세력"

그는 어지럽게 진행되는 열린우리당 내 정계개편 논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창당 주역' '초대 의장' '당 대주주' ….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하는 처지다.

정 전 의장은 "현재의 정계개편 논의가 국민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새로운 가치와 명분을 내걸고 갔던 사람들이 불과 3년 만에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은 당에 대해선 '창당 실패론'이 아닌 '진화론'으로 설명했다.

"정당은 생물체와 마찬가지다. 한국 정당의 역사는 꽤 연륜이 쌓였지만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 역사는 짧다. 열린우리당이 내걸었던 가치와 명분은 옳았고 지금도 유효하다. 계속 추구해야 한다. 동시에 모자란 점도 있다. 성과를 다 거두지 못했다.

우리 정당 역시 끊임없이 진화해 간다. 찰스 다윈이 종의 진화론을 제기했는데, 같은 시대 칼 마르크스가 살기도 했다. 역사적 변증법과 함께 진화론을 대입해 보면, 정당도 끊임없이 변증법적 발전을 거듭해 가며 진화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면서 정 전 의장은 당의 발전을 고민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민주성'과 '개방성'이다. 핵심은 "기득권, 틀을 버리고 유연해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여러 번의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당에 경고를 보냈다. 변화의 요구다. 그 변화의 요구가 어떤 내용인지 읽어 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간명하게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민주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임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그는 "내 고민의 핵심"이라며 '미래의 방향'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국민은 미래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이 그 대안은 아니"라며 "'신개발 독재'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정동영의 시대정신은 '빵과 평화'

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은 이렇다.

[민주화] "어떤 정부가 들어서라도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경우에 따라 보수 강성 정부가 들어서서 다시 인권침해가 빈발하는 권위주의 통치가 부활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지난 15년 민주화를 진행시켜온 정부 역량의 한계, 리더십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지금쯤이면 2만불 시대에 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개혁 정부의 업적들이 박정희 시대를 능가할 수 있었다면 과거의 향수로부터 벗어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장사가 안 되고, 취직 안 되는 것,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한 향상이 없었다."

[평화] "남북 평화가 제도화되지 못했다. 아직도 정전 협정이 불안정한 평화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있어 한국전쟁 이후 가장 구조적으로 위협이 높아진 단계다. 그런 점에서 내년 새 정부의 구성을 놓고 경쟁하게 될 정간 간에 평화의 문제는 중요한 국가적 의제다."


한 마디로 '정동영의 시대정신'은 "평화와 빵"이다.

그는 오늘 27일, 4박 5일 일정으로 미국엘 간다. 일정은 빡빡하다. 민주평통 뉴욕협회에서 교포들을 상대로 '평화경제론'에 대해 특강이 예정돼 있다. 또 클린턴 정부 시절,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아 북핵 교착 상태를 타개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만난다. 워싱턴으로 가선 미 의회의 한반도 문제 담당관을 만날 예정이다. 미국의 한국 담당 관료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두 개의 한국> 저자 오버도퍼 교수와도 만난다.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북핵 해법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다양한 인사들을 접촉할 예정이다. 한국에 돌아오면 12월 중순, 대북 포용정책의 확실한 계승자임을 보여줄 태세다.

"참여정부, DJ에게 빚 졌다...노 대통령 성과·한계 모두 지고 가야"

그는 "참여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고 말한다.

"국난 상황에서는 국가 원로의 경륜이 중요한데…, 북 핵실험이 마치 포용정책의 책임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가운데서도 김 전 대통령이 견고하게 포용정책의 철학을 옹호하고 지키기 위해 행동하신 것은 참 대단해 보였다. 포용정책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공격받는 상황에서 결정적 버팀목이 되었다. 결연하고 단호한 용기와 신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다."


반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보다 신중했다.

"참여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는 옳고 앞으로도 그 가치는 실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실천 과정에서 당은 당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한계를 드러냈다. 왜 그렇게 되었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당내조차 존재하는 '비노' 정서 또한 현실이다. 노 대통령 '동승론' '하차론'이 정계개편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는 끊임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성과와 한계를 모두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 누구의 책임으로 미룰 수는 없는 문제다."


여기까지였다. '함께 가겠다는 건가'라는 노골적인 질문에 그는 '시간을 좀 달라, 이 부분은 정리해서 다음에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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