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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5일 경찰청 앞. <대추리전쟁>을 보러 온 사람들을 경찰이 막고 있다.
ⓒ 황윤미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는 지난 10월 26일(목)과 27일(금)에 걸쳐 서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가 개최한 평화 영화제와 개막작으로 상영할 다큐멘터리 <대추리 전쟁>에 대한 보도를 내보냈다.

10월 26일자 종합면 '반미단체에 농락당한 경찰'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서울 평통사가 올해 개최하는 평화 영화제의 '실상'을 뒤늦게 파악하여 불허통보를 낸 경찰이 결국 망신을 자초했으며 경찰 관계자의 말을 빌려 '공권력이 농락당했다'고 보도했다. 평화 영화제의 실상이란 '경찰의 진압장면을 부각시킨 <대추리 전쟁>을 개막작으로 상영하려 했다'는 것.

<대추리 전쟁>은 평택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일상과 인터뷰, 주민과 경찰의 충돌 장면 등을 2005년 봄부터 2006년 5월까지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올 인권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얼마 전에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대추리 전쟁>을 찍은 정일건 감독에 따르면 이 작품을 본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본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영상에 찍힌 것은 아주 일부분이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주민들과 정부의 싸움이 한창일 때 주로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보상문제'였다.

정 감독은 보상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1년을 넘게 대추리에서 지내며 <대추리 전쟁>을 찍었다. 그런데 경찰과 <중앙일보>는 <대추리 전쟁>을 '의도적으로 경찰의 폭력진압만을 부각시킨 문제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폭력진압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문제의 장면'을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의 옛 이름이다. 경찰은 이곳을 만들면서 과거 경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런 취지를 살린다면 평택 대추리에서 경찰이 자행한 폭력 진압에 대해 반성하고 좀 더 성숙한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대추리 전쟁>을 상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찰이 평통사에 발목을 잡혔다?

▲ <대추리 전쟁> 정일건 감독이 평화영화제 장소 사용 허가를 번복한 경찰청 규탄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황윤미
이튿날인 27일 이철재 기자는 '취재일기'를 통해 좀 더 강한 어조로 평화영화제의 '숨은 의도'에 대해 언급했다. 애초에 '평통사'와 같은 단체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빌리려했던 의도를 따져보지 않고 '평화영화'의 내용도 파악하지 않아 경찰이 결국 평통사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평통사에 따르면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이미 구두로 '허가가 났다'고 말한 시점 이전부터 영화제 상영작에 <대추리 전쟁>이 포함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 평화영화제를 후원한다는 사실이 필요하다고 하여 국가인권위에 후원요청 공문을 보내면서 평화 영화제에 상영할 작품목록을 보냈다"는 것이다.

공문을 접수한 국가인권위는 서울 평통사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의 통화에서 <대추리 전쟁>이 상영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고 서울 평통사가 이에 항의하자 며칠 뒤 평화 영화제를 후원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서울 평통사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 통화를 하면서 장소를 사용하려면 꼭 국가기관의 후원이 필요한지 또 그것이 '영상' 때문인지를 물었을 때 경찰 측에서는 "<대추리 전쟁>이 음란물인지 폭력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후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그곳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구비서류를 접수할 시점부터 <대추리 전쟁>이 상영작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 10월 26일자 중앙일보 종합 2면에 실린 기사
ⓒ 황윤미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마치 '숨은 의도'를 갖고 있던 서울 평통사가 일부러 뒤늦게 <대추리 전쟁>을 상영한다는 것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알려준 것처럼 되어 있다. 서울 평통사가 장소 사용 요청을 해왔을 때 진작 '숨은 의도'를 예상하고 '평화 영화제의 실상'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은 경찰의 안이함을 지적하는 나름의 평형감각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전적으로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의 시각에 따르더라도 평통사는 애초에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측에 <대추리 전쟁> 상영 사실을 숨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서울 평통사가 주최한 평화 영화제는 우여곡절 끝에 10월 29일(일)에 막을 내렸다. 평화 영화제가 끝난 지금 이철재 기자가 파악한 평화 영화제의 실상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황윤미 기자는 서울 평통사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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