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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강의를 학생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강의를 학생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다. ⓒ 정연경

19일 서울대학교 사회대 교수 소회의실에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특별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한미FTA, 판도라의 상자를 어찌할 것인가'란 주제로 서울대 정치학과 모의국회 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것이다.

"140여 회 강연을 했지만 그 중 대학 강의는 겨우 10여 차례뿐"이었다는 정 전 비서관은 "요즘엔 대학생보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 한미FTA 문제에 대해 더 잘 안다"며 대학생들의 무관심에 대해 답답해했다.

"FTA는 결국 대기업의 이야기"

이날 강연은 정 전 비서관이 한미FTA 반대의 근거를 학생들에게 조목조목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 전 비서관은 "협상 품목 모두를 90% 이상 개방하는 수준의 FTA는 세계적으로 얼마 없다"면서 "따라서 FTA가 대세라는 정부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한미FTA를 자유무역협정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며 "상대국의 법과 제도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바꾸려 하는 태도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이 전교조·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 때문에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대기업의 이야기와 같다"고 말했다.

"한미 FTA 주권침해"

이어 정 전 비서관은 한미FTA의 의약품 부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정 전 비서관은 "'약값 책정 회의'는 신약이 개발되었을 때 값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하여 신약을 같은 효능을 가진 가장 싼 약에 가격과 성능을 비교해 값을 정하는 것"이라며 "만약 제약회사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면 포지티브 리스트(건강보험 의약품 선별 적용 : 검증된 의약품만을 건강보험 적용시키는 것)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제도는 건강보험제도가 탄탄해지고 생명과 연관 있는 신약의 사용의 빈부격차를 줄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이러한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미국 측은 지금 있는 2만2천여개의 약은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그대로 인정하고 신약부터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는 우리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주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실제로 미국과 호주의 FTA에서 호주는 이 제도를 지키는 대가로 특허를 연장하기로 해 1조 7000억원의 손해를 보았다"며 "호주와 인구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손해액은 두배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도 민영화 후 멕시코 산골에 기차 안 다녀"

정 전 비서관은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문제는 양극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NAFTA 이후 철도 민영화가 된 멕시코에는 산골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며 "만약 정부가 교차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시골의 기차요금은 굉장히 비싸지거나 아예 서비스가 끊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 전 비서관은 보험 개방 역시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 전 비서관은 "보험이 개방되면 우리나라의 큰 보험회사들도 미국식 보험을 원할 것"이라며 "미국식 보험은 민간 보험 회사들이 경쟁하고, 병원이 그 중 몇 개 회사와 계약을 맺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면 그 병원과 계약을 맺고 있는 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는 좋은 측면 뒤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험료가 숨어있다"며 "이러한 제도 때문에 미국에는 4300만명이 보험에 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정 전 비서관은 "그런데 이 제도를 재경부가 추진하고 있다"며 "시장 하나면 다 된다는 믿음을 지닌 재경부 아래 조중동이 있고 대기업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무조건적 반대보다는 사안에 대한 반대가 실효성 있어"

이어 정 전 비서관은 "한미FTA를 추진하는 정부 각료들은 시대를 인식하지 못하고 명나라만을 섬기려 했던 이조시대의 관료와 같다"며 "한미FTA에는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그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미FTA에는 무서운 양극화의 논리가 숨어있고 그것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의 목표는 자유화와 개방화를 흐름으로 만들어 전체적인 기조를 바꿀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취약한 나라이다. 한미FTA의 추진은 난파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강연을 들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모의국회 준비위원회 학생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이에 정 전 비서관은 답변했다.

"무턱대고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스크린 쿼터나 약제비 적정안 방안 등 구체적인 방안 하나만 반대를 하면 미국 쪽에서 먼저 물러날 것이다. 미국이 FTA를 맺으려 추진했던 나라 몇몇은 이미 그런 방법으로 FTA를 결렬시켰다. 결국 국민이 잘 알아야 한다. 국민이 알면 자연스레 이러한 제도에 반대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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