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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벼수확에 나선 농민들.
ⓒ 문만식

막걸리 한 잔 권하며 흥겨워야 할 타작마당에 웃음소리가 사라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판이 비어가는 만큼 농민의 마음도 공허해지고 있다. 차라리 가을의 수확보다 봄·여름의 수고가 더 맘 편하다는 게 농사꾼의 심정이다. 우리 지역의 쌀 작황은 예년에 훨씬 못 미친다. 가격도 하락했다. 총소득규모에서 쌀 전업농의 경우 20~30% 감소된 것이 현장 농업인의 말이다.

농민의 40% 이상이 65세 이상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농민 3명 중 1명이 60~70대라는 말이다. 전국의 300만 농업인구가 지고 있는 부채는 30조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농촌 학교는 소규모 학교에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가 인기 없는 이유

'탈농-학교통폐합-탈농'의 악순환이 지난 25년간 반복되면서 농촌 교육은 이제 완전히 죽었다. 농민도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서 빈농과 부농이 확연히 구별되지만 사실은 이것도 부채규모와 비례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젊은 부농은 농가부채가 그만큼 과증하기 때문이다.

농업인구가 재생산 될 수 없고 농촌의 교육도 황폐화되었으며 그 농업인들은 자신의 자산을 처분해도 갚을 수 없는 규모의 부채로 신음하는 농촌 현실을 남겨두고 정부는 한미FTA를 신속히 추진하려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야말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한 바 있다.

농업국이었던 후진국 대한민국이 '공업입국'의 기치를 내건 지 40년 만에 농업은 이제 국가 경제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산업화, 도시화를 위해 농촌 인구의 이탈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려면 농촌보다 도시가 더 많은 성공의 기회를 부여해야 하고 더 살기 좋아야 한다.

70년대의 무작정 상경 대열이 오늘날 산업화, 도시화의 원동력이었지만 남아있어야 하는 자들의 고통은 그들의 도시생활보다 훨씬 고단하고 고단했다. 공산품에 비해 정책적으로 저곡가를 유지하며 농업, 농촌은 산업화의 맨 밑바닥에서 그 버팀목의 숨찬 기능을 감당해 왔다.

자녀들을 산업화의 일꾼으로 보내기 위해, 도시인들에게 저렴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농민들은 지난 40년 하늘 한 번 쳐다볼 새 없이 땅만 파고 또 팠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병든 몸과 부채뿐이다. 이들의 병든 몸과 빚더미를 놓아두고 한미FTA를 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가 인기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대목이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도 못했던 일들을 남김없이 해결(?)했다. 방폐장, 새만금, 각종 국책사업에서 한미FTA에 이르기까지 어디까지가 끝인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차마 수구보수세력을 편드는 꼴이 될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는 동안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가차 없이 배신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 측근들이 무능하고 개념이 없어서이다. 아무튼 지난 40년 자랑스런 대한민국 발전의 희생양이 된 농민들을 버리고 한미FTA를 체결한다면 이는 21세기 아리랑이 될 것이다. 발병이 나도 크게 날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고 무엇이고 하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농민을 여러분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제발!

IMF를 극복하기 위해 수백조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대우라는 재벌을 해체하는 비용만도 1백조가 넘게 들었다. 300만 농민이 지고 있는 30조의 부채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선거 때마다 알량한 이자율 인하 정도가 고작 아니었던가?

한미FTA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좋다. 그렇다면 지난 40년 그 희생의 대가로 만들어진 농가부채 30조 갚고 가라. 그러면 농민들도 자신들의 생산품을 시장에 상품으로 당당히 내놓을 것이다. 농민들도 경제의 농업을 할 것이다.

이미 농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사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농가부채 30조, 사실 아무것도 아닌 돈이다. 농민들은 이 30조 때문에 끊임없이 끌려가고 자유롭지 못하다. 농사를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농민들을 자유롭게 하고 농업을 개방하자. 이미 농업은 개방되었지만 농민은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한미FTA는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욕을 먹더라도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든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면 박정희와 함께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지도자로 남을 것입니다."

어느 참모의 달콤한 귓속말을 상상해 보았다. 농민을 희생하면서 산업화를 이루는 것은 경제학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그 농민을 죽이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든다는 것은 부도덕하고 비열한 짓이다. 그것은 영원한 정권의 부채로 남을 것이다. 그 좋아하는 선진국은 무의미해진다.

농가부채는 대략 정책자금 10조, 농협상호금융12조, 기타 부채 5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농가부채는 농협을 매개로 하고 있다. 즉 농가의 부채는 농협의 자산이다. 98년에서 2000년까지 농가부채로 인해 경매는 1만3천여 건이던 것이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4만여 건이 넘는다. 금액으로도 1조원이 넘었다. 2007년도 예산에서 농가부채 해소를 위한 농지매입예산이 500억이 넘게 배정되었다.

이제 모든 농민들은 그들의 토지를 모두 잃을 때까지 농가부채를 지고 있어야 한다.
즉 농민이 토지를 단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할 때까지 부채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 지역에 한탄강댐이 계획되자 수몰예정지 주민들의 대부분은 찬성을 했다.

그 이유는 정부의 댐계획이 홍수조절을 위해서이기에 기꺼이 고향을 버리고 삶의 터전을 바쳐서 국책사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애국심이 아니다. 부채 때문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빚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정처 없이 떠나더라도, 하루를 살더라도 빚없이 살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수장시켜서라도 부채를 갚고 싶었다.

농민 부채는 대한민국의 부채

이미 한미FTA는 협상이라는 눈가림만 남아 있다고 농민들은 믿고 있다. 한미TA를 통해 한국의 식량기반은 완전히 국제 곡물메이저에게 먹히고 만다. 마치 석유메이저들이 유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식량안보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빚은 갚고 가라. 우리 농민의 부채는 곧바로 대한민국의 부채다. 여기에 반발하는 도시민이 있다면 그는 못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서울시내를 활보하는 사람 열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대부분은 이 농가부채 덕에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산업일꾼이 되기 위해 그들의 남겨진 부모형제들의 피땀이 있었는지를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농민들은 식량안보든, 농업기반 붕괴든 다 둘째 문제다. 한미FTA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잘살 거라면 우리 농민들의 빚은 갚고 가라는 얘기다. 그러면 우리도 WTO체제하의 농민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119조 농업투자는 사실 허구다. 10년간 농업예산만 100조원인데 무슨 소리인가? 농협예산외에 119조를 투자한다고 눈가림을 하고 있다. 지금 농민들에게는 아무런 정책도 필요 없다. '나라정책 따라가면 망한다'는 말은 농민들에게는 불문율이 되었다.

그냥 공적자금 30조를 대기업에게 투여하듯 해서 농가부채를 전액 탕감하면 되는 일이다. 이는 농가부채를 큰 자산으로 하고 있는 국내 제2의 금융기관인 농협의 부실도 막는 일이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30조원의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주곡의 자급이 없이는 어는 국민이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 프랑스가 미국에게 할 말을 하는 것은 식량자금과 핵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과 프랑스의 결정적인 차이가 되고 있다.

이미 한국 농업은 그 희망마저도 거세당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IMF로 김대중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노무현 정권은 FTA로 정권을 넘겨줄지도 모른다. 농민들의 지지를 받던 노무현 정권이 농민이 가장 싫어하는 정권이 되었으니 말이다. 누가 되든 우리 농민의 40년 멍에인 농가부채 완전 탕감은 정권의 임무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역사에 남을 일 하나는 이것 밖에 없다.

▲ 이철우 전 의원
지금 1만여 농민이 제주로 몰려가고 있다. 과감하게 배신하고 정권을 넘겨줄 것인가? 김영삼과 노무현의 공통점은 부산·경남 출신이라는 것이고 다른 점은 김영삼은 배신을 먼저하고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배신을 한 것 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 하려거든 농가부채 갚고 가라!

2006년 10월 23일
전 국회의원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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