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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야외탁자가 있어서 잔디밭이 살아납니다.
야외탁자가 있어서 잔디밭이 살아납니다. ⓒ 이승숙
서울에서 살다가 강화로 이사온 어떤 사람이 집을 구하고 있었다. 마침 적당한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 집을 얻지 않겠단다.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데 딱 한 가지가 걸려서 그 집을 얻지 않기로 했단다.

"그 집 마당에 잔디를 쫙 심어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집을 안 얻었어요."

잔디가 깔려있는 집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집인데 얻지 않겠다니 참 이상했다.

"아니, 잔디 깔았다고 집을 안 얻어요? 잔디 있으면 보기 좋을 텐데 왜 안 얻었어요?"

옆에 있던 사람이 그리 묻자 그는 "농작물을 심어야 할 땅에 쓸데없는 잔디나 심고, 그게 말이 됩니까?"라며 비분강개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그 사람이 몇 년 뒤 땅을 사서 집을 짓게 되었다. 그는 마당에 잔디를 다 깔았다. 막상 살아보니까 흙마당이 불편해서 잔디를 깔았다는 거다.

마당에 시멘트를 바르거나 잔디를 심지 않는 이상 잡초 때문에 골치를 썩기 때문에 마당에 잔디를 까는 것이다. 그 사람은 처음엔 그걸 몰랐던 거다. 부르주아처럼 잔디를 심은 집에서 산다고 못 마땅해 하던 그가 막상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알았던 거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꿈을 꿀 것이다.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하얀 집을 짓고 사는 꿈 말이다.

맨 처음 강화로 이사왔을 때 우리도 그런 꿈을 꾸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지어서 그림같이 꾸미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같은 하얀집을 포기하고 오래된 시골집을 수리해서 살고 있다.

헌 집을 수리해서 산다고 해서 옛날 방식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부부는 농사일을 해보지 않아서 흙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우리 집 텃밭에는 온갖 풀들이 자라서 범이 새끼를 칠 정도로 우거지곤 했다.

우리는 어떡하든지 간에 땅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채 앞 텃밭에다 잔디를 심어서 밭을 줄여 나갔다. 잔디마당을 꾸미니까 일이 아주 쉬워졌다.

잔디를 심은 첫 해와 그 다음 해만 신경 써서 풀 뽑아주면 그 뒤부터는 잔디가 세력을 확장해서 관리하기가 아주 쉬워진다. 여름에는 열흘에 한 번 정도씩만 잔디를 깎아주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같은 집에서 살 수 있다.

말 한마디에 행운을 잡다

나사못을 박을 구멍을 뚫습니다. 모든 게 다 이가 딱딱 맞아야 합니다.
나사못을 박을 구멍을 뚫습니다. 모든 게 다 이가 딱딱 맞아야 합니다. ⓒ 이승숙
잔디밭에는 야외 탁자와 파라솔이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그래서 야외탁자랑 파라솔을 구입할려고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찮았다. 그러던 차에 아는 분 집에 놀러갔더니 그림같은 야외탁자가 있었다.

"어머, 이거 정말 예쁘다."

남편과 내가 야외탁자에 앉아서 이곳 저곳을 어루만지며 찬탄을 하자 그 집 주인장이 그러는 거였다.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사실 재료비는 얼마 안 들어요."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요? 이런 거는 전문가나 만드는 거지, 어떻게 만들어요?"
"사실 제가 야외탁자 하나 살려고 알아봤더니 가격이 만만찮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설계해서 만들어봤어요. 같이 하나 만드실래요?"

아이고 이게 웬 행운인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말 한 마디에 우리가 바로 그 행운을 거머쥐었지 뭔가.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살아있는 공부겠지요.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살아있는 공부겠지요. ⓒ 이승숙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일요일 오전9시(9월 24일)까지 모여서 같이 탁자 만들자는 연락이 왔다. 남편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는지 아침도 안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가보니 벌써 두 사람이 와 있었다.

"아 글쎄 마음이 설레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8시 반도 안 돼서 왔어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고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커피를 나눠 마시며 작업할 것들을 챙기고 있는데 저 쪽에서 웬 신사가 오는 게 아닌가.

"아니 복장 불량이잖아요. 일하려는 사람이 신사화를 신고 오면 어떡해요?"
"그러게. 형님, 복장불량이다. 퇴학이다 퇴학. 하하하."

신사화를 벗고 편한 신발로 갈아 신은 그 사람은 늦게 온 벌로 음료수를 한 병씩 쫙 다 돌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야외탁자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5분 만에 일을 끝내다니...

탁자 다리를 맞추고 있습니다.
탁자 다리를 맞추고 있습니다. ⓒ 이승숙
야외탁자를 만들자고 했던 사람이 나무를 사와서 미리 재단을 다 해놓았다. 사실 나무를 모양대로 자르는 일이 큰 일인데 미리 다 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이 한결 쉬웠다.

재단해 놓은 나무들을 가져다가 순서대로 잘 챙겼다. 그리고 나사못을 박을 위치를 찾아 구멍을 뚫는 작업부터 했다. 직각을 맞추고 순서를 잘 챙겨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도록 조심하며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구멍을 다 뚫은 다음에는 나사못을 끼워 나갔다. 작업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고 사장의 유치원생 아들이 맞는 나사못을 척척 대령해 주는 거였다.

"야, 이 놈 머리 좋네. 작업 공정을 다 꿰뚫었어. 다음 순서가 뭔지 다 알잖아."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면서 아이는 혼자서 잘 놀았다. 나무조각들을 이어서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점심 전에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점심 전에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점심 먹고 잠시 쉬고 있습니다. ⓒ 이승숙
탁자 다리를 다 맞추고 그 다음에 상판을 붙여 나갔다. 이제는 호흡이 척척 맞아서 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이제는 선수들이 다 됐네. 우리 이러지 말고 주말마다 '알바' 뜁시다. 이 팀 해체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 손발이 이렇게 잘 맞는데 해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이구, 그러면 목수들은 다 뭐 먹고 살라고 그래?"

자화자찬하면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여럿이 함께 손발을 맞춰서 하니까 일이 그냥 막 나가는 거였다. 처음엔 다리 하나 만드는데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나중에 일이 손에 익자 5분 정도 만에 뚝딱 해내는 거였다.

우리는 그 날 야외탁자 4개와 야외 벤치 하나를 공동으로 만들었다.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4시 30분쯤에 모든 작업을 다 마쳤다.

그 날 만든 야외 벤치입니다. 여기에 앉으면 절로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
그 날 만든 야외 벤치입니다. 여기에 앉으면 절로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 ⓒ 이승숙
그 날 장소를 제공하고 각종 연장에다가 점심까지 다 챙겨준 사람은 야외탁자를 맨 처음 만들어서 선보여 준 그 집 주인장이었다. 그 분은 인천 남동공단에서 제법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시다.

그런데 술을 전혀 못하신단다. 우리나라의 사업관행상 술자리에서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법인데 술을 못하니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어려울 듯도 했다. 하지만 그 분은 그 분 나름으로의 방법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바로 야외탁자 만들기가 그런 인연 만들기의 한 방법이었다. 그날 모인 멤버들은 일부러 모아도 모으기가 힘들 정도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들이었지만 하루 종일 머리 맞대고 작업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꼭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힘을 합해서 같이 야외탁자를 만든다는 그 뿌듯한 마음에 우리는 서로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잔디밭에 '화룡점정'을 찍다

놀러온 동네 애들이 야외탁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참 좋은 그림입니다.
놀러온 동네 애들이 야외탁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참 좋은 그림입니다. ⓒ 이승숙
그 날 각종 편리를 봐준 그 집 주인장은 맨 마지막까지 선의를 보여 주었다. 다 만든 야외탁자는 부피가 커서 트럭이 있어야만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미리 트럭까지 다 구해다놓고 한 집 한 집 일일이 다 실어다 주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줄 때 생색내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말하자면 하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전혀 생색 안 내면서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밭에 야외탁자가 놓이자 비로소 잔디밭이 제 모습을 하는 것 같았다. 야외탁자는 그림으로치면 바로 화룡점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던 옆집 아줌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앉아보고 가고 또 우리 집에 놀러온 동네 애들은 그 곳에서 공부까지 한다. 누구나 다 쉬어서 가는 잔디밭의 야외탁자, 그 탁자를 볼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주고받던 인심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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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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