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금치무침'  접시 바닥에 깐 해바라기꽃잎과 다알리아꽃,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들꽃
'시금치무침' 접시 바닥에 깐 해바라기꽃잎과 다알리아꽃,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들꽃 ⓒ 서종규
오후 2시에 식당에 도착하였다. 식당의 식탁은 미리 하얀 종이를 깔아 깔끔하였고, 인원수에 따라 수저와 젓가락만 놓여 있었다. 우리들이 도착하자 밑반찬들을 한 가지씩 내오기 시작했다.

밑반찬을 한 가지씩 내올 때마다 그 밑반찬 접시의 밑바닥이나 음식 위에 들꽃들이 한두 송이씩 꽂아져 있었다. 들꽃뿐만 아니라 들풀들의 잎사귀며 나뭇잎도 놓여 있었다. 우리들은 시장하여 젓가락을 집어 들었지만 선뜻 음식을 집어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반찬 위에서 조그맣고 앙증스러운 들국화며 여귀꽃이며 쑥부쟁이 코스모스꽃들이 웃고 있는 것이다. 방금 따 온 꽃들은 그대로 싱싱하여 우리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젓가락으로 그 꽃을 헤치고 음식을 들어 올릴 수가 있단 말인가.

'질경이무침' 접시에 놓은 코스모스꽃
'질경이무침' 접시에 놓은 코스모스꽃 ⓒ 서종규
지난 5월 11일에 광주중앙중 교사들과 함께 찾아갔던 섬진강 장구목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여, 12일(목) 오후 이번에는 13명의 광주경신중 교사들과 함께 다시 찾았다. 학생들의 중간고사 시험을 치른 오후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지명에 대한 탐방과 연구발표를 겸하는 자리였다.

우리들은 인터넷에서 찾은 섬진강 상류 장구목에 있는 식당에 메기매운탕을 주문해 놓았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88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전북 순창으로 빠져나가 남원 방면으로 가다가 강경마을에서 좁은 농로로 접어들었다.

섬진강 장구목은 생명력이 가득했던 지난 5월의 분위기와는 완연하게 달랐다.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강물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요강바위 부근의 바위들이 물위로 거의 다 나와 있었다.

산은 이제 단풍들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하였고, 간혹 강가에 갈대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갈대 사이에 억새의 물결도 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강가의 나무들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몇 그루의 밤나무에는 이미 밤송이들이 모두 벌어져 있었다.

'쑥부쟁이꽃'을 다듬고 있는 이정순씨의 모습
'쑥부쟁이꽃'을 다듬고 있는 이정순씨의 모습 ⓒ 서종규
10여 년째 이곳 장구목에서 '장구목가든'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정순(45세)씨는 밑반찬을 놓은 접시에 들꽃들을 한두 송이씩 꽂거나 바닥에 놓고 음식을 담는다는 것이다. 봄에는 자운영꽃이나 제비꽃 등 봄꽃부터 시작하여 가을의 들국화까지 모두가 식탁에 놓이는 자연 그대로인 것이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도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올린다고 한다. 각종 양념도 모두 자연 그대로의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도토리묵 등 섬진강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구하여 준비하고, 숙주나물이나 콩나물 등 집에서 기를 것들은 길러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식탁의 모습
꽃보다 아름다운 식탁의 모습 ⓒ 서종규
'질경이 볶음'은 봄에 질경이를 뜯어 삶아서 말려 놓았다가, 음식을 만들 때 물에 불려서 데쳐 볶으며 양념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코스모스 세 송이를 옆에 놓았다.

'시금치무침'엔 해바라기꽃잎과 다알리아꽃잎을 곱게 깔아 놓았다. 특히 노랑과 빨강의 조화가 선명하여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양송이볶음'엔 피망, 양파, 당근 등을 들기름에 볶았는데, 그 밑에 청미래 풀잎을 받쳐 놓았다.

'숙주나물'엔 바다에서 나는 풀인 함초를 섞어서 볶으려고 했는데, 하지 못하여 아쉬웠다며 아무 꽃도 꽂지 못하였다고 수줍어하였다. '노각오이무침'은 상수리 잎을 밑에 받쳤는데, 오이를 소금에 절였다가 고춧가루, 고추장, 참기름, 깨소금 등 양념과 함께 무쳤다는 것이다.

'시금치무침' 접시 바닥에 깔아 놓은 다알리아꽃잎과 해바라기꽃잎들
'시금치무침' 접시 바닥에 깔아 놓은 다알리아꽃잎과 해바라기꽃잎들 ⓒ 서종규
'다슬기'는 섬진강에서 잡은 것을 사용하는데 장조림을 하여 상에 올려놓고, '도토리묵'에도 강가에서 뜯어온 풀잎을 깔았다는 것이다. '메기매운탕'엔 시래기가 가장 중요하고, 된장, 마늘, 생강, 고추 등 각종 양념을 넣어 끓인다는 것이다.

단풍나무에 단풍이 들면 '단풍잎 튀김'을 하는데, 단풍잎에 그대로 튀김 옷만 살짝 입혀 식탁에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식탁은 그대로 단풍이 들어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단풍잎 튀김은 또 고혈압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버섯볶음' 접시에 놓인 여귀풀꽃과 여귀풀잎
'버섯볶음' 접시에 놓인 여귀풀꽃과 여귀풀잎 ⓒ 서종규
접시 하나 하나에 밴 자연이 그대로 이정순씨의 마음을 담아 놓은 것 같았다. 처녀 시절에 서울에서 <닌자 거북이> <떠돌이 까치> 등 만화영화를 제작했던 모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녔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여 이곳 섬진강가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벌을 키우고 꿀을 받았는데, 나중에 이 섬진강 장구목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단다.

주음식인 '메기매운탕'
주음식인 '메기매운탕' ⓒ 서종규
꽃보다 아름다운 식탁을 준비하는 이씨는 처음에 강가에 살다보니 꽃들이 너무 아름다웠단다. 진달래가 피면 저 대지에 핀 작은 꽃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하고 감탄했단다. 늘 이 들꽃들을 보면 너무 꽃들이 너무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진달래꽃잎의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하고 싶어 접시에 꽂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작은 꽃들이 친구가 되고, 유일한 벗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살다가 어려운 시골 생활을 하는데 유일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꽃들이었단다. 그래서 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강가에서 꺾어온 꽃들을 유리컵에 꽂아 놓으면 빤히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교감을 나누었단다.

산동백, 목련꽃 등 각종 꽃으로 만든 꽃차를 우린 유리다기
산동백, 목련꽃 등 각종 꽃으로 만든 꽃차를 우린 유리다기 ⓒ 서종규
식당을 하면서 이 아름다운 꽃을 손님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서 음식 접시에 꽃을 놓게 되었단다. 음식을 담은 접시에 놓인 꽃을 보고 손님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상기된다고 하였다.

특히 손님들에게 들꽃을 소개하고, 그로 인하여 들꽃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손님들이 조그마한 들꽃에 대하여 감탄하며 자연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다.

섬진강 장구목의 풍광 - 왼쪽 하얀 집이 '장구목 가든' 식당.
섬진강 장구목의 풍광 - 왼쪽 하얀 집이 '장구목 가든' 식당. ⓒ 서종규
"이 섬진강 장구목은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비경 그대로 순수한 자연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이 곳의 풍광은 매일매일 달라집니다. 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자라고,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영화보다 더 아름답답니다. 그 아름다운 풍광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답니다.

한 폭의 동양화 그대입니다. 봄은 무릉도원이라고 붙여도 어울릴만한 경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꽃소리까지 아름답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고 감탄하는 때가 하루에도 서너 번씩 듭니다.

가을엔 오색단풍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답니다. 흐르는 물가에 비친 단풍잎을 조그마한 고기들이 물고 가는 느낌은 상상 그대로 선경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장구목의 풍광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씨는 후식으로 꽃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꽃은 주로 산동백이나 목련꽃잎을 말려서 차로 만든다는 것이다. 차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그대로 이씨의 마음이 꽃향기로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광주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담양을 지나 전북 순창 나들목을 빠져나가 순창제일고등학교 입구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남원방면으로 가다가 괴정 삼거리에서 동계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첫 번째 삼거리에서 괴정교 건너서 또 좌회전한다. 좁은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강경마을 입구에서 '장구목 가든'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섬진강가에 난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장구목이 나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