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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 불갑사 입구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무릇.
전남 영광군 불갑사 입구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무릇. ⓒ 김연옥
마침 지난 17일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나는 얼씨구나 하고 따라나섰다. 그날은 제13호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꽃무릇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먹은 대로 그냥 집을 나섰다.

저마다 어떤 삶의 의미를 찾고자 굵은 빗줄기에도 산행을 하는 것일까?
저마다 어떤 삶의 의미를 찾고자 굵은 빗줄기에도 산행을 하는 것일까? ⓒ 김연옥
오전 8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오전 11시 40분께 불갑사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나는 파란색 비옷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비가 내리는 산길에는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등산용 비옷을 입고 걷는 것이 처음이라 산행 초입부터 불편하고 몸이 무거웠다.

칼날바위에 오르자  새하얀 구름처럼 흘러가는 짙은 안개가 보였다. 아름다웠다.
칼날바위에 오르자 새하얀 구름처럼 흘러가는 짙은 안개가 보였다. 아름다웠다. ⓒ 김연옥
가파른 편인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새 위험한 길이라고 친절하게 쓰여 있는 칼날바위에 이르렀다. 칼날바위에 오르자 짙은 안개가 마치 새하얀 구름처럼 흘러갔다. 아름다웠다. 비까지 내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조심조심 걸어가는데도 이상하게 스릴이 있고 재미있었다.

전남 영광군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516m).
전남 영광군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516m). ⓒ 김연옥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516m)에 오른 시간이 오후 1시 30분께.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 때문에 서둘러 해불암 쪽으로 내려갔다.

띄엄띄엄 피어 있는 붉디붉은 꽃무릇이 비가 내리는 어두운 숲길을 꽃등처럼 밝히고 있었다. 나는 꽃무릇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반가운 친구를 보듯 기뻤다.

한 몸이면서도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
한 몸이면서도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 ⓒ 김연옥
ⓒ 김연옥
수선화과의 꽃무릇은 석산이라고도 한다. 흔히 상사화로 잘못 불리기도 하는데, 꽃이 피는 시기와 꽃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영광 불갑사는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꽃무릇 군락지로 손꼽힌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불갑저수지와 어우러져 피어 있는 꽃무릇.
불갑저수지와 어우러져 피어 있는 꽃무릇. ⓒ 김연옥
ⓒ 김연옥
불갑사 꽃무릇은 9월 중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아직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았다. 나는 잔잔한 불갑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꽃무릇 군락지에 한참 머물렀다.

지독한 그리움으로 붉게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무릇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의 시구들이 애잔히 떠올랐다.

영광 불갑사가 보이는 길에 피어 있는 꽃무릇.
영광 불갑사가 보이는 길에 피어 있는 꽃무릇. ⓒ 김연옥
나는 전남 영광이라 하면 병신춤을 추던 공옥진씨가 늘 생각난다. 그리고 시를 짓고 희곡을 쓰던 가난한 남자를 좋아한 젊은 시절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와 같이 영광에 살던 공옥진씨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찍은 사진 뒷면에는 찾아간 날짜가 1982년 3월 1일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전남 영광이라 하면 병신춤을 추던 공옥진씨가 늘 생각난다. 공옥진씨를  찾아갔던 젊은 시절의 내가 문득 그립다.
나는 전남 영광이라 하면 병신춤을 추던 공옥진씨가 늘 생각난다. 공옥진씨를 찾아갔던 젊은 시절의 내가 문득 그립다. ⓒ 김연옥
그 추억의 사진에는 수더분해 보이던 공옥진씨가 있다. 그 당시 하얀 한복을 입고 병신춤을 추던 그의 순수한 예술혼도 느껴진다. 그리고 한참 동안 버스를 타고 공옥진씨를 만나러 갔던 젊은 시절의 내가 그립다.

태풍 '산산'으로 비가 계속 내렸다. 온몸이 으스스 춥고 머리도 아팠다. 마산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 한 자락에는 벌써 붉디붉은 꽃무릇의 풍경이 그리움이 되어 머물러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호남고속도로)→정읍I.C→고창→영광(318km:3시간 50분)
서울(서해안고속도로)→영광I.C(298km:3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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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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