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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유칸. 입장을 기다리며  저 아래까지 줄을 선 사람들.
가이유칸. 입장을 기다리며 저 아래까지 줄을 선 사람들. ⓒ 박경

가이유칸의 대형 수조. 위에서 아래로 돌아내려오면서 수조 안을 구경할 수 있도록 유리창이 감싸고 있다.
가이유칸의 대형 수조. 위에서 아래로 돌아내려오면서 수조 안을 구경할 수 있도록 유리창이 감싸고 있다. ⓒ 박경

오사카 성에서 공짜로 물마사지 받다

오후 시간이 조금 남아, 계획에도 없던 오사카 성을 찾게 되었다. 오사카 성을 계획에 넣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영원한 적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성이라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숱한 전쟁으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의 모습은 1948년 이후에 재건된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다. 또한 일본 성에 대한 호기심은 히메지 성에서 풀자고 나름대로 경제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오사카 성에서 우리 가족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오사카 성의 핵심 건물 텐슈카쿠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3년을 투자해 지은 곳이라는 텐슈카쿠는 수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고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하면 고구마 넝쿨처럼 줄줄이 따라 올라오는 일본의 영웅들이 있으니,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봉건영주)들이 ‘구니國’(일본사에서 고대부터 근세까지 있었던 행정구역의 하나)를 다스리며 그 구니를 단지 보전하는 데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천하를 넘보며 일본 통일을 꿈꾼 자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는 일본 전국의 반을 통일시킴으로써 봉건전쟁을 종식시키고 전국 통일을 이룰 여건을 조성한 인물이다. 그러나 가신이 일으킨 반란에서 부상을 입고 할복한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신속하게 설욕한 뒤 정치적 지위를 계승한 자가 바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시작한 일본 통일의 대업을 완수했으며, 야심을 품고 조선을 침략했다. 미천한 농부 출신으로 글을 읽지 못하고 교양 없는 인물로도 알려졌지만, 쾌활한 성격, 세련된 매너, 총명한 두뇌로 평가받는다.

히데요시는 안정적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오사카 성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천하를 얻은 히데요시도 죽음에 임박해 걱정이 하나 있었으니, 56세에 얻은 6살짜리 아들 히데요리였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히데요리를 부탁한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그것도 모자라 서명까지 하게 한다.

충성을 맹세한 5다이로 중의 하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정권탈환을 위해 히데요리가 살고 있는 오사카 성으로 진격했다. 궁지에 몰린 어린 히데요리는 어머니와 함께 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부나가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히데요시가 맛있게 밥을 지어 놓으니, 그 밥상을 이에야스가 통째로 받아 먹은 셈이라고 해석한다.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으로도 회자된다. 가장 흔한 얘기로, 새가 울지 않을 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다혈질에 성미 급하고 과감한 결단력의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새가 아니라 하여 가차없이 죽여 버린다. 지혜가 뛰어나고 적극적이며 자존심 강한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를 울게 만든다. 자기통제에 능숙하고 기다릴 줄 아는 이에야스는, 어차피 손 안의 새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나이차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세 사람은 성격 탓인지 수명도 달랐다. 노부나가는 49세, 히데요시는 62세, 이에야스는 75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준 히데요시가 제 나라에선 영웅이라니, 씁쓸한 마음으로 텐슈카쿠 를 올려다 보았다. 텐슈카쿠 하늘엔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휙 불어오기 시작한다. 모처럼 시원하다.

남편과 아이는 텐슈카쿠에 들어가자고 조른다. 나는 결사반대. 어른 600엔(우리돈 5000원 정도)이라는 비싼 입장료가 걸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히메지 성에 대한 호기심을 반감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육중한 돌을 쌓고 그 위에 지어진 일본 성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간절한 궁금증을 이 가짜 성에서 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사카 성의 텐슈카쿠.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할 즈음.
오사카 성의 텐슈카쿠.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할 즈음. ⓒ 박경

이쯤에서 오사카 성은 만족하고 텐슈카쿠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어린 히데요리가 생을 마쳤다는 자결터는 내려가는 길 어디쯤에 있을 테니 가는 길에 들러보면 되리라.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람은 한층 거세진다. 아무래도 소나기가 들이닥칠 것 같다.저만치에 매점이 보인다. 여행객들은 여차하면 튈 양으로 매점 반경 10미터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눈치다.

우리 가족은 느긋하다. 만일을 대비해 우산 두 개를 항상 가방 속에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여행 다니다 보면 동전 한 닢도 짐스러운데, 내가 매번 우산을 챙기면 남편은 투정을 부렸었다. 얼른 소나기가 내려줘야 나의 혜안을 과시할 텐데. 믿는 구석이 있는 우리 가족은 여유를 부리며 텐슈카쿠를 돌아 내려갔다.

투둑투둑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길은 호젓하고 아름드리 나무가 보이고 숲길처럼 인적 드문 곳이다. 우산을 꺼냈다. 우아하게 부챗살처럼 우산살이 펴졌다. 그때부터였다. 사정없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리는 게 아니라 쏟아 붓기 시작한다. 순간 당황한 남편의 우산이 휘청 꺽여 살이 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매점은 눈앞에서 사라진지 오래. 우산은 쓰나마나 소나기는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정말로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었고 눈조차 뜰 수가 없다.

눈앞에서 번개가 번쩍! 순간 두려움이 훅 끼친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는 쉬운 길, 내려가는 길을 따라 달린다. 판단력 없는 내 다리는 아름드리 나무를 향해 달린다.

"안돼! 나무 밑은 더 위험해!” 내 머리가 내 입에게 명령한다. 아무데도 피할 곳 없는 휑한 곳에서 본능적으로 나무 밑으로 파고들고자 하는 내 몸을 내 이성이 간신히 끌어 잡는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속수무책. 아이는 두려움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게 들어가자 그랬잖아! 엉엉엉!”
텐슈카쿠에 들어갔으면 이 비는 피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돈! 돈 다 젖어 엄마! 엉엉엉!”
쫄딱 젖어버린 돈가방을 보며 아이는 절박하게 울부짖는다.

정말이지 나도 한순간 공포를 느꼈다. 이러다 벼락 맞아 죽는 건 아닐까. 텐슈카쿠도 번개를 맞아 불탄 적이 있다지 않는가. 이곳은 혹시 낙뢰에 무방비한 지역은 아닐까. 아, 이게 무슨 개죽음이란 말인가. 남의 나라에 여행 와서, 웬수 같은 일본까지 놀러 와서, 그것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령이 살아있는 오사카 성에서 벼락을 맞는다면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한단 말인가. 정작 벼락 맞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히데요시가 아니던가.

하지만 두려움을 떨고 있는 아이 앞에서 드러낼 순 없었다. 불안에 떠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엄마는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빤 대체 어디 간 거야? 아빠 역시 속수무책이다.) “괜찮아! 괜찮아! 재밌잖아! 와 정말 재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달래고 나니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조금은 가신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가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내 평생 이런 비는 처음이다, 이 모든 게 기막힌 추억이 될 것이다, 언제 이렇게 세찬 비를 온 몸으로 마주할 것인가, 노부나가처럼 방방거리고 핏대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히데요시처럼 무슨 영악한 꾀를 내어 비를 피할 것인가, 그저 이에야쓰처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잖은가.

어차피 젖어버린 몸, 우리는 가던 길을 달려 내려갔다. 아랫길 석축 부근에 비를 피하고 서있는 외국인들 몇 명이 있었다. 사실 비를 피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건만, 돌이라도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는 게 인간심리인가 보다.

드디어 빗줄기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저쪽에 건물이 보였다. 처마 밑에 관광객들이 쪼란히 서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가 내리는 순간 건물 부근에 있던 행운아들이 틀림없었다. 욕조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우리들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눈꼽만큼도 젖지 않은 그들을 향해 다가가 그 속에 끼어들었다. 아직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을 쥐어 짜니 주르륵 물이 흘러내린다.

어느덧 비가 멈추고 활짝 개이자, 흠뻑 젖은 외국인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이 개인 날씨를 보니 맥이 탁 풀린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세찬 비를 피한답시고 피한 그 곳 어디쯤이 바로 히데요리가 자결한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쳐들어오는 이에야스를 피해 도망을 치며 생을 마감하던 곳, 궁지에 몰려 히데요리가 찾아든 곳이 바로 우리가 비를 피한 곳과 가까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에 몰린 어린 히데요리의 공포를 희한하게 체험한 셈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소나기가 잦아들기 시작. 오사카 성 안의 고쿠라쿠바시 주변.
드디어 소나기가 잦아들기 시작. 오사카 성 안의 고쿠라쿠바시 주변. ⓒ 박경

오사카 성을 빠져 나와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아무도 젖은 사람이 없었다.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도 멀쩡하다. 묻고 싶어질 지경이다. 저, 혹시 비 안왔어요? 하지만 비가 온 건 분명하다. 물이 찬 운동화는 여전히 쿨럭거렸고, 바닥은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숙소까지 돌아오는 지하철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섬처럼 떠 있었다. 텅텅 빈 의자에 젖은 몸으로 감히 앉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젖은 몸이 들킬세라 긴장하며 내내 서 있어야 했다. 지상에 비가 내렸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멀쩡했다. 우산을 든 사람도 없었다.

더 재미있는 건, 호텔에 도착할 즈음해서 피곤이 싸악 가셨다는 거다. 돌이켜 보니 순전히 소나기 탓이다. 샤워를 시원하게 했으니 개운한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세찬 빗줄기에 사정없이 두드려 맞았으니 공짜로 물마사지를 한 셈이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일본 여행이 생각보다 돈이 덜 드는 이유. 베트남에 가면 싼 값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지만, 일본에 가면 공짜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저녁 때 호텔 로비에서 신문을 본 남편이 전해 주었다. 일본의 대기가 불안정해서 전날에도 32만 가구가 정전이 되었으며 JR야마노테센 운행이 3시간 동안 정지되고, 한 공장은 낙뢰로 인해 불이 났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은 물로 시작해서 물로 끝난 하루다. 수족관 가이유칸에서 실컷 물 구경하고, 오사카 성에서 온몸으로 물세례를 받아야 했고. 꿈결같이 젖은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첫 일본 여행때에는 양말 말리느라 고생해서 양말을 넉넉히 준비했는데 이번엔 신발이다.  다음 여행때에는 신발까지 여분을 준비해야 할까 보다.
첫 일본 여행때에는 양말 말리느라 고생해서 양말을 넉넉히 준비했는데 이번엔 신발이다. 다음 여행때에는 신발까지 여분을 준비해야 할까 보다. ⓒ 박경

덧붙이는 글 | 2006년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8박 9일 동안 일본 간사이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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