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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무언가와 닮은 구석이 있는 꽃들이 있다. 이름을 들어보면 닮은 구석이나 특징들을 너무 잘 연결시켜주어 감탄하게 된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하는 느낌, 만일 내가 이름을 붙여주어도 그렇게밖에는 붙여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이름을 지닌 꽃들이 있다.

오이냄새가 나서 오이풀, 닭똥냄새가 나서 계뇨동, 누린내가 나니 누린내풀, 노루발을 닮아 노루발풀, 족두리를 닮아 족두리풀, 장구채를 닮아 장구채, 붓을 닮아 붓꽃, 강아지꼬리를 닮아 강아지풀, 개구리발톱을 닮아 개구리발톱, 거북이꼬리를 닮아 거북꼬리, 골무를 닮아 골무꽃, 광대의 수염을 닮아 광대수염, 노루귀를 닮아 노루귀, 곰방대를 닮아 담배풀, 꽃은 호랑이 무늬, 이파리는 부챗살을 닮아 범부채, 바늘을 닮아 바늘꽃, 물레를 닮아 물레나물, 둥그런 접시를 닮아 접시꽃... 그리고 연이파리를 닮아 한련.

ⓒ 김민수
옥상 화분에는 지난 봄부터 한련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어머님은 여간 예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떨어진 씨앗이 움터 새롭게 싹을 내고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는데 어머님은 그것이 마냥 좋으신가 보다.

어머님은 주로 크고 화려한 꽃을 좋아하시고 나는 작고 소소한 꽃을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나만큼 꽃에 관해 깊은 사랑을 가진 이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한련을 보면서 내가 꽃을 사랑하는 방식과 어머님이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꽃이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치품이나 취미 같은 것이었다면 어머님에게 있어서는 생활의 일부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같은 것이었다. 꽃 이름 같은 것을 나보다는 모르시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깊게 그들을 진정 사랑하셨던 것이다. 어머님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증거는 한 번 사오신 꽃은 여간해서 죽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수없이 퍼지고 퍼져 분양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말이다. 신기하게도 받아둔 씨앗들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 김민수
꽃이 잘 되는 집안은 잘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믿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여간해서는 꽃 흉년이 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름시름 죽어가던 것들도 우리 집에 오면 다시 힘을 얻는다. 그건 모두 어머님 덕분이다.

그러던 어머님께서 언제부턴가는 꽃씨를 모으시기도 하고, 작은 모종들을 한 곳에 잘 모아두셨다가는 강원도에 가실 기회가 있으면 그 곳 야산에 심고 씨앗을 뿌리는 일들을 하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외래종이 아닌 우리 산야에 피고지는 꽃들만 선별하셔서 뿌리셨다.

올 봄부터 동자꽃, 초롱꽃 씨앗을 뿌리셨고 매발톱모종과 금낭화모종을 심으셨다. 여름과 가을 그 곳에서 초롱꽃과 금낭화를 만날 수 있었으며 매발톱과 금낭화는 내년부터는 원예종의 딱지를 떼고 당당한 야생화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온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되 더 풍성하게 돌려보내는 어머님의 마음, 그것이 어머님의 꽃사랑이다.

ⓒ 김민수
이 자릴 빌어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간혹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 때가 있다. 지난 봄 강원도에서 처녀치마군락지를 만났는데 너무 많다보니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이 들어 하나를 뽑아 집으로 가져왔다.

포기나누기를 하여 심었는데 지금은 한 개체였던 것이 다섯 개체가 되었다. 내년쯤이면 열 개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른 봄꽃을 본 후에 다시 자연에 돌려줄 생각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님 때문이다.

어머님이 좋아하는 꽃 한련, 그 곳에 눈이 가게 된 것은 꽃이 흔하지 않은 계절이라는 것이 큰 작용을 했다. 흔할 때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어머니, 그게 뭐가 예뻐요?"하다가 야생의 들꽃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계절이 되니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참 간사하다.

나의 꽃사랑은 이 정도다. 꽃이 보고 싶어 안달을 하고 왕복 몇 백km를 달려갔다 와서도 자연 속에서 호흡한 그들과의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 얼마나 예쁘게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정도의 사랑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정말, 그들을 자식들처럼 사랑하시는 것이니 어머님의 꽃사랑을 닮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 김민수
영락없이 연잎이구나
물방울 맺히는 것을 보니
영락없이 연잎이구나
그는 물에 살고
너는 땅에 살아도
영락없이 연잎 닮은 이파리를 가졌구나

연꽃이 되지 못해 한련(恨蓮),
추울 때도 피어나 한련(寒蓮),
쉬엄 쉬엄 피어나 한련(閑蓮),
그러나 진짜 이름 한련(旱蓮),
어느 것이라도 좋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저 연꽃처럼
너도 그렇게 혼자 가라.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이라서 다 좋다.
그 중에서도 한련, 참 좋다.
<자작시-한련>

덧붙이는 글 | '한련'과 '한련초'는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아직 소개하지 못한 한련초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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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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