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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족발입니다. 하도 여러 번 족발을 썰어봐서 이제는 제법 모양있게 썰 줄도 압니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족발입니다. 하도 여러 번 족발을 썰어봐서 이제는 제법 모양있게 썰 줄도 압니다. ⓒ 이승숙
설날 고향집에 갈 때 족발을 만들어서 가져갔습니다. 남편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서 족발을 만들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한테서는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제수씨와 조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했던 남편은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족발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잖게 생각하던 시댁 식구들이 한 입 먹어보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아주버님, 이거 진짜로 아주버님이 만드신 거예요? 저는 족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거는 느끼하지도 않고 진짜 맛있어요."

손아래 동서가 시숙인 우리 남편에게 이리 말하며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발라서 먹었습니다.

"야야, 여게 뭐 넣었노? 뭐 넣었길래 이래 잡내도 안 나고 맛 있노?"

아버님과 어머님도 연신 젓가락을 놀리시며 묻습니다. 신이 난 제가 대신 대답합니다.

"아버님 여기에 뭐 넣었냐 하면요 별 거 별 거 다 넣었어요. 오가피나무도 넣었고 엄나무도 넣었고 또 뭐 온갖 거 다 넣었어요."

그 해 겨울부터 남편은 고향에 갈 때면 꼭 족발을 만들어서 가져갑니다. 아버님이 일하시다가 약주 드실 때 안주로 드시라고 말입니다.

족발을 삶을 때 들어가는 재료들 중 일부입니다. 계피나무 껍질이 들어가야 특유의 향이 납니다.
족발을 삶을 때 들어가는 재료들 중 일부입니다. 계피나무 껍질이 들어가야 특유의 향이 납니다. ⓒ 이승숙
명절에는 몇 개 더 만들어 갑니다. 제수씨와 조카애들을 챙겨 주기 위해서 돼지 다리를 여러 개 사서 족발을 만듭니다.

족발은 암퇘지로 해야 맛이 좋답니다. 그래서 잘 아는 정육점에 일부러 부탁을 해두곤 합니다. 좋은 거 들어오면 연락 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돼지 다리를 사와서 찬 물에 하룻밤 정도 담가 둡니다. 그 다음에 찜통에 물을 붓고 핏물 뺀 돼지 다리를 넣고 30분 정도 살짝 삶아 줍니다. 이 때 엄나무 가지와 생강, 소주를 물에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군내가 안 난다고 합니다.

사실 족발의 맛은 장국 맛에 의해 좌우됩니다. 유명한 족발집마다 자기 집만의 장국 비법이 있습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애벌) 삶은 족발을 장국에 넣고 푹 삶아줄 때 우리 남편만이 아는 그 무언가를 넣는데 그건 저한테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슬쩍 지나치면서 보니까 된장을 한 숟갈 넣는 거 같기도 한데 그 비법을 영 공개하지 않네요.

족발의 맛은 장국에 달려 있습니다.
족발의 맛은 장국에 달려 있습니다. ⓒ 이승숙
족발을 만드는 법은 아래와 같습니다(족발 4개 기준).

1. 발가락 사이에 칼집을 넣고 다듬는다.
2.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8시간 정도)
3. 생강, 소주, 엄나무를 넣고 30분 정도 슬쩍 데친다.
4. 찬물로 식혀준다.
5. 간장 3분의 2리터, 마늘 4통, 생강 한 줌, 양파 2개, 계피나무 껍질 30센티미터, 소주 1컵을 넣고 물을 부어준다. 이 때 물은 족발이 잠길 정도로 넣어준다.
6.센 불로 30분 동안 1차 조린다.
7. 물엿을 반 병 넣고 30분 더 졸인다.
8. 맛을 보고 식성에 따라서 간장이나 물엿을 더 넣어준다.
9. 불을 끄고 중간 정도 식힌다.
10. 꺼내서 완전히 식힌다.


센 불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끓여낸 족발은 흐물흐물합니다. 그래서 뜨거울 때 건지면 살과 뼈가 다 분리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식은 다음, 장국물이 젤라틴 상태가 되기 전에 족발을 건져서 식혀 둡니다.

건져서 식히고 있는 족발입니다. 돼지 한 마리, 즉 다리 한 벌(앞다리 2개, 뒷다리 2개)분량입니다.
건져서 식히고 있는 족발입니다. 돼지 한 마리, 즉 다리 한 벌(앞다리 2개, 뒷다리 2개)분량입니다. ⓒ 이승숙
갓 건져낸 뜨끈뜨끈한 족발은 냄새가 너무 좋습니다. 입에서 저절로 군침이 돌았습니다.

"여보, 족발 하나만 먹으면 안 돼? 냄새가 너무 좋다, 하나만 먹자 응?"

애교 섞인 콧소리로 이리 말했건만 남편은 단칼에 베어 버립니다.

"안돼. 시골 가져갈 거란 말이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먹으면 어떻게 해? 안돼."

말로는 그리 하지만 내심 흐뭇한지 이리저리 살펴서 족발 하나를 썰어 줍니다. 갓 건져낸 족발은 물렁물렁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오늘(21일) 낮에 아는 엄마들이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그래서 얼른 족발 하나를 꺼내서 썰어주었습니다.

"자기, 이거 한 번 먹어 봐. 우리 남편이 만든 건데 맛이 괜찮아."

새우젓 보시기를 앞으로 당겨주며 족발을 권했습니다.

"이거 진짜로 아저씨가 만든 거야? 족발을 어떻게 집에서 다 만들지? 만드는 법 좀 가르쳐 줘 봐."
"이거 해보면 쉬워. 내가 비법 다 가르쳐 줄 테니까 만들어서 애들 줘 봐."

뼈에 붙은 고깃점까지 맛있게 먹는 그이들에게 나는 우리 남편만의 비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나에게까지 안 가르쳐 주는 그 한 가지는 빼고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족발은 혼자 먹기보다는 여럿이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 거 같습니다. 새우젓에 쿡 찍어서 족발을 먹다 보면 없는 정도 생길 것 같습니다. 족발 만들기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집에 손님들이 갑자기 와도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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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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