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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마을
경북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마을 ⓒ 손현희

시골에서 가을이 더욱 정겨운 건 여러 가지 빛깔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가운데에서도 빨간빛이 고운 감나무가 많은 마을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어요. 아침저녁으로 날씨도 제법 쌀쌀해서 맘껏 나들이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철따라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을 지니고 있어 나름대로 멋스런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춥지 않고 따뜻한 날씨에 기분 좋게 나들이할 수 있으니 참 좋아요.

빨간 홍시를 먹다가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빨간 홍시를 먹다가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 손현희
며칠 앞서 군것질거리로 빨간 홍시를 먹다가 문득 감나무 사랑이 남달랐던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은 뒤부터 맛있는 홍시나 감나무를 보면 늘 생각나지요. 이날도 선생님 말씀처럼 감나무를 키운 어떤 이의 살가운 마음을 느끼면서 무척 고마워하며 잘 익은 홍시를 먹다가, 선생님 생각과 함께 지난번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어느 시골마을이 떠오르는 거예요.

처음 나갔던 자전거 모임에서 매우 힘이 들어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곁길로 빠져나왔던 날이었지요. 그때 곁길로 빠져나와 들렀던 어느 마을인데, 마을이 온통 붉은 감빛에 물들어 있었어요. 집집이 감나무가 없는 데가 없고, 오롱조롱 빨갛게 익은 감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 있었죠. 이날은 우리가 쓰는 사진기를 가져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남겨둔 채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돌아왔죠.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감나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감나무 ⓒ 손현희

담장 너머까지 감나무가 휘어진 울타리
담장 너머까지 감나무가 휘어진 울타리 ⓒ 손현희

아무렇게나 쌓은 담장도 퍽 정겹다.
아무렇게나 쌓은 담장도 퍽 정겹다. ⓒ 손현희
이렇게 가게 된 곳이 바로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산양리’라는 마을이에요.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니, 가장 눈에 띄는 게 감나무예요. 집집이 감나무 가지가 담장 밖까지 휘어져 있고, 가지마다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렸어요. 이오덕 선생님 책 어딘가에서 나타낸 것처럼 온통 오롱조롱 보석같이 박혀 있는 감이 눈부시게 보여요.

또 가지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홍시가 아무 상처 나지 않도록 받쳐주는 감나무 가랑잎이 마치 방석처럼 깔려 있어요. 그걸 내 눈으로 보니, 아! 선생님 말씀이 맞구나. 홍시가 떨어져도 터지지 않고, 그걸 주워 감나무 단풍잎을 손수건처럼 받쳐서 그대로 맛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구나! 싶었어요.

요즘 시골에도 오래 앞서부터 개발 바람이 불어 옛날 기와집이나 흙담집을 찾아보기 드문데, 이 마을에는 감나무와 어우러져 아직도 이런 집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러나 드문드문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도 있어요. 또 집집이 감나무가 대문 앞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흙돌담 울타리도 온통 빛깔 고운 감나무 가랑잎으로 옷을 입었어요.

이 마을에서는 대문 닫힌 집을 볼 수가 없어요. 가는 곳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낯선 이가 가서 집안을 들여다봐도 누가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처마 밑에는 감을 실에 꿰어 가을날 따사로운 햇볕을 받고 있었는데 아마 머잖아 맛있는 곶감이 되겠지요.

처마 밑에 곶감을 말리고 있다.
처마 밑에 곶감을 말리고 있다. ⓒ 손현희

철수야~!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동무가 뛰어나올 거 같아요.
철수야~!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동무가 뛰어나올 거 같아요. ⓒ 손현희

언젠가 어느 방 벽에 걸려있었을 손때 묻은 괘종시계가 덩그렇게 있는 빈집도 눈에 띄어요.
언젠가 어느 방 벽에 걸려있었을 손때 묻은 괘종시계가 덩그렇게 있는 빈집도 눈에 띄어요. ⓒ 손현희

“밥은 먹고 다니는 거여?” 하며 묻던 할머니, 참 정겹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거여?” 하며 묻던 할머니, 참 정겹다. ⓒ 손현희
마을에서 몇 분 어르신들을 만났는데,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마을 풍경을 담는 우리를 보고 퍽 반갑게 대해주었지요. 마당에서 나락을 말리다가 인사를 하는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던 할아버지, 이 마을에 감나무 사진을 찍으려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던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어요. 어떤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우리를 보고, “밥은 먹고 다니는 거여?” 하며 묻기도 했어요.

그 말투에서 우리가 밥을 먹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밥 한 상 차려줄 것처럼 들렸어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시골마을의 살가운 정이 듬뿍 배인 정겨움을 느꼈답니다. 또 이 마을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해맑은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감나무는 왜 찍어요?”, “아줌마 아저씨는 어디서 살아요?” 하고 묻기도 했지요. 아이들과 한참 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어릴 적, 고향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학교 풍경도 찍었어요.

푸근한 정과 살가운 모습들을 닮았는지 이 마을에서 만나는 모든 게 참 정겨웠어요. 하다못해 마당 한구석에서 엎드려 있는 개조차 마을 사람들을 닮았는지 사나운 낯빛은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감빛이 아름다운 마을, 아직도 도시물결에 찌들지 않고 멋스러움과 살가운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답니다.

가을빛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것들.
가을빛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것들. ⓒ 손현희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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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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