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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무 하나로텔레콤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빗대, 치열한 하루살이를 표현하기도 했다.
박병무 하나로텔레콤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빗대, 치열한 하루살이를 표현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KT는 100년 동안 갑(甲)이었습니다. 세계 어떤 시장에서 '93 대 7'이 있어요?. 을(乙)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봐야지…"

딱히 힘주어 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약간 체념섞인 말투였지만 힘이 있었다.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45). 그의 입에서 이 정도 톤의 비판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기자가 여러 차례 만나본 박 사장을 보면 더욱 그랬다.

'(통신) 시장환경이 날로 치열해져서 쉽지 않겠다'라는 질문을 받고 난 뒤였다. 잠시 후 그는 "이 (통신)시장은 정말 정글"이라며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갔다 하면서, 한 쪽에선 총을 쏴대고 또 한 쪽에선 열심히 책도 읽는다"고 말했다.

이어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거대 공룡기업이 돼 버린 KT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과거 공기업시절의 독점적 위치에서 군림하던 KT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가 말한 '93 대 7'은 유선전화시장의 점유율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LG그룹 파워콤까지 경쟁에 가세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박 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빗대, 치열한 하루살이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 분들이 도와줘서 (블로그를) 조금씩 쓰고 있다"면서 "통신시장이 워낙 빠르게 바뀌고, 이에 맞춰 살다보면서 (블로그는) 21세기판 난중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9일 오후 6시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편안한 차림을 한 그는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하나TV를 비롯해, 초고속통신시장의 경쟁, 향후 방송과 통신의 융합 등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KT는 지난 100년 동안 '갑'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 사장과의 이야기 첫머리는 하나TV였다.

하나TV는 지난 7월 하나로텔레콤이 선보인 새로운 개념의 방송 서비스다. 최신 영화나 드라마·교육·다큐멘터리 등을 원하는 시간에 리모컨 하나로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물론 TV를 통해서다.

- 지금 가입자가 얼마나 되나.
"(웃으면서) 6만 가까이 된 것 같다."

- 내 주변 사람들도 많이 가입했던데, 예상보다 높은 것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에 1500명 이상씩 가입자가 생겨나고 있다. 한때 셋톱박스를 제 때 제공할 수 없어서 (고객들이)신청을 해놓고 한 달 가까이 기다리기도 했다."

- 지금도 기다려야 하나.
"(곧바로) 지금은 아니다. 공급을 크게 늘려서, 잘 나오고 있다. 그 때 기다리다 신청을 포기한 고객들도 많았다. 고객들께 죄송했다."

-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는 것 같은데.
"(자신도 놀랐다는 듯이) 처음 고객들의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셋톱박스) 물량을 맞추질 못했으니까."

박 사장은 이제 자신이 직접 가입 홍보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이 알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올 연말까지 25만명 목표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었다.

- 한 때 하나TV 서비스를 두고, 케이블TV 쪽에서 불법이라면서 법적 대응한다고 하지 않았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쪽에서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는 몇 달 전부터 이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법적 검토를 다 마쳤다. 우리 서버에 있는 다양한 컨텐츠를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 TV로 전달하는 것이다. '방송'의 편성과는 전혀 다르다. 문제될 게 없다."

- 하나TV가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다.(1년 계약 기준으로 셋톱박스 임대료까지 1만6200원이 든다)
"(웃으면서) 하나로 인터넷으로 바꾸면 훨씬 싸진다. 그리고 시내전화도 함께 쓰고, 4년 정도로 하면 한 달에 7000원밖에 안 든다. 셋톱박스도 그냥 드린다. 이 정도 돈으로 영화부터 드라마, 아이들 교육프로그램까지 엄청 많은 프로그램을 볼수 있다. (되물으면서) 싸지 않나."

- 그래도 최신영화 보려면 따로 돈을 내야하던데.
"지금은 서비스 기간이라서 그냥 볼 수 있다. 최신 영화 비싼 것이 1800원인데, 집앞에 DVD 빌리려면 2500원인가 그렇지 않나. 비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박병무의 야심 "이제는 돈 들어오는 일만 남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나TV에 대한 그의 답변 속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아직 최종 판단은 이르지만 초반 소비자들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서비스에 들어가기 전에 철저한 시장분석이 밑바탕이 됐다. 박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4개월 동안 6000명을 상대로 시범서비스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불필요한 조작은 없는지, 좀더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양하게 조사했죠."

이를 바탕으로 화면 배치와 프로그램 제공도 이뤄졌다. 국내외 메이저 영화사와 제휴를 맺었고, 각종 교육과 아동 프로그램도 보강됐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3개월, 그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 가입자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자주 보나.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면서) 콘텐츠 사용을 분석해보니까, 히트 레이트(Hit-rate, 가입자가 주로 선택하는 프로그램 비율)가 높은 것이 유아와 어린이 쪽이었다. 아이들이 의외로 좋아하더라. 우리 강점이 영화 쪽인데, 물론 이 쪽 비율도 높게 나온다."

그는 곧 베이비TV 등의 예를 들어가면서, 하나로가 유아와 아동 교육 컨텐츠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언제쯤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느냐였다. 다시 말하면, 박 사장 취임 첫 작품(?)인 하나TV가 회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느냐다.

- 가입자가 어느 정도 돼야 수익이 나올 것으로 보나.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면서) 올해까지 25만명 정도 유치하고, 내년 초 50만~60만명 정도 되면 수익도 크게 오를 것 같다. 굳이 가입자 수가 아니더라도, (그는 10만~20만명만 있어도 된다고 했다) 수익이 날 것이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펜을 가지고 종이에 표를 그려가면서) 올해까진 경영수지가 그리 높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부턴 (이익이) 400억, 내후년에는 1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이나 감가상각비 등이 줄어들고, 대신 수익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돼 있다."

- 계속 돈이 들어오게 된다면, 현재 하나TV 서비스에 부가 기능이 더 들어가나.
"(손을 들어 보이며) 앞으로 계속 새로운 (콘텐츠들이) 나올 것이다. 노래방이나 게임기능도 강화할 것이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 되도록 할 것이다. '나만의 음악' 기능도 넣고, 집에서 은행 업무나 쇼핑을 할 수 있는 홈 네트워크 기능도 나올 것이다."

한 마디로 앞으로 돈 되는 기능과 사업을 중심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TV를 보는 가입자들의 욕구를 철저하게 반영한다는 원칙도 덧붙였다. 그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변호사·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엔터테인먼트 사장 그리고 IT CEO까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간단한 식사와 함께 인터뷰는 자연스레 '인간 박병무'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는 뉴스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력 자체가 뉴스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80년 서울대 들어갈 때부터 전체수석으로 매스컴을 타더니, 법대 3학년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이라는 기사의 주인공이 됐다. 졸업도 1등이었지만, 남들 가려는 판사나 검사보다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그것도 경제 쪽이었다. 88년 김&장 법무법인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했다. 90년대 중후반 국내의 굵직한 대형M&A는 그의 손을 거쳐갈 정도였다.

2000년에는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사장에 있으면서 국내 최대영화사인 시네마서비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당시의 맺었던 충무로 쪽 인맥이 이번 하나TV의 컨텐츠 계약에 도움이 됐다고 박 사장은 생각했다.

- 하나TV의 영화 제휴사가 많던데, 예전에 알았던 인맥이 역할을 했나.
"(당연하다는 듯이) 물론이다. 그 쪽(영화계)은 사람과의 관계가 다른 어떤 곳보다 끈끈하다. 이번에 제휴를 맺은 대형 배급사들도 예전에 알던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웃으면서) 이런 것 보면 옛 경험이란 것들이 참 중요하더라."

이어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의 한국지사 대표도 역임했다. 2003년에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더니 제일은행 매각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뉴브리지는 제일은행 매각으로 5년만에 1조원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뉴브리지 이야기가 나오자, 박 사장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그는 "'투기자본 앞잡이'가 무슨 말을 (하겠냐)"고 하면서도, 제일은행 매각이 단기성 투기적 외국자본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뉴브리지가 다른 펀드와 다르다고 하지만.
"(곧장 말을 받으면서)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펀드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는 오퍼레이션그룹(경영자 그룹)이 따로 있다. 투자를 고려할 때 부터 이들이 참여해 의견을 나누고 결정한다. 단순 헤지성(단기투기성) 펀드와 다르다.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한다."

- 이젠 투자자에서 직접 경영자로 뛰고 있는데. 주변 환경도 쉽지 않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 (통신)시장은 정말 정글이더라. 하루에도 수십번 왔다갔다하면서, 한쪽에선 총을 쏴대고 또 한쪽에선 열심히 책도 읽어야하고…. KT를 보면, 거기는 100년동안 갑(甲)노릇을 하지 않았나. 세계 어떤 시장이 '97 대 3'인 곳이 있나."

박 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통신시장에서의 기업간 치열한 경쟁을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빗대기도 했다.

제주도의 꿈은 유효할까

변호사부터 엔터테인먼트 사장, 구조조정 전문가와 통신기업 CEO까지…. 예전에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그는 "제주도에 내려가 한라산 기슭에 조그만 까페를 차려놓고 사는 것"이라고 답했었다.

그와의 마지막 일문일답.

- 그 때 하고 싶었던 것은 여전히 유효한가.
"(눈을 크게 뜨면서) 아…. 제주도. 그렇다."

- 그래도 내년에 계속 (하나로텔레콤) 사장으로 계시지 않겠나.
"(웃으며) 물론이다. 잘리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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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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