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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 스웨덴 신임 총리로 임명된 프레드리크 레인펠트(41·가운데 주황색 넥타이) 총리와 21명의 스웨덴 장관들. 스웨덴은 94년부터 장관직에 여성과 남성을 동수로 임명하고 있다. <출처 ⓒPawel Flato/www.imagebank.sweden.se>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신임 총리로 임명된 프레드리크 레인펠트(41·가운데 주황색 넥타이) 총리와 21명의 스웨덴 장관들. 스웨덴은 94년부터 장관직에 여성과 남성을 동수로 임명하고 있다. <출처 ⓒPawel Flato/www.imagebank.sweden.se> ⓒ 여성신문
장관의 절반, 국회의원 10명 중 4명이 여성인 나라, 공공부문 종사자의 70%가 여성인 나라, 정부부처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부처가 사회성평등부인 나라, 바로 스웨덴이다. 여성권한 척도와 남녀평등 지수가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여성신문>은 창간 18주년과 지령 900호를 맞아 10월 12일‘여성정치 모범국’ 스웨덴의 레나 옐름발렌 전 부총리와 발행인 대담을 진행했다. 여성 정치인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부총리까지 오른 레나 옐름발렌은 스웨덴에서도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물. 최근 34년간의 정치 활동을 접고 스웨덴 아프가니스탄위원회 의장으로 활동 중인 그에게서 스웨덴 여성정치의 현황과 한국 여성정치의 과제를 들어보았다.

대담은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이 이메일로 질문을 하고, 레나 옐름발렌 전 부총리가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는 형식으로 전개됐다.

[이메일 인터뷰] 레나 옐름발렌 전 스웨덴 부총리

김효선(여성신문 발행인):전자메일을 통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총리께서는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고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여성 정치인 중 한 분이셨습니다. 국회의원을 30년 이상 역임하시고, 교육부 장관, 외교부 장관, 부총리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으셨습니다. 최근에는 유럽 미래를 위한 평의회의 스웨덴 대표로 활동하시면서 유럽 헌법을 기초하셨습니다. 이제 34년 동안의 긴 정치 경력을 뒤로하시고 고향이신 살라(Sala)에 정년퇴직 후 귀향하셨는데요, 퇴직 후 근황을 소개해 주시죠.

레나 옐름발렌(스웨덴 전 부총리):퇴직 후에도 다양한 국내 및 국제위원회 활동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국제 원조기구인 세계민주주의 및 선거원조기구 이사회 의장, 원조기구인 팔메재단 이사회 의장, 정부가 임명한 스웨덴 아프가니스탄위원회 의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국가조직 및 재단 등에서 이사회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개인적 취미 등에 쓰이는 시간이 아직 많지 않아 일복이 터진 셈이죠.

김효선:그래도 정치에서는 은퇴를 하신 셈인데, 정년퇴직자로서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면을 3개 정도씩 소개해 주시죠.

레나 옐름발렌:정년퇴직자로서의 장점은 관심이 있고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골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선택권이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또 사회활동에서 다양한 경험을 다시 원하는 곳이 있을 때 언제든지 부르면 나가서 일조 할 수 있는 경험과 경륜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일할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인 점이라면 ‘이제 나는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존재구나’라고 생각하는 소외감이 엄습하거나 모든 것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가 훨씬 좋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현실 비판적 시각 및 현실과의 거리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적·심리적 상실감과 무기력감 등을 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부정적인 면들은 아직까지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 같군요.

26세 정계 입문…“가족이 가장 큰 지지자”

김효선:어린 시절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학교생활이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말씀해 주십시오.

레나 옐름발렌:저는 노동자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여동생이 하나 있는 4인 가족으로, 부모님과 친척들이 함께 고향 살라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습니다. 가정은 항상 사랑이 넘쳤고, 애정 어린 부모님의 보살핌이 넘치는 그런 화기애애한 시골 가정이었죠. 막노동을 하시던 아버지와 집에서 가사를 하셨던 어머니께서 두 딸에게 교육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장녀인 저에겐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며 장차 선생이 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집안을 통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는 제가 처음이었어요. 1950년의 스웨덴에서 고등학교 진학은 시골에서 상당히 드물었고, 특히 여자가 졸업한 경우는 거의 없었죠. 졸업 후 부모님의 조언과 개인적인 생각으로 웁살라대학 사범대에 진학해 졸업 후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2년 동안 교사로 생활했습니다.

김효선: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셨는데, 사민당 내 청년조직인 SSU에서 활동한 일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레나 옐름발렌:당시 지역 사민당 청년조직 활동이 한창 확대 과정에 있었습니다.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시각에 대한 저의 주관적 관점이 확실히 정립됐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단체를 이끌며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때가 정치적 소양을 갖추고 훈련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효선:어떤 연유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는지요. 특별한 동기라도 있었나요.

레나 옐름발렌: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사민주의적 시각을 갖는 것뿐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정치 활동에 적극 가담하기를 권유해 주셨습니다. 제가 믿는 사회를 만들고 가꾸어가기 위해 무언가 적극적으로 해야 되겠다는 신념이 생겼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불공평한 사회구조, 예를 들어 대다수 남성은 공부를 하는데 왜 여성들은 소외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국제적으로 힘의 논리에 따라 소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가진 자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고, 그것을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남성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경쟁력 길러야

김효선:신념과 의지로 시작한 정치였지만, 이후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여성으로서 비애나 좌절감 같은 것은 혹시 느끼지 않으셨는지요.

레나 옐름발렌:여성 정치인으로서 많은 차별적 대우를 경험한 동료 정치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그런 차별적 대우를 받아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중용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당과 정부는 능력 있는 여성 정치인을 항상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적극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기회가 훨씬 많다고 할 수 있겠죠.

김효선:만약 그런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면 여성으로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레나 옐름발렌: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기 이전에, 남성과 똑같이 능력 면에서 뒤지지 않는 실력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남성과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까지도 함께 짊어지고 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나 “여성이니까 이 일은 적합하지 않겠지”라는 여성으로서의 합리화와 현실 안주에 만족하면 남성과 경쟁하는 정치 세계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융화를 앞세우면 정치에서 반드시 남성보다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김효선:정계에 계실 때 지녔던 정치 철학이나 신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레나 옐름발렌: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신이 믿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자 정치 철학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공동 목표, 즉 공동의 삶의 질 증대를 위해 함께 힘을 합해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중요합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김효선:가장 힘들었을 때, 그리고 가장 보람이 있었던 적은 언제였는지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레나 옐름발렌:제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정부에서 함께 일하고 희로애락을 나눴던 동료 두 사람을 잃은 것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입니다. 제가 모시고 함께 일했던 올로프 팔메 총리가 암살된 85년과 외교부 장관이었던 안나 린드가 시내 한복판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서거한 2003년 가을이 저에겐 가장 가슴 아픈 경험입니다. 특히 안나 린드의 서거는 차기 총리감인 대지도자를 잃었다는 슬픔과 함께 유능하고 참신한 여성 지도자를 잃었다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또 96년 잉바르 칼손 총리의 퇴진 후 권력이양 과정에서 당연히 뽑혔어야 할 차기 여성 총리(모나 살린 전 부총리)가 도중에 정치적 구설에 올라 총리직을 이양 받을 수 없었던 경험들은 120년 역사의 사민당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효선:정치가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레나 옐름발렌:정치 활동은 엄청난 에너지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제가 원하는 가정생활, 친구 등 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등 개인적인 삶은 많이 제약되지요. 그리고 때로는 언론으로부터 개인 사생활을 샅샅이 조사 받게 되는데, 저 자신과 가족까지 공인이라는 이유로 발가숭이처럼 벗겨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모범 엄마·모범 아빠가 훌륭한 정치인”

김효선:부총리께서는 가정의 역할 즉 엄마이자 부인,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셨습니다. 두 가지 다 만족하십니까.

레나 옐름발렌: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엄마와 부인, 그리고 정치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성 정치인의 경우도 가정에서는 아빠, 그리고 남편입니다. 여성 정치인과 크게 다를 게 없지요. 만약 가정과 정치를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면 당연히 정치제도와 절차를 변경해서라도 평범한 사람, 즉 모범 엄마, 모범 아빠들이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정치인은 훌륭한 정치인이 되지 못한다고 확신합니다.

김효선:동시에 훌륭한 엄마와 훌륭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총리께서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을 위해 어떤 희생과 노력을 감수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레나 옐름발렌: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딸이 지금까지 저에게 불평불만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방법을 터득했거든요. 저는 정치를 하면서도 딸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화로 모든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물론 딸의 삶 깊숙한 곳까지 어루만져 주는 노력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라지요. 아마 주부 역할만 했다면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집에 있을 때만큼은 철저히 엄마이고자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기 전의 가정주부와 다정한 이웃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에 잔잔한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가는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 특히 언론에서는 저를 모나지 않은 사람, 일하기 편한 사람, 항상 변하지 않는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평가해 줍니다.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정치로 보답하는 대의정치에 충실하고자 했을 따름입니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국가 경쟁력’

김효선:스웨덴은 여성의 정치 참여도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레나 옐름발렌:기본적으로 아동복지, 노인복지 등으로 대표되는 복지제도의 구축이 여성을 지속적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각 가정도 책임이 있지만, 여성의 권리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로 얻어지는 결과는 결국 국가와 사회, 국민에게 모두 이익이 됩니다. 즉 여성의 정치 참여율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갖고 있는 관심 영역들이 정치에서 중요한 정책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성의 문제이자 가정의 문제,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김효선:스웨덴을 포함한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이 삶의 질이나 성개발지수, 청렴도, 여성권한척도 등에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무엇이 이런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레나 옐름발렌:북유럽 국가의 사회복지제도는 소외된 사람뿐 아니라 가진 자도 포함하는 ‘전 국민을 위한 국민 서비스’입니다.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데, 많이 기여했다고 해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고, 적게 기여했다고 해서 적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되돌려 받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런 방식의 복지 서비스는 사회 통합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성들도 기꺼이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에 적극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성들의 의식 전환과 적극적 역할이 없었다면 복지사회로의 이행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웨덴이 국제적 기준에서 삶의 질이 높게 나타났다고 해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평등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죠.

김효선:여성의 참여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레나 옐름발렌:제가 의미하는 것은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정치에 투입되면 새로운 정치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성과 남성은 경험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과 같은 국가 대사가 보다 합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의 정점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적다면 그만큼 그 사회에서 여성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정치 활동에서 우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서로 보완하고,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거죠.

김효선:여성 정치인이 많을수록 개발도상국의 정치 수준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레나 옐름발렌:그렇습니다.

김효선:그렇다면 여성의 정치 참여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레나 옐름발렌:비록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있지는 못해도 가정의 생계와 경제적 책임을 상당 부분 안고 있습니다. 국제 원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개발도상국 여성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그 사회를 개조하고 바꾸는 데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서구보다 훨씬 가부장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이 많이 제약될 수 있지만, 여성단체에 투자하는 만큼 여성의 참여를 유도하게 되더군요. 결국 재원의 부재와 결속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줄 노하우의 부재인 셈입니다. 여성 활동을 지원하고, 능력 있는 여성을 지속적으로 충원해 정치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을 계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성총리 탄생? 10년만 기다려라”

김효선:그동안 팔메 총리, 칼손 총리, 그리고 페르손 총리 등 세 명의 총리를 모셨는데요, 정치 지도자로서 그들이 갖고 있는 소양과 능력, 동료와의 관계, 정치적 이상과 비전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레나 옐름발렌:칼손 총리는 팀워크를 가장 중요시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칼손 총리는 내각의 여성-남성 비율을 처음으로 50%씩 임명한 분입니다. 94년의 일이죠. 그때 이후 여성 장관의 수가 남성과 동수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팔메 총리는 국내외 정치에서 불평등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도자였습니다. 페르손 총리는 경제적 안정과 함께 스웨덴을 유럽연합(EU)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국제적으로 스웨덴의 위상을 높인 지도자입니다. 지도자의 정치적 스타일과 이상은 사회적·시대적 요구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네요.

김효선:스웨덴은 여성의 정치참여가 상당히 높은데도 아직 여성 총리가 탄생하지 못했습니다. 언제쯤 가능할까요.

레나 옐름발렌:10년 내에는 가능할 겁니다. 여성 정당 대표가 많이 선출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문제입니다.

김효선:최근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눈부십니다. 하지만 양극화와 성 평등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죠. 부총리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레나 옐름발렌:조언을 드리기가 어렵군요. 각국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아동, 노인 그리고 세금을 통한 복지의 확대 등과 같은 사민주의적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효선:이제 30년 이상의 정치 경력을 뒤로 하고 현역 정치에서 은퇴를 하셨는데, 하신 일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아쉬움이 남으시는지요.

레나 옐름발렌:제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양심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경문제에 좀 더 활동을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유해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대체에너지 개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국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김효선: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과 기쁨과 휴식을 함께 하는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른 기회로 한번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레나 옐름발렌 스웨덴 전 부총리는

1943년 1월 14일 스웨덴 살라에서 태어났으며, 1969년 26세 나이에 국회의원직에 올라 2003년 조기 퇴직할 때까지 34년 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74년 31세의 나이로 교육부 장관에 임명돼 당시 스웨덴 최연소 장관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교육부 장관(1982~85), 국제원조부 장관(1985~91),
사회민주당 중앙상임위원(1993~2002), 외교부 장관(1994~98)을 거쳐 98년 여성 정치인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인 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2002년까지 부총리를 역임했으며, 2003년 유럽미래평의회 스웨덴 의장을 지내다 60세에 조기 퇴직했다.(65세 정년퇴직보다 먼저 신청)
현재 스웨덴 아프가니스탄위원회 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22세 때 결혼한 남편 잉바르 발렌과의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으며, 결혼한 딸의 자녀 3명 등 가족 5명과 함께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 진행-정리는 최연혁 스웨덴 남스톡홀름대 정치학과 부교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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