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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12일 오전 안국동 달개비에서 공대위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시사저널>의 편집권 독립과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12일 오전 안국동 달개비에서 공대위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시사저널>의 편집권 독립과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어떤 조직 바깥에 있는 사람이 그 조직의 속사정을 소상히 알기는 어렵다. 바깥 사람이 조직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것은 대개 귀동냥을 통해서인데, 그 정보에는 그걸 전하는 사람의 입장도 반영되기 마련이어서 그게 꼭 공평한 전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그런 불확실한 정보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갈등을 빚고 있는 기자들과 경영진 양측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사실에 기초해 내 의견을 적어보려 한다.

금창태 사장은 왜 기사를 삭제했나

월드컵 열기가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삼켜버리던 지난 6월 중순, 인쇄소에 넘겨진 <시사저널>의 기사 하나가 인쇄 직전에 편집국장 모르게 빠졌다. 그 기사는 삼성그룹의 2인자라 할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이었고, 이 기사의 삭제를 지시한 이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었다.

금 사장은 그에 앞서 당시 이윤삼 편집국장에게 이 기사를 빼라고 요구했으나, 이 국장과 편집국 기자들은 이 요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잡지가 나온 뒤 기사가 빠진 것을 알게 된 이윤삼 국장은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냈고, 금 사장은 즉시 이 사표를 수리했다. 뒤이어 편집국 기자들이 기사 삭제와 편집국장 사표 수리에 대해 항의하자, 금 사장은 직무정지 대기발령 등의 중징계를 무더기로 내리는 것으로 이에 대응했다.

기자가 고작 27명에 지나지 않는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사실상 해고된 편집국장을 빼도 다섯 명의 기자가 중징계를 받아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경고장을 받은 기자까지 포함하면 이번 사태에서 회사 측이 문제삼고 있는 기자는 무려 17명에 이른다.

이 사태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기사가 삭제된 이유다. 금 사장은 왜 편집국 기자들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삭제했는가? 그 사안은 기사화할 가치가 없었고, 기사도 충실한 근거를 갖춘 것이 아니었다는 게 금 사장의 주장이다.

반면에 편집국 기자들은 금 사장이 학교 선후배로 가깝게 지내는 이학수 부회장의 처지를 고려했고, 더 나아가 삼성그룹의 힘에 휘둘려 무리하게 기사를 삭제했다고 보고 있다.

어느 쪽 말이 옳은지는 국외자로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기사가 실릴 잡지가 나오기 전에 삼성 쪽 사람이 편집국에 찾아와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이와 동시에 삼성그룹 고위 인사가 <시사저널> 경영진을 접촉한 사실은 확인되었다.

기사도 상품인 시대, 편집권은 사장에 있다?

삼성 인사 기사가 삭제된 채 발매된 <시사저널> 870호.
삼성 인사 기사가 삭제된 채 발매된 <시사저널> 870호.
둘째는 편집권의 귀속 문제다. 편집권은 편집국에 속하는가 아니면 경영진에 속하는가? 그러니까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판단은 편집국장이 하는가, 아니면 '사장'이나 '회장'이 하는가? 기사도 하나의 '상품' 노릇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보기보다 미묘한 문제다.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 말끔히 걷어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 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

공직은 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스란히 포갤 수는 없겠지만, 언론사 경영자와 편집국장의 관계는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관계에도 비유할 수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어떤 구체적 사안을 뒤져라 또는 덮어라 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인식한다.

그것이 특히 이 정부 들어서 널리 선양된 검찰의 독립이다. 검찰총장 인사권을 대통령이 가지면서도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구체적 사안의 수사나 기소 여부를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편집국장 인사권을 경영자가 가지면서도 어떤 사안에 대한 기사가치 판단을 편집국에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사는 내다 파는 상품이지만, 내다 파는 상품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비록 사기업이 공급한다고 할지라도, 기사는 공공재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띠고 있다. 오로지 시장기구에만 맡겨놓기에는, 한 공동체의 총체적 위생을 위해 너무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이 기사라는 재화다. 그래서 나는 편집권의 편집국 귀속을 지지한다.

<시사저널> 제호의 명예 지켜야

셋째는 사태의 처리 방식이다. 말하자면 기술적 수준의 문제다. 금창태 사장이 편집국장의 사표를 즉시 수리한 데 이어, 편집권 독립을 옹호하는 기자들을 과격하게 징계함으로써 갈등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은 이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판단한다.

금 사장은 이 기회에 기자들을 확실히 길들이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한 시절 '주인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시사저널>의 독립성과 생명력을 지켜왔던 기자들이 경영진의 서슬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또, 설령 기자들이 길들여진다 할지라도, 그렇게 길들여진 기자들이 만들어내는 <시사저널>은 도대체 어떤 꼬락서니일 것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경영진과 단체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 경영진의 소극적 태도로 단체협상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한다.

고종석씨
고종석씨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되느냐에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명예만이 아니라 지난 17년간 독립언론의 모범을 보여준 '시사저널'이라는 제호의 명예가, 더 나아가서 한국 저널리즘의 명예가 걸려있다.

나는 <시사저널>의 오랜 독자로서, 한국 저널리즘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시사저널> 기자들과 노조에 간접적으로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그것이 내가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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