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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겨울 감기 예방에는 시원한 콩나물국이 으뜸
ⓒ 이종찬
초겨울, 감기예방과 감기 떼는데 특히 좋은 콩나물국

간밤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곱게 물든 단풍잎이 낙엽 되어 수없이 떨어져 뒹구는 11월 중순이 다가오면서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고 차다. 늦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영하권 가까이 뚝 떨어지고, 유리창에 성에가 뽀얗게 끼는 것을 보면 차라리 11월은 초겨울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 듯하다.

겨울이 일어선다는 입동(立冬, 7일)이 지나면서 날이 갈수록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진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환절기가 다가온 것이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사람들 몸속에 마치 복병처럼 은근슬쩍 숨어드는 불청객이 있다. 감기다. 특히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걸리는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몹시 귀찮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콜록콜록 나오는가 하면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려 주변 사람들까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감기다. 게다가 감기에 걸리면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감기를 떼기 위해 감기약을 사 먹으면 이번에는 또 졸음이 몰려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럴 때 가장 졿은 음식이 따끈한 콩나물국이다. 초겨울 감기예방과 감기 떼는데 특히 좋은 콩나물국은 간기능을 도와주므로 피로회복과 숙취해소에 으뜸 가는 음식이다. 특히 감기에 걸렸거나,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 따끈하면서도 시원한 콩나물국을 한 그릇 먹어보라. 금새 이마와 목덜미에 땅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몸이 풍선처럼 가벼워지리라.

▲ 콩나물을 물에 깨끗히 씻으며 콩깍지를 벗겨낸다
ⓒ 이종찬

▲ 씻은 콩나물을 냄비에 담고 멸치 맛국물을 콩나물이 잠기도록 붓는다
ⓒ 이종찬

여러 가지 음식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콩나물

콩나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값 또한 몹시 싼 채소이다. 웬만한 가게 그 어디에 가더라도 콩나물을 팔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가게에 가서 콩나물 천 원 어치 달라 하면 온 가족이 콩나물로 만든 맛있는 나물과 국을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하게 준다. 그만큼 콩나물은 김치, 된장과 함께 우리 나라 서민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건강식이다.

콩나물로 만드는 음식도 많다. 멸치 맛국물에 콩나물과 소금을 넣고 끓여내는 맑은 콩나물국에서부터 다진 마늘과 송송 썬 잔파 등으로 버무리는 콩나물무침, 묵은지와 새우젓, 달걀을 곁들이는 콩나물국밥, 무를 곁들인 무콩나물국, 북어포를 찢어넣은 북어콩나물국, 콩나물이 빠져서는 안 되는 쇠고기국, 아귀찜, 미더덕찜, 비빔밥 등 콩나물을 이용하는 조리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아마도 콩나물이란 한가지 재료로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이렇게 많은 곳에 들어가는 채소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콩나물을 마치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양념처럼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 콩이 아주 흔했고, 누구나 집에서 콩나물을 기르기가 쉬웠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백과사전에 따르면 콩나물은 노오란 머리에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당분 등이 들어있으며, 하얗고 길다란 줄기에는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다. 그리고 가느다란 뿌리에는 비타민C를 비롯한 사람 몽에 좋은 여러 가지 비타민과 우리 몸에 쌓이는 피로물질을 뿌리째 뽑아주는 아스파라긴산이 들어 있다.

▲ 잘 삶긴 콩나물은 재빨리 냄비두껑을 열어 콩나물을 건져낸다
ⓒ 이종찬

▲ 건져낸 콩나물에 빻은 마늘, 송송 썬 잔파, 참기름, 새우젓을 넣어 버무린다
ⓒ 이종찬

시루에 짚 깔고 불린 콩 넣어 물 주기만 하면 자라는 콩나물

1970년대 끝자락. 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고향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사파동)에서는 집집마다 콩나물을 길렀다. 봄이든 겨울이든 우리 마을 사람들 부엌 한 귀퉁이에는 콩나물을 기르는 시루가 하나 있었다. 마을 어머니들은 아침 저녁으로 그 시루에서 노오란 머리를 내밀고 있는 콩나물을 한웅큼 뽑아 국을 끓이기도 하고, 나물로 무치기도 했다.

"야야~ 나중에 핵교 갔다 오모 소풀 베러가기 전에 콩나물 시루에 물 한 바가지 끼얹고 가거라. 그래야 안방에 있는 콩나물도 물로(물을) 묵고(먹고) 너거들처럼 키가 쑥쑥 클 거 아이가."
"그런 거는 가시나들이 하는 일 아입니꺼?"
"니는 막내 여동생 하나 있는 거로 꼬옥 그렇게 부려 먹었으모 좋것나."


이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이맘 때면 부엌 한 귀퉁이에 있는 콩나물 시루를 안방 윗목으로 옮겼다. 그리고 노오란 콩나물이 자라고 있는 시루에 검은 천을 덮어 씌워 콩나물을 길렀다. 콩나물은 참 잘 자랐다. 끼니 때마다 콩나물을 아무리 뽑아먹어도 그저 물만 주면 또다시 노오란 콩나물 대가리가 시루 위로 쑤욱쑥 올라왔다.

어머니께서 콩나물을 기르는 방법은 쉬워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논둑에 줄줄이 심어둔 콩들이 잎사귀를 노랗게 물들이면 콩잎부터 먼저 땄다. 콩잎을 멸치젓갈이 들어간 양념장에 재워 반찬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거둬들인 노오란 콩을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 뒤 시루에 볏짚을 깔고 불린 콩을 담아 틈틈이 물만 주면 그만이었다.

▲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담백한 맛의 콩나물무침
ⓒ 이종찬

▲ 칼칼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다
ⓒ 이종찬

콩나물 삶을 때 두껑 자주 열면 비린내가 난다

지난 6일(월) 아침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눈앞에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게다가 가까운 벗이 심장병으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간밤에 문상을 갔다가 소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속도 몹시 쓰렸다. '간단하게 빨리 끓여먹을 만한 따끈한 해장국 같은 게 없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황금빛 콩나물이 떠올랐다.

옳커니, 싶어 집 옆에 있는 가까운 가게로 갔다. 그리고 콩나물 천 원 어치를 사서 서둘러 집으로 왔다. 그날따라 다른 날보다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츄리닝 차림에 맨발로 부엌에 서서 콩나물을 씻고 있는데 발이 조금 시렸다. 하지만 시원한 콩나물국 먹을 생각에 보일러를 틀 생각도 잊은 채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맑은 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멸치 맛국물을 낸다. 이어 콩나물을 뿌리째 씻으며 콩깍지를 모두 빼낸 뒤 냄비에 콩나물과 소금을 약간 뿌려 멸치 맛국물을 콩나물이 포옥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리고 냄비두껑을 닫은 뒤 센불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까지 끓인다. 이때 두껑을 열면 안 된다. 콩나물이 다 익기도 전에 두껑을 열면 콩나물에서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맛 더하기 하나. 콩나물은 멸치맛국물에 삶아야 씹을 때 깊은 감칠맛이 난다. 맛 더하기 둘. 콩나물이 제대로 익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를 때 쓴 내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 콩나물을 냄비 두껑에 올려 콩나물 대가리가 연한 갈빛으로 변할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콩나물무침
ⓒ 이종찬

▲ 쓰린 속이 확 풀리는 시원한 콩나물국
ⓒ 이종찬

콩나물 천원 어치에 가족사랑을 담아보자

냄비에 든 콩나물이 다 익었다 싶으면 얼른 불을 꺼고 두껑을 열어 익은 콩나물을 모두 건져낸다. 이어 건져낸 콩나물에 송송 썬 잔파와 빻은 마늘, 참기름, 집간장을 넣어 버무리면 맛난 콩나물무침이 된다. 이때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춧가루를, 향긋한 콩나물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초가루를 약간 뿌려도 된다.

콩나물무침을 버무리고 나면, 이제 콩나물국을 끓여야 한다. 콩나물국은 콩나물을 건져낸 냄비에 콩나물무침을 적당히 넣고 그대로 끓인 뒤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면 끝. 칼칼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콩나물국에 매운고추를 송송 썰어넣으면 된다. 또한 입맛에 따라 멸치 맛국물 대신 쌀뜨물이나 사골국물을 사용해도 독특한 맛이 난다.

그날, 나는 두 가지 콩나물무침을 버무렸다. 하나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콩나물무침이고, 다른 하나는 고츗가루를 넣어 벌겋게 버무린 콩나물무침이다. 사실, 둘 다 맛은 비슷했지만 고춧가루를 넣은 콩나물이 더 내 입맛에 맞았다. 그렇게 콩나물무침을 밑반찬 삼아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자 더부룩했던 속이 확 풀리면서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이제, 초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기온도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떨어진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벌써 얼음이 꽁꽁 얼고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때 가까운 가게에 가서 콩나물 천 원 어치 사서 맛난 콩나물무침과 쓰린 속을 확 풀어주는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여보자. 그리하여 늦가을 추위에 떠는 가족들과 오손도손 나눠먹는 것은 어떨까

▲ 맑은 콩나물국 한 그릇에 감기와 만성피로가 뚝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그동안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았던 <음식사냥 맛사냥>은 100회로 끝냅니다. 이어 새로운 음식연재 <맛이 있는 풍경>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과 질책 기다립니다.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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