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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겉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고베대지진이 일어나 정신이 없던 그때, 마사야는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친척의 빚 타령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자 어느 여인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미후유.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마사야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언제부터 그곳에서 자신을 지켜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미후유는 범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범죄를 알고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마사야를 도와준다. 왜 그럴까? 더욱이 마사야에게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아름다움이 있는 도쿄로 가자고 속삭인다. 물론 그 아름다움이란 도쿄 특유의 인위적인 것이다. 어둠마저 지워버리는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들이 흔들거리는 그곳을 향해 미후유는 마사야의 손을 잡아끈다. 우리의 행복을 찾아서, 라는 달콤한 말과 함께.

최근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의 분위기는 다른 작품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최근에 나왔던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해 인기를 끌었던 <레몬>, <호숫가 살인사건>등을 보면 즐거움을 넘어서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애틋함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추리소설도 그런 방면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던 것이다.

반면에 <환야>는 ‘팜므 파탈’의 화신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세상이 적이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등장은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는 걸 예감하게 하고 그녀는 예감을 배신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여자의 ‘절대권력’으로 삼을 줄 아는 그녀는 그것을 통해 남자들을 좌지우지한다. 그녀에게 빠진 남자는, 그 옛날 포사가 웃는 장면을 보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던 유왕처럼 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치밀하고 교활하다. 뒤에서 사람들 조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할 때는 그에 따른 변신을 해서 남자를 홀린다. 방송국 직원이 됐다가 창녀가 되기도 할 정도. 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요즘 흥행가도를 달리는 <타짜>의 정 마담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섹시함을 벗고 청순가련한 캐디로 변신했던 정 마담처럼 미후유도 무엇이든 가능하다. 물론 미후유가 ‘변신’의 수준은 더 높다. 미후유는 인생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무서운 여자니까.

이러한 화신이 등장한 만큼, 특히 추리소설에서 희생자 역을 맡았던 미인이 악녀 중에 악녀로 등장한 만큼 <환야>에서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은 ‘그녀가 사는 법’이다. ‘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 좌우명이 아니라 일상생활인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인지라 이 행동들이 순순히 나오지 않기에 더욱 즐겁다. 전환되는 장면 하나하나마다 허를 찌르는 즐거움이 가득하기 때문. 특히 화신이 환상의 오로라를 만들어낼 때, 흩어져 있던 그것들 하나하나가 단서가 돼 추리의 대서사시를 완성하는 순간들에서는 ‘명품반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 외에 눈여겨 볼 점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환야>에서는 인물의 심리묘사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을 보는 것으로써 행동을 이해시킨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행동으로써 마음을 추측하게 만든다. 때문에 심리묘사가 짤막짤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환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남자주인공 마사야의 마음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다. 흥미롭게도 여자주인공 미후유는 여전히 행동 위주라는 것. 때문에 마음을 앞세운 마사야와 행동을 앞세운 미후유를 비교해보는 것도 <환야>의 특별한 재미다.

오랜만에 만나는 악녀 미후유, 그녀는 셜록 홈즈를 놀라게 했던 아이린 애들러를 꼭 닮았다. 여성을 다소 낮게 평가하던 셜록 홈즈의 생각을 바꿨던 그녀처럼 미후유도 평소 여성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기에 충분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후유는 마성을 지녔다는 것. 등장인물이든 독자든 간에 누구든 휘어잡을 정도로 그것이 꽉 차있다. 그런 만큼 작품이 지닌 강렬함의 농도가 짙고 <환야>의 특별한 재미는 그것과 비례에 높은 곳에 닿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등록했습니다.


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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