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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과 손자, 손녀들이 송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손자, 손녀들이 송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 이종일
2006년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추석이다. 춥다고 손을 호호 불고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집 앞의 푸른 들판이 누렇게 변해 있다.

눈물로 시작한 2006년. 추운 겨울날 역시 명절인 설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지 5년 동안 말 한마디 못하시며 지내오신 아버지는 설날 자식들이 모두 모인 시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신 날이 명절이라서 그런지 이번 추석은 남들만큼 그렇게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님이 앓아 누워 계시는 동안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조상께 제사도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음식은 조금 장만은 했으나 남들만큼 웃고 즐기는 명절이 아니었고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것에 만족하는 명절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번 추석이 모두 가족이 모인 자리가 되었다. 이번 추석은 그동안 아버님이 누워 계셔서 하지 않았던 송편도 손자, 손녀들과 함께 만들고 모두 모여 앉아 전도 부치고 잡채도 만들고 남자들은 밤도 깍고 오랜만에 명절 분위기가 나는 추석이었다.

손자, 손녀들이 주물럭 주물럭 송편을 만드는 것을 보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 동안 아버님의 병간호에 힘드셨던 어머님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보였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고 깨끗이 씻어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려놓기 전에 입에 쏙 넣고 아삭 먹어 먹어보고, 마당에서는 애들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어머님 혼자 계시는 집에 오랜만에 무척 시끄럽다.

남자들은 아버님이 살아 생전에는 삼부자가 같이 모여서 밤을 정성스럽게 깎았는데 아버님이 누워 계시는 동안은 잠시 접어 두었던 밤 깎는 기술을 발휘해 보고 여자들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전을 부치느라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마당 대추나무에서 굵은 대추를 다 따버렸습니다.
마당 대추나무에서 굵은 대추를 다 따버렸습니다. ⓒ 이종일
제사를 지냈다.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것을 직접 책을 찾아보며 홍동백서 어동육서를 생각하며 상을 차려야 했고 지방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는지 몰라 아버님이 쓰시던 한자책을 꺼내 놓고 이 글자가 맞는 것 같고 저 글자가 맞는 것 같고, 하며 어렵게 지방을 쓰면서 새삼 아버님을 생각했다.

뒷장에 아버님의 글씨가 남아 있는 책입니다. 발행일이 1974년이니까 32년이 된 책입니다.
뒷장에 아버님의 글씨가 남아 있는 책입니다. 발행일이 1974년이니까 32년이 된 책입니다. ⓒ 이종일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떠났다. 산에는 친인척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에 와서 벌초를 해서인지 아주 깨끗해 보였다. 아버지 묘도 잔디가 아주 잘 살아 있었다.

먼저 현수 증조할아버지 묘에 절을 하고 작은 할아버지 묘에 가서 하고 이제 예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고 계시는 현수 할아버지 묘에 절을 했다. 돌아가신 후 첫번째 명절에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절을 하는데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은 왜 일까? 정답은 불효일 것이다. 현수와 현경이도 넙죽 할아버지께 절을 한다.

아버님의 묘에 잔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묘에 잔을 올리고 있습니다. ⓒ 이종일
성묘를 마치고 온 친척이 모여 앉아 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만나 도란 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꼬맹이들은 할아버지들이 누워 계시는 묘를 오르락내리락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할아버지 힘드신다고 빨리 내려오라고 하면 "할아버지 힘들어요?"하면서 재빨리 뛰어 내린다.

기특한 녀석들이라고 땅속에서 할아버지가 웃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힘들었는지 잠이 들어 버렸다.

한달전에 한 식구가 된 강아지 초롱이입니다.
한달전에 한 식구가 된 강아지 초롱이입니다. ⓒ 이종일
저녁에는 아주 커다란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한달 전에 우리 식구가 된 강아지 초롱이도 달을 보고 있다. 주인이 보니까 따라서 보는 건지 자기도 무슨 소원을 비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달보고 우리가족 이제 재미있게 살게 해주세요 하고 맘속으로 빌어보기도 했다.

저녁에는 현경이 고모네 식구들이 와서 또 한바탕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내일은 오랜만에 가족들 데리고 회를 먹으러 가자고, 자기가 쏜다고, 현경이 고모부가 큰 소리를 친다. 좋다, 가자! 온 가족이 오랜만에 회를 먹을 기회를 잡았다고 좋아했다.

자세를 잡고 앉은 현수와 "오빠 잡았어?"를 옆에서 연발하는 현경
자세를 잡고 앉은 현수와 "오빠 잡았어?"를 옆에서 연발하는 현경 ⓒ 이종일
다음날 대부도를 지나 선재도로 온 가족이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휴 마지막날을 즐기고 있었다. 어머님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먼저 횟집에 들러 회를 비롯해서 기타 등등 많은 음식을 먹고 시원한 다리 밑에 자를 깔고 바닷바람을 쐬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바닷물이 빠져 갯벌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물이 밀려 들어와 그 넓은 갯벌이 사라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고기를 잡으려고 나섰다. 현수도 낚싯대를 사서는 고기가 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잡히는 고기는 없다. 돌에 끼어 낚싯줄 끊어먹기, 다른 사람과 얽힌 낚싯줄 풀기, 미끼인 갯지렁이 다시 끼우기. 왕초보 낚시꾼이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가 무척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턱하고 자리를 잡은 모습이 제법 폼이 난다.

잡은건지 잡힌건지 모르지만 이날 잡은 게
잡은건지 잡힌건지 모르지만 이날 잡은 게 ⓒ 이종일
낚시를 올리는데 뭔가 잡혀 있다. 물고기인가 봤더니 게가 걸려 있다. 잡으라는 고기는 못잡고 게 3마리만 잡았다. 낚시를 접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오랜만에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무리하게 쏜 현수 고모부를 위해 포도를 한 상자 안겨 드리고 우리도 한 상자 사가지고 돌아왔다. 대부도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차가 밀려 4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왜 일까?

이번 추석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첫번째 맞은 명절로 그 동안의 외로운 명절이 오랜만에 남들과 같은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불효한 자식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아버님이 살아 계시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가족 즐겁게 지내라고 아버님이 주신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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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PB로써 고객자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 증권방송 앵커 및 증권방송 다수 출연하였으며 주식을 비롯 채권 수익증권 해외금융상품 기업M&A IPO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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