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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 꿈을 안고 오마이뉴스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나에 대한 실망 뿐이었다
큰 꿈을 안고 오마이뉴스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나에 대한 실망 뿐이었다 ⓒ 김귀현
기자를 꿈꿔 왔던 나는 올해 4학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삶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사회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준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시민기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한 상업인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제안 해왔다.

"네가 쓰고 싶은 거 아무거나 써도 돼. 우리 집 개가 강아지 낳은 것도 기사가 된 다니깐."

시민기자 선배는 이렇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주변의 기삿거리를 찾았다. 찜질방 헬스클럽 덕에 동네 헬스클럽이 망하는 것을 보고 FTA랑 결부시켜 써볼까 하는 생각, 지난 미국 여행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들, 하지만 모두 생각들뿐이었다. 글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나무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자 선배 시민기자(야구에 미친 상업인 양형석씨)는 오연호 대표의 말을 인용해 날 독려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난 기사를 쓰지 못했다. 난 나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학내 언론사 활동도 하였고, 국문과 출신에 글발 좀 된다 생각했던 나인데, 그렇게 자부심 있는 내 글이 생나무가 된다는 것을 미리 두려워했다. 난 생나무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난 ‘난 글발 하난 끝내줘’, ‘아무나 다 기사 쓰는 오마이뉴스에서 내 훌륭한 글이 제대로 대우 못 받으면 어쩌지’ 하는 내가 쳐놓은 나만의 아우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2단계: 부담] 부담 100%의 기사 쓰기

인턴이 끝날 무렵, 사무실에서 나의 하루하루는 잠과 농땡이로 점철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경태와 대비된다
인턴이 끝날 무렵, 사무실에서 나의 하루하루는 잠과 농땡이로 점철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경태와 대비된다 ⓒ 김귀현
지난 운이 좋게도 부족한 내가 오마이뉴스의 인턴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1주일간 교육을 받고 실무에 투입이 되면서, 나의 한계와 능력을 처절히 느낄 수 있었다. A4 용지 1장도 안 되는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내 자신을 보며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기사쓰기는 고스란히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 왔다. 독자들은 예리했고 내 기사의 허점을 쑤셔내고 밝혀낼 때 마다, 내 살이 쑤시는 듯 했다. 기사 한 글자 한 글자에 부담이 서려 있었다.

그 무한한 부담감에 자신감은 이미 상실했고, 인턴 막바지에는 빨리 인턴이 끝나기만을 고대했다. 기획안 제출하면, 모조리 '빽'을 받고, 기사를 쓰면 내용의 50%는 고쳐서 출고된 전혀 내가 쓴 흔적이 없는 기사들을 보며 기자 생활을 심각히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주에는 한 개의 기사도 출고시키지 못하였다. 사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일부러 그랬다.

하지만 인턴이 끝나갈 무렵, 난 깨달았다. 무한한 부담감을 견뎌왔던 내가 조금은 성장했다는 것을.

약간 과장해서 인턴이 끝나면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내 생각은 금세 수그러들었고, 인턴이 끝나자마자 오히려 인턴 기간 동안 내가 못 한 것을 만회를 하고 싶은 욕구가 흘러넘쳤다.

[3단계: 재미] 내 인생의 전환점, 월경페스티벌

생리대를 처음 만져본 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생리대를 처음 만져본 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 김귀현
인턴이 끝나자마자 전관석 대학생 팀장의 권고로 찾았던 국내 최초의 섹스포 현장. 인턴 때는 못 느꼈던 무언가를 이곳에서 느꼈다. 일련의 팩트 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난 이 팩트 들을 반드시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가슴속에 서려왔다.

미친 듯이 취재를 했고, 인턴 시절 한 번도 방문 한 적이 없던 게임방에서 기사를 출고하기에 이르렀다.(인턴 시절엔 아무리 바쁜 기사도 그냥 사무실 들어가서 썼다.)

바로 며칠 전 희희낙락, 유유자적하던 김귀현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인턴 시절에는 mT 근처에도 못갔던 나의 기사들이 한 두개씩 mT에 배치 되었고, 50%의 수정률을 보이던 기사들이 거의 90% 내가 쓴 그대로 출고가 되었다.

그러던 중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났다. 바로 취재 현장에서였다. 반페미니스트이며 남성우월보수주의에 흠뻑 빠져있던 내가 ‘월경페스티벌’ 이라는 현장에 간 것이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기사의 각을 '왠 생쑈냐' 하는 식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난생 처음 생리대를 만진 이 후로, 나의 모든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 버렸다. 정말 그 생리대라는 녀석은 처참하게도 두꺼웠다. 이 두꺼운 것을 여름에도 하고 있을 여자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더 답답함을 느꼈다.

내 위와 장에서 어떤 매스꺼움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 왔을 내 어머니, 내 여자친구, 내 친구들을 생각하니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남성우월주의에 젖어 군대 같다온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생리휴가를 외치는 여자들을 꼴통으로 봤던 내가, 변해버린 나에 대한 얘기를 기사로 옮겼다. 물론 같은 남자들에게 욕은 엄청 먹었지만, 난 나의 가치관의 대변화만으로 만족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변화다.

그리고 점점 나는 기사 쓰는데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쌍욕이 담긴 악플이라도 나에 대한 관심이구나 하며 사랑스러워 했다.

[4단계: 중독] 리포트를 쓰다가, 난 하염없이 웃었네

아직도 네이버로 간 나의 기사에서 내 이름을 클릭하면 축구선수가 나온다. 축구선수가 기자까지 하고 바쁘겠다. 게다가 90년생
아직도 네이버로 간 나의 기사에서 내 이름을 클릭하면 축구선수가 나온다. 축구선수가 기자까지 하고 바쁘겠다. 게다가 90년생 ⓒ 김귀현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생전 클릭 않던 오마이뉴스를 무한클릭 하고, 다음과 네이버에 올라간 내 기사에 실시간으로 달리는 리플을 보며 난 즐거워했다. 월경페스티벌 기사, 왼손잡이 기사가 다음 메인에 배치되고 달리는 1000개 이상의 리플을 보며 난 경이로움에 사로 잡혔다.

구글에서 내 이름을 치면 원래는 나보다 90년생 축구 유망주가 나왔는데, 이제는 내 이름이 도배를 한다. 쪽수를 40쪽 까지 넘겨도 내 이름뿐이다. 구글에는 내 기사를 퍼간 블로그나 카페까지 다 검색 되기 때문이다.

월경기사로 그렇게 욕을 먹었어도, 내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로 스크랩 해서, "정말 좋은 기사 같다" 하는 멘트 달아 놓은걸 보면서 그것만으로 내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내 준 레포트를 쓰기 위해 한글2005를 열어서 열심히 작성하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스가 레포트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리포트의 소제목 좌우에 기사를 쓸 때 했던 대로 '< b > ... < /b >'가 달려 있는 것이다. 난 그저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웃음다운 웃음을 웃어봤다.

단, 이 사건 이후로 리포트에 첨부할 사진을 500픽셀(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올릴 때는 500픽셀로 맞춰야 한다)로 고치는 것은 조심하게 되었다.

국내 경제 상황 분석을 태그처리 했다. 그저 맘껏 웃어 버렸다^^
국내 경제 상황 분석을 태그처리 했다. 그저 맘껏 웃어 버렸다^^ ⓒ 김귀현
이렇게 난 오마이뉴스에 중독 되었다. 오마이뉴스 덕에 2006년을 내 인생 최고의 한해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나에게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더 깊게 빠져들 것이다. 4단계 중독, 그 다음 5단계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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