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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자료사진)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뿌리를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폭풍이 부니까 허약하게 마구 흔들린다는 인상을 받아 가슴이 아프다."

조영황 전 국가인권위원장(65)은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게 된 원인을 '폭풍'에 비유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전원위원회 회의 도중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잠적했다가 1주일 만에 서울 서초구 자택에 모습을 나타냈다.

'폭풍은 인권위 안팎에서 동시에 온 것이냐'고 묻자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서 온 폭풍이라면, 인권위가 그동안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한 것 등을 문제 삼으며 인권위를 '입심 좋은 좌파 사회평론가들의 놀이터'로 폄훼한 일부 언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직 위원장이 말하는 내부 폭풍은 무엇일까. 그는 "인권위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해 폭풍이 불거나 비바람이 치면 흔들릴 수 있는 기관인데, 뿌리를 내린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위원장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지,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찾는 데 치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인권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이제 창업기를 지나 수선기로 가고 있다"며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잡아야 할 시기인데, 힘을 합쳐서 잘 해보자고 주장했지만 결국 잘 되지 않았다"며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토해냈다. '속이 상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기자의 반대쪽으로 돌리며 끄덕였다.

"상임위원들에게 위원장 권한 나눠줄 수도 없고..."

조 위원장은 2일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하면서 전직인 변호사로 돌아갔다.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임기(3년)를 1년 7개월 앞두고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집으로 찾아오는 취재진을 피해 지난 일주일간 경북 경주, 설악산, 통일전망대 등을 여행했다.

그는 상임위원들간의 갈등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터뜨린 위원은 없었다"면서도 "일부 위원들이 인사자문위원회(위원장 곽노현 사무총장)의 위원장직을 상임위원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했고, 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상임위원들이 직원 통솔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알지만, 위원장의 권한을 나눠 줄 수도 없고 인권위법에 없는 지휘권을 주장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인권위가 관련법에 의해 설치된 기구라면, 위원들도 법에 의한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것을 넘고자 하면 서로간에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사 30년, 판사 4년, 고충처리위원장(비상임) 1년을 지낸 그는 "나이 들어서 공무원 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시골에서 판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체질에 맞았고, 보람을 느꼈다"며 "갑자기 조직에 들어와서 위원장으로 일하려니 3년은 너무 길다"고 말했다. 사라진 지 일주일 만에 모습을 보인 그를 2일 저녁 자택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만났다.

다음은 조영황 전 국가인권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인사자문위원장 자리로 끊임없는 요청"

- 사퇴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이와 관계가 있다. 나이가 드니까, '언제 물어날까', '추하지 않게 물러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에 신경이 쓰인다. (위원장 일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인권 보호하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예를 들어 인권위 건물이 점거 당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부담이 된다. 과거에 명동성당으로 갔던 이들이 의사 표시가 힘들어서 인권위로 오는데, 경찰을 불러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힘든 것 중 하나일 뿐이었다."

- 인사권 문제로 일부 위원들이 불만을 나타내는 등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대놓고 불만을 터뜨린 위원은 없었다. 일부 위원들이 보좌진을 제대로 갖춰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사자문위원회가 있는데, 1기 때 상임위원이 위원장을 했던 것을, 2기(최영도 위원장) 들어 사무총장으로 바꿨다. 취임 당시부터 1기 체제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었는데 내가 볼 때 공정하게 잘 하는 것 같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부 위원들이 이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 상임위원들은 왜 굳이 1기 체제로 변화를 요청했을까.
"뺏겼던 권한을 다시 가져오자는 취지로 보인다. 상임위원들이 직원 통솔에 어려움이 있었다. 사무처 직원들을 통솔할 권한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비상임위원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법에 근거하지 않으면 직원들도 말을 듣지 않는다. 법적으로 없는 지휘권을 주장하면 누가 말을 듣겠나. 위원장에 대해서는 '위원회의 대표로, 위원회를 총괄하는 권한이 있다'고 법으로 돼있는데, 이같은 권한을 나눠 가질 수는 없지 않나."

-이같은 불만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권위가 관련법에 의해 설치된 기구라면, 위원들도 법에 의한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 그것을 넘고자 하면 서로간에 어려울 뿐이다. 위원 본인들이 이해했어야 할 부분이다."

"인권을 이해하지 못해 인권위 폐쇄 주장"

- 지난달 22일 열렸던 비공개 워크숍에서는 왜 갑자기 자리를 떴나.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다소 위원장에 대한 공격적인 불만이 있어서 '이런 자리가 아니지 않느냐, 인권위 발전을 위해서 논의를 하는 자리면 몰라도, 위원장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식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 자리라면 나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 위원장에 대한 어떤 불만이었나.
"인사 문제를 지적한 사람도 있었고, 일부에서 다면평가를 실시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에 관해서는 나에게 들으려고 하지 말고, 다른 위원들을 찾아가서 물어봐라.(웃음)"

- 일부 언론에서 인권위가 문 닫을 때가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권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과거처럼 고문이나 언론 탄압, 신체 자유의 억압 등이 없다고 인권이 보호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인권은 점차 자유권→평등권→사회권으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에 관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인권위의 새로운 역할을 인식할 수 없다."

-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표명이 인권위의 존폐 위기를 가져온 것 아닐까.
"그렇게 원용한 경우도 있는데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보수냐, 진보냐'와는 상관이 없다. 내 삶이나 취향 자체가 이념적 노선에 대해 의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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