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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무 서울대 총장과 얘기 나누고 있는 반기문 장관
이장무 서울대 총장과 얘기 나누고 있는 반기문 장관 ⓒ 정연경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특별 강연회에서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거나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이 주최한 오늘 강연에는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기 2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으려는 학생들이 몰려 반 장관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반 장관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공식적으로 강연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63학번 출신인 반 장관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과 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강단에 들어섰다.

강연 전 임현진 사회과학대학장은 인사말에서 "(반 장관이) 서울대학교 졸업생 중 가장 출세하신 분 같다"며 "이른바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반 장관이 당선된 것은 서울대의 영광이자 국가적인 경사이며 민족적인 쾌거"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반 장관은 강연에 앞서 "공직 생활하면서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또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며 "총장님 이하 교수님들은 모두 나가시고 학생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대선배님들이 앉아계셔서 부담스럽다"는 말로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2003년 대외 신용도 하락 막은 것 큰 업적"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1000여 명의 학생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1000여 명의 학생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 정연경
'유엔 사무총장 진출과 한국의 세계화'의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회에서 반 장관은 "학문적 이야기는 빼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며 "유엔 사무총장 부임 이전에 한국의 국민과 젊은이에게 메시지를 줘야겠다고 생각해 모교인 서울대 총장님께 부탁을 했다"고 강연이 이루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오는 11월 15일 유엔 사무총장 취임을 앞둔 반 장관은 지난 외교관 생활을 돌아보며 사무총장에 당선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외교관이 많이 필요하다, 외교관의 말 한마디가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운을 뗀 반 장관은 "참여정부 초기 대외 신용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용등급이 2~3단계 낮아질 수 있는 위기에서 청와대 외교자문으로써 세계의 주요한 신용등급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제2의 IMF를 막기 위해 노력했었던 것을 큰 업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교관 생활은 생각처럼 화려하지 않다. 특히 민주화가 탄압받던 시절 외국의 압박이 많아 어려웠다"며 "외교관은 정부 지시를 따라 그대로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신에 맞지 않는 지시도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할 때가 있다"고 외교관으로 겪었던 어려움을 전했다.

반 장관은 정부의 지시와 외교관 개인의 소신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외교적인 화법에 숨어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정부의 지시를 받아 이런 말을 전달한다'는 말은 정부의 지시가 내 소신과는 다르다는 말을 표현하는 말이다, 반대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정부의 지시와 개인의 소신이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기름바른 장어' 대신 '유만'이라 불러달라"

반 장관은 이어 민감한 질문에 매끄럽게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기름 장어(slippery eel)란 별명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3공화국 시절부터 참여정부까지 오면서 '해바라기 외교관'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랬다 저랬다 바뀌었다는 의미다. 요즘엔 '기름 바른 장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고 가진 30여회의 기자회견에서 외교적인 답변을 했더니 그런 것 같다."

"유엔 사무총장이 되면 192개 회원국 입장이 다 다르고, 우리나라 입장과 사무총장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나라를 좌우할 수도 있어 외교적인 답변을 하다보니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고 좋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을 한자로 바꾸면 기름 유(油)에 뱀장어 만(鰻)을 쓰는데 이제 이 유만을 호로 만들어야겠다"고 말한 반 장관은 "'유만'이라는 말을 보다 좋은 뜻의 한자로 바꾸면 움직일 유(走변에 住)에 일만 만(萬)을 써서 '세상 사람을 움직인다'는 뜻이 된다. 앞으로 '유만'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해 학생들의 박수와 호응을 얻었다.

이어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처음에 (유엔) 사무총장 나간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 표정이 다들 얼떨떨했다. 국회의원 선거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집팔고 땅팔고 해서 나가지 않느냐. 그런 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청중에 자신이 사무총장이 될 수 있겠다고 확신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요청했다.

손을 든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한 반 장관은 "내가 그런 상황에서 시작했다. 북한 핵 문제나 인권문제에 소신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단시간 내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직의 지도력은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영국 토니 블레어 수상의 자리에 비교된다, 겨우 장관급이 어떻게 사무총장직에 맞는 지도력을 수행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부터 보여주겠다"며 "당선되기까지 과정 어려웠지만 다 극복했다,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이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레바논 평화 유지군 문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25일 서울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 정연경
마지막으로 반 장관은 한국 국민과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나 경제적 면에서 발전해있지만 국내와 국외의 눈의 높낮이가 많이 다르다. 대외적인 시각을 높여야 한다. 국민의 마음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도 높여야 한다."

반 장관은 또 "한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지의 어려운 나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있는 유엔 사무총장 배출 국가로서 책임감이 부족하다"며 이어 "레바논 평화 유지군 문제도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 장관은 "사무총장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의 끼어있는 위치라는 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나는 다른 입장을 가진 192개의 유엔국과 수많은 단체 사이에서 대화하는 다리 역할(Bridge builder)가 되겠다. 각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제 공무원 윤리 기준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반 장관은 "사무총장 자리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실질적 권력은 없고, 도덕적인 권위만 있다, 유엔이라는 중립적인 기구에서 회의를 소집해 상대국간 중재하고 협상하는 역할을 지난 16년간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여러분이 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에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반 장관은 특유의 '유만'식 화법으로 답변했다.

물리학부 3년에 재학중인 한 학생이 "바람직한 외교관의 역할이 무엇이고, 본인은 얼마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반 장관은 "내 자질의 문제는 예전에 여기 계신 교수님들께 학점으로 평가받았다"며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이라크전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느냐"고 질문한 인문학부 06학번 학생의 질문에 대하여 "상당히 정치적인 질문이라며 전쟁이 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사회적인 무질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들어서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서 추천받은 것 아닌가,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나"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하여 반 장관은 "192개국과 안보리에서 모두 만장일치 박수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북한에 특사파견하거나 직접 방문할 수 있다"

반기문 장관에서 꽃다발이 전달되고 있다.
반기문 장관에서 꽃다발이 전달되고 있다. ⓒ 정연경
심리학과 02학번의 한 학생은 "북한 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로서의 입장이 다를 것 같다, 앞서 강연에서 실질적 권력은 없고 도덕적 권위만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권위가 장관직보다 클 것이다, 안보리의 제재 이행과 6자회담 과정 봐야겠지만 필요하면 특사를 임명해 관련국과 협의할 것이다, 또 필요하면 북한에 직접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학창시절 공부 이외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반 장관은 "나는 못했지만 여러 분야에 시야를 넓혀 능력을 발휘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강연에는 윤영관 전 외통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학과와 사회대의 교수들이 참석했으며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강연장을 채워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덧붙이는 글 |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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