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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종말의 바보 ⓒ 랜덤하우스
이사카 고타로의 2006년 작 <종말의 바보>는 영화 <딥 임팩트> <아마겟돈>을 떠올릴 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발견되는 시간에서 차이가 있다.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에서는 소행성이 각각 지구와 충돌하기 1년 전, 18일 전에 발견된다.

하지만 <종말의 바보>에서는 무려 8년 전에 발견되고 일반인들에게 그 사실이 공표된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이건 아마도 인류 최후이자 최대의 스펙타클이 될것이다. 그 스펙타클이 올 때까지 남은 8년 동안 사람들은 무얼 하면서 살까?

사람들이 지구 종말을 8년 전에 알게 된다는 사실과 함께, 이사카 고타로는 또 한 가지 교묘한 테크닉을 발휘한다. 작품의 배경을 종말 3년 전으로 설정한 것이다. 발표 직후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말 직전도 아닌 중간의 시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다. 발표 직후의 패닉과 혼란은 엷어지고, 종말 직전의 아수라장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다. 어찌보면 짓궂은 상황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힐즈 타운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모여사는 사람들이다. 종말에 대한 발표가 있은 지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떠날 사람은 떠나고 죽을 사람은 죽고 감옥에 들어갈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원래 100세대가 모여 살던 힐즈 타운의 절반이 비었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원도 썰렁해졌다.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차고 넘치지만 치안도 다시 회복되고, 남은 사람들은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 3년 후에 종말이 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심리는 모두 제각각이다. 작품의 시간과 공간적 배경은 '종말 3년전의 힐즈 타운'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모두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한다. 누구는 아내가 그리워 자살하려고 하고, 누구는 오래 전에 죽은 여동생의 복수를 하려고 하고 또 누구는 짜증과 분노를 이기려고 샌드백을 두드린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 종말 3년 전까지 힐즈 타운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과 두려움을 어떻게든 억누른 채 5년을 버텨온 사람들이다. 5년이란 시간은 패닉과 혼란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절망을 그만큼 짙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세상이 3년 후에 망하는데 누군들 마음이 평온할까?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식료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특별한 소일거리도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과거를 더듬고 먼저 떠나간 사람을 추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 별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 '니노미야'가 그 인물이다.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까? 행성은 지구를 빗겨가고 3년 후에도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라면? 별을 좋아하는 니노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소행성이 떨어지든 안 떨어지든, 세상은 끝날 거야. 모두가 진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어."

또 다른 등장인물은 힐즈 타운의 옥상에 높다란 망루를 만든다.

"이 망루에서 바닷물에 삼켜지는 시내를 구경하면 기분이 좋을 거야."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다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종말에 대한 발표가 있은 직후의 시내는 온갖 약탈과 방화, 폭력이 판을 치는 무법천지였다. 야구 방망이를 든 채로 '한번 사람을 흠씬 패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골목에서 만날 수도 있다. 8년 뒤의 행성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은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당연히 집에 박힌 채 나오지 못한다.

마치 동면을 하듯이 몇 년 동안을 집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이웃을 만나고 운전을 하고 팀을 짜서 축구를 한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잊고 소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집에서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던 등장인물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이웃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고 결정해 간다.

이사카 고타로는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작가 중에 한 명이다. 2000년에 등단한 이후로 여러 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재기발랄한 상황의 설정과 가볍고 유머러스한 문장이 돋보이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종말의 바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3년 후에 지구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전혀 벌벌 떨지 않고 보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런 걸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 종말이라는 대사건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지나간 5년, 그리고 남은 인생을 나름대로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 필요한 앞으로의 3년. 그래서 이사카 고타로는 종말까지 8년이라는 유예시간을 두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느끼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남은 시간이 지나버린 시간보다 짧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랜덤하우스 출간.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현대문학(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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