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의 핵실험 성명에 이어, 6일에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의장성명이 나왔다. 그리고 북한 핵실험이 곧 임박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의장성명문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아직도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안보리는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해 전제조건 없이 즉각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면서, "만약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청들을 무시하면 안보리는 유엔 헌장 하의 책무에 부합되게 행동할 것임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의장성명에서 나타났듯이, 미국 등 국제사회는 아직도 '6자회담 복귀'라는 '고전적' 테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인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거의 훌훌 털고 있다는 점을 간과 혹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마음이 이미 6자회담을 지나 '다음 단계'로 옮아가고 있음은 지난 3일자 외무성 성명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었다. 외무성 성명에서는 미국에 대해 대북 제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까지 대북 금융제재 철회를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핵실험 예고라는 긴박한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북한은 대북 제재 철회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제재 철회에 대해 지금 당장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으며, 또한 대북제재 철회 이후의 6자회담 복귀에 대해서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외무성 성명 말미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기는 했지만, 이는 이미 1870년대 전후로부터 조선 정부가 미국에 보낸 경고문서에 단골처럼 나오는 문구에 불과하다.

북한이 지금 당장에는 북미 대화에 별다른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음은 외무성 성명문의 다음 구절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반공화국 고립압살책동이 극한점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정세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태 발전을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 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은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 대응조치로서 핵억제력 확보의 필수적인 공정상 요구인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위 인용문 가운데에서 '극한점'이나 '극단적인' 등의 표현이 사용된 것은, 북한 지도부가 '현 단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단계'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지도부가 대북 금융제재 철회를 통한 6자회담 재개보다는 핵실험을 통한 상황 타개에 보다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지도부의 마음은 '지금의 라운드'보다는 '다음 라운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이 이처럼 '핵실험 이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이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또 안보리까지 가세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북은 전혀 흥분하지 않고 있다. 흥분하고 있는 쪽은 미국일 뿐이다.

미국의 파상공세 앞에서도 북한이 침착성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음 단계인 핵실험까지 공식적으로 예고했다는 것은, 북한 지도부가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북·미 핵대결에 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지도부가 지금 당장의 고통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북은 6자회담에 대한 미련을 거의 훌훌 털고 이제는 핵실험 이후를 대비한 행보를 걷고 있는데, 미국 등 국제사회는 아직도 6자회담 복귀를 전제로 전략을 수립하고 공동행동을 준비한다면, 북·미 핵대결의 향방이 누구의 시나리오대로 돌아갈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한다면, 이는 미국 스스로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자초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미국의 후퇴가 국제적 명분을 얻으려면, 상황이 좀 더 악화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대외전략상의 실패를 최소화하려면, 지금 라운드보다는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실험을 막으려 하기보다는, 핵실험 이후의 대북 압박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립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반드시 핵실험을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또 핵실험 장소가 북한 땅이라면,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을 원한다면, 날짜를 핵실험 이전보다는 핵실험 이후로 잡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핵실험 이전이든지 이후든지 간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되돌리기 위해 미국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3일자 외무성 성명에서 밝혔듯이,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 기회는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열려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