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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회
백석의 시는 훌륭한 문학 텍스트다. 또한 그 자체로 민족문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먹을거리, 민속놀이, 사투리, 의상 등 민족문화와 관련된 주옥같은 내용이 작품마다 넘쳐난다.

백석의 작품에는 관서 지방(평양시, 평안남·북도, 자강도 일대)의 풍속과 문화가 생생히 담겨있다.

백석의 시에는 먹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910~1950년대 관서지방의 음식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듯 음식에 관한 백석의 묘사는 세밀하면서도 감칠맛 난다.

먹는 이야기에 유난히 관심을 많이 보인 이 시인에게 먹는 것은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하나가 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특히 명절날의 흥겹고도 들뜬 분위기를 생생히 담은 백석의 작품을 읽다보면 사람 사는 냄새와 가족의 정이 느껴져 새삼 마음이 훈훈해진다.

아울러 그 시대 명절 풍경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째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고야 古夜' 중)

송편 빚는 광경이 그림처럼 눈에 선하다. 요즘에는 송편도 모두 사다 먹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온 식구가 앉아서 밤늦도록 송편을 빚었다. 송편을 빚는 자리에서 이야기는 무르익어가고 밤은 더욱 깊어갔다. 어쨌거나 이 시에 등장하는 송편과 소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추억은 음식과 함께 익어간다

어린 시절 시인이 큰집에서 보낸 명절날의 추억을 그린 작품도 있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여우난골족' 중)

여우난골은 시인의 친가가 있던 마을이다. 이 시에서는 명절날 온 가족들이 모여 정겹게 어울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명절음식들이 죽 나열되어 있다. 아마 우리에게 명절은 음식맛과 냄새로 기억되는 것인가 보다. 설날하면 떡국이 떠오르고 추석하면 송편이 떠오르듯이. 좁은 방안에서 북적북적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살가운 풍경이 명절의 전통음식만큼이나 그립고 또 그립다.

이럴진대 타향에서 그것도 혼자서 명절을 맞는 쓸쓸함과 외로움이야 이루 말할 수 있으랴. '두보나 이백같이'에서는 중국의 외딴 곳에서 정월대보름을 맞는 시인의 울적하고 쓸쓸한 심정이 잘 나타나있다. 읽다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에 더불어 젖게 된다.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다. (중략)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두보나 이백같이' 중)

예전에는 정월 보름에도 떡국을 먹었던 모양이다. 이 시에서는 아울러 원소라는 떡을 먹는 중국 사람들의 풍습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이 날만큼은 고향사람이 있는 집에 가서 맛스러운 떡국 한 그릇을 꼭 사먹으리라 다짐한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으레 그래왔듯이.

유난히 사람과 음식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백석의 작품에서 명절 음식이 자주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명절날이야말로 자신의 혈연과 공동체가 하나임을 재확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음식의 조리법만 소개해놓은 요리서적이 아니라, 명절의 흥겨운 분위기와 혈연간의 진한 애정이 묻어나는 백석의 시에서 발견하는 명절 음식이 더욱 맛깔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째듯하니:환하게 *놀으며: 높은 압력에 뚜껑이 들썩들썩하는 모양 *죈두기송편:진드기모양처럼 작고 동그랗게 빚은 송편 *안간: 안방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지음/ 도서출판 시와사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다산책방(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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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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