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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달내마을엔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질 때다. 그래도 아직 아침이면 노오란 빛깔을 머금고 햇살을 받으며 곱게 얼굴을 편다. 역시 산국은 낮보다는 아침에 볼 때가 아름답다. 짙은 노랑이 주는 강렬함을 희석시키면서 이슬 머금은 청초함도 보여주기에.

솔직히 이곳 달내마을로 이사 오기 전에도 산국을 많이 보았건만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냥 산에 피는 노란 꽃 정도로만. 그런데 작년 가을 처음 온 마을 뒷산을 덮은 꽃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꽃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생겼다. 그 화려한 빛깔과 그 진한 향기 때문에.

▲ 우리집 밭언덕에 핀 산국
ⓒ 정판수
어제(30일) 퇴근하자 테라스에 노란 꽃이 잔뜩 보였다. 산국이었다. 아침에 아내가 "오늘 산국 좀 뜯어와야겠어요" 하기에 작년처럼 말려서 차를 만들려나 했는데 갈무리하고 있는 걸 보니 꽃만이 아니라 가지까지 함께 전지가위로 자르고 있지 않은가.

의문을 확인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말했다. "당신이 걸핏하면 두통에 시달리잖아요. 그저께 텔레비전에서 보니 산국의 꽃과 가지를 함께 말려 베갯속에 넣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고 해서…."

은근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런데 좀 적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있으면 되겠는데 …" 하고 흐리는 말에, "알았어. 내 곧 옷 갈아입고 따오지" 했다.

작년에는 산국을 따러 산에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올해는 산보다 집 주변에 더 많이 피었다. 우리 집의 위치가 앞만 제외하고 양옆과 뒤가 산이니 한 걸음만 나가면 산국이 지천이다. 가뿐한 마음으로 낫을 들고 갔다.

그리고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에 낫을 들이대었다. 그런데 … 갑자기 윙윙 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벌이었다. 해도 녀석들을 쫓아버리고 다시 낫을 들이대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 산국차를 만들기 위해 모아놓은 산국 꽃잎
ⓒ 정판수
이 산국은 우리에게는 그냥 꽃이지만 벌들에게는 먹이가 아닌가. 이제 벌들은 곧 닥쳐올 겨울에 대비해야 한다. 즉 월동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능한 많은 꿀을 모아야 하고. 그래서 가을 느지막이 피어 있는 산국에 매달려 있음이다.

그런데 산국을 꺾어간다면? 벌은 꿀을 모으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나의 이기심이 꽃을 꺾으려 든 것이다. 산국차를 만들어 마시고 베갯속에 넣어 두통을 없애겠다는. 또 비록 활짝 피었다 질 때쯤이지만 지나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볼거리를 없애버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번만이 아니다. 이전에 글 올린 벼메뚜기도 마찬가지다. 벼메뚜기를 잡고, 등에 강아지풀로 꿰고, 볶아먹는 일은 어릴 때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올린 글에 대해 몇 사람이 벼메뚜기를 '잡아먹는' 행위의 '잔인함'을 지적했지만 어릴 때의 추억을 돌이켜 보는 작업이라 여겨 별로 가책이 되지 않았다.

이번 산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윙윙거리는 벌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낫으로 베어 햇볕에 널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맛볼 차 맛을 음미하며 혼자 입맛을 다실지도 모르고, 산국베개를 벨 기쁨에 흐뭇한 미소를 흘렸을지 모른다.

▲ 베갯속에 넣으려고 말려놓은 산국 꽃잎과 가지
ⓒ 정판수
빈손으로 갔더니 아내가 의아한 눈길로 본다. "벌들 때문에…." 더욱 의아한 눈길이다. "산국을 꺾으려는데 벌들이 마구 잉잉거리잖아. 그래서 못 꺾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배시시 입가에 웃음이 맴돌더니, 손에 다듬고 있던 산국을 가리키며, "그럼 이것도 다 갖다버릴까요?" 했다. 놀리는 말인 줄 아는 터라 '갖다 버려라'고 하려다 "이왕 꺾어놓은 건 어쩔 수 없지" 했다.

아 나의 이기심! 언제쯤 고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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